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총선용’…국회, 나눠먹기식 ‘현수막 예산’ 대폭 증액

김진표 국회의장이 21일 본회의에서 2024년도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있다. 2023.12.21 박민규 선임기자

내년도 예산안 국회 심의 과정에서 타당성 용역 금액, 지역 종교시설 관련 예산, 각종 도로 등 지역개발 사업 등 이른바 ‘선거용 지역 사업’ 예산이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분석됐다. 내년도 총선을 의식한 정치권의 ‘나눠먹기식’ 예산 배분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24일 나라살림연구소가 낸 ‘2024년 예산 국회 심의 현황·문제점·개선방안’ 보고서를 보면 내년도 예산안 가운데 국회 심의과정에서 가장 많이 증액된 사업은 교육부가 교육청에 교부하는 ‘디지털교육혁신 특별교부금’ 5333억원이다. 다만 이는 보통교부금과 특별교부금 비율 조정에 따른 기술적 재원 조정의 측면이 크고,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증액 사업은 지역사랑상품권 3000억원으로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내년도 총선을 앞두고 표심을 염두에 둔 예산 증액이 크게 반영된 것으로 나라살림연구소는 분석했다.

우선 대형 사업 전에 밟는 ‘타당성 용역’ 사업에 예산이 몰렸다.

당초 정부안에 없었던 전남권 소금단지 조성 타당성 용역 사업비는 3억원이 증액됐고, 충남·대구경북·울산 등 3개 지역의 영재학교 설립타당성 용역 사업비도 국회 논의과정에서 각각 5억원씩 모두 15억원이 편성됐다. 경부선 철도 지하화 연구용역(30억원)과 경의중앙선 지하화 복복선연구용역(3억원) 등 철도 관련 사업 용역비도 늘었다.

타당성 용역은 대형 사업 전 거쳐야 하는 이른바 ‘문턱 사업’일 뿐 실제 사업과는 무관하다. 그럼에도 정치권에서는 관행적으로 타당성 용역 사업을 대형 사업의 유치 근거로 내세워 홍보를 하고 있다. 수억원의 작은 규모의 예산을 확보한 것만으로도 큰 홍보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셈이다.

보고서는 “타당성 용역 사업은 대형 개발사업을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을 통해 첫삽을 떴다는 지역 주민에 홍보할 수 있는 ‘현수막 예산’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기획재정부가 작은 규모의 ‘증액 선물’을 주고 지역구 의원은 ‘현수막 홍보’를 하는 타협을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각종 종교관련 사업에서 정부원안보다 166억원 가량이 증액된 점도 눈에 띄는 지점이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종교문화시설건립 사업 예산은 정부안(258억원)보다 76억8000만원 늘었다. 주요 내역 사업은 울산 백양사 태화 불교문화교육관(15억원), 광주 원효사 명상치유센터(10억원), 남양주 봉선사 명상 체험센터(10억원) 등이다.

모두 16개 종교 문화 시설 예산이 증액됐는데, 2개 사업(대구 고산서당·제주 관음사)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정부 원안에 없던 국회발 신규 증액 사업이다.

음악회나 종교 문화 축제 등 종교 관련 행사에도 전에 없던 예산을 만들어 넣었다. 코리안크리스천필하모닉콘서트(3억원)와 극동방송 나라사랑 음악회(2억원), 생활 공감 수행문화(2억7000만원) 등이 대표적이다. 2024 국제 선명상 대회의 경우 정부 원안(3억원)의 2배에 달하는 예산을 추가 배정했다.

선거 관련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나눠먹기’ 식 지역개발 사업도 문제로 꼽혔다. 10억원이 넘는 지역 도로 사업을 분석해봤더니 규모와 성격이 다른 다수의 지역 도로 사업 증액 금액이 30억원·20억원·10억원 등으로 같았다. 예컨대 인제상남-기린국도건설(10억원)과 청송청송청운-부남감연국도건설(10억원), 여주점동-이천장호원2국도건설(10억원) 등 17개 도로건설 사업의 증액 규모는 모두 10억원으로 동일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지역 도로 사업의 동일한 증액은 면밀한 평가에 따른 요청이 아닌 일정 금액을 나눠먹기식으로 분배했다는 방증”이라며 “지역민원성 예산의 국회 증액은 집행률이 크게 떨어져 단순 현수막 예산으로 전락하기 쉽다”고 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