원유 찌꺼기가 윤활유 변신…SK R&D의 힘
고급 윤활기유 대량생산 성공
만년 적자사업 단숨에 흑자로
촉매기술도 글로벌 사용료 받아
배터리기술 90년대부터 연구
분리막 자체생산기술 확보
SK이노베이션은 40년의 연구개발(R&D) 경영을 통해 다양한 세계 최초, 국내 최초 기술을 확보해왔다. 정유 제품 생산 과정에서 남은 미전환유에서 고품질 윤활기유를 생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리튬이온배터리와 분리막, 바이오, 고성능 폴리에틸렌 등 5대 개발품이 성과로 꼽힌다.
24일 SK이노베이션에 따르면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은 R&D가 단순히 고난도 기술 연구에 그쳐서는 안되며, 마케팅과 생산까지 연결돼야 한다고 봤다. 이 같은 생각은 최 선대회장의 'MPR 운영법'에 담겨 있다. MPR 운영법은 마케팅(M)과 생산(P), 연구개발(R)이 하나로 움직여야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MPR 경영의 대표 성과로 윤활기유가 꼽힌다. 윤활기유는 차량 엔진 등에 쓰이는 윤활유의 핵심이 되는 원료로 자체 생산이 쉽지 않다. SK이노베이션은 1990년대 초까지 핵심 원료를 수입했지만, 울산을 비롯한 연구시설에서 자체 기술을 확보해냈다. 특히 기존 중질유 분해시설에서 나오는 사용 가치가 없는 미전환유를 원료로 고부가가치의 윤활기유를 생산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이후 대량생산에도 성공하면서 만년 적자였던 윤활기유 사업은 흑자 전환하며 SK이노베이션의 효자사업으로 재탄생했다.
SK이노베이션은 이후 고품질 윤활기유 생산에 필요한 촉매 기술까지 직접 확보했다. 연간 수십억 원에 달하는 기술 사용료를 절감할 뿐만 아니라 세계 시장에서 기술 사용료를 오히려 받는 입장이 됐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이렇게 생산한 고품질 윤활기유는 세계 최초로 최고 품질 영역인 '그룹3' 제품을 개척했다"고 말했다.
배터리 연구는 지금의 SK온을 낳은 또 다른 R&D 대표 성과다. 최 선대회장은 1982년 유공 과장 간담회에서 '에너지 축적 배터리 시스템' 개발을 제안하면서 "단순히 정유 기업에 그쳐서는 안되며 종합 에너지 기업이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회사는 1986년부터 신형 축전지 개발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1991년에는 태양전지를 이용한 3륜 전기차 시험 제작에 성공했다. 2005년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 진출을 선언하고 2009년에는 독일 다임러 계열사인 '미쓰비시 후소'에 중대형 하이브리드 자동차용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낸다.
2010년에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가 현대자동차와 공동으로 추진하는 전기자동차 프로젝트의 배터리 납품 업체로 선정됐다. 9월에는 현대차가 공개한 국산 1호 고속전기차인 '블루온'에 배터리를 공급했다. 2019년에는 니켈 함량을 대폭 높인 'NCM 9반반'(니켈·코발트·망간 함량이 9대0.5대0.5) 배터리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배터리 화재를 막는 핵심 부품 중 하나인 분리막도 R&D 성과다. SK이노베이션은 2003년 관련 기술 개발을 시작해 1년 만인 2004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분리막 자체 생산 기술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2005년 상업생산에 성공했고, 관련 업계에서 수십 년간 축적해온 석유화학·나노기술 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석유화학 역량을 바탕으로 신약 기술도 개발했다. SK는 20여 년에 걸쳐 신약 개발에 투자한 결과 2019년 수면장애 치료제 솔리암페톨과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 등 두 신약에 대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아냈다.
'석유화학 산업의 쌀'로 불리는 폴리에틸렌 개발도 SK가 자랑하는 성과다. 고부가가치 필름, 자동차, 신발 내장재, 자동차 피복 등에 쓰이는 고급 폴리에틸렌은 미국 다우케미컬, 엑손모빌 등이 독점한 시장이었다. SK이노베이션은 1983년 기술원을 출범할 때부터 쌓아온 기술력을 활용한 끝에 2008년 차세대 고성능 폴리에틸렌(브랜드명 넥슬렌)을 독자 개발했다.
[정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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