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에너지업계 "수소산업 태동도 전에 죽였다"…무슨 일?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상 청정 수소 생산 보조금 지급의 세부 기준을 1년여만에 공개했다. 에너지 업계에서는 "예상보다 엄격한 기준"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미국 재무부는 지난 22일 "미국 내에서 청정 수소를 생산할 경우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에 따라 1㎏당 0.6달러에서 3달러의 세액 공제 혜택(보조금)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는 지난해 8월 IRA로 도입된 청정 수소 생산 1㎏당 최대 3달러 세액 공제 혜택을 4단계로 '차등화'한 게 핵심이다. 이날 발표된 세부 지침은 향후 60일간 업계 의견 수렴과 공청회 등을 거쳐 확정될 예정이다.
수소 생산업체가 가장 큰 규모의 세액 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풍력, 태양광 등 친환경 에너지원 전기를 사용해야 한다. 해당 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은 가동한 지 3년 이내여야 한다는 조건도 담겼다. 또한 수소 생산업체들은 오는 2028년부터는 친환경 전력을 사용했다는 점을 '시간 단위'로 입증해야 한다.
이는 그간 업계 안팎에서 논란이 되어 온 청정 수소의 범위를 대폭 좁힌 것이다. 환경단체 등은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물을 전기분해해 얻은 그린수소만 엄밀하게 청정 수소로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에너지 업계는 블루수소(천연가스에서 발생하는 탄소를 포집해 만드는 수소)나 핑크수소(원자력발전 전기로 만든 수소) 등을 다양하게 인정해줘야만 태동기에 있는 수소산업의 기반을 키울 수 있다고 맞섰다.
1년 넘게 양측의 상반된 의견을 청취한 끝에 미 재무부가 이날 내놓은 세부 지침은 차등화 전략을 통해 환경단체의 손을 들어준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그린수소만 1㎏당 3달러짜리 최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설계됐다는 점에서다. 친환경 전력과 수소 생산 사이의 시간별 매칭 지침에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당초 에너지 업계에서는 바람이나 햇빛으로 생산하는 재생에너지 전력의 간헐성(비일관성) 등을 이유로 좀더 느슨한 '연간 단위' 입증을 요구했었다.
연간 단위로만 입증해도 될 경우엔 햇빛 등이 약할 때는 화석연료 기반 전력을 쓰되 추후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구매 등으로 보완해 융통성 있게 수소를 만들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날 발표로 인해 2028년부터는 매시간 청정 전력을 끌어다 써야 한다는 점에서 프로젝트 운영 비용이 급등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미국 청정전력협회(ACP) 제이슨 그루멧 최고경영자(CEO)는 "시간별 매칭 규정은 대다수 기업이 수소 생산에 투자할 엄두조차 못 내게 만드는 치명적인 결함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당초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IRA 보조금 도입에 환호했던 에너지 업계는 보조금 지급 기준이 예상보다 엄격해진 것에 당황하는 분위기다. IRA의 초기 설계자였던 조 맨친 상원의원(민주당)은 "이는 정부가 태양광, 풍력 외에 다른 에너지원은 모두 죄악시하는 극좌 환경단체의 근시안적 목표에 순응한 것"이라면서 "배출량을 줄이고 기후 변화에 맞서 싸우려는 행정부가 수소 시장을 시작하기도 전에 무릎을 꿇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은 미국이 IRA를 통해 수소 생산 등 친환경 기술 분야에 막대한 혜택을 준다는 소식에 미국행 투자를 발표했던 것"이라며 깐깐해진 세부 규칙에 이들이 투자를 철회할 가능성에 대해 지적했다. 리스타드 에너지에 따르면 2030년까지 발표된 미국 청정 수소 프로젝트 투자 규모는 IRA 통과 이후 1년 사이에 53% 늘어나 올해 7월 기준 11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됐다. 미국 청정 수소 기업 플러그파워의 앤디 마쉬 CEO는 앞서 "세부 지침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에 따라 기업들의 미국 투자에 가속도가 붙을 것인가, 아니면 유럽으로 눈을 돌릴 것인가가 결정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핑크수소에 대해서는 일부 판단을 유보한 것도 불만을 사고 있다. 원전 업계에서는 신규 원자로를 짓는 데 수년이 걸리는 만큼 기존 원자로 전력으로 만들어진 수소를 청정 수소로 인정해달라고 요구했었다. 일리노이주에서 수소 생산 시설을 건설 중인 미국 최대 원자력발전 사업자인 컨스텔레이션은 "세부 지침이 확정되면 미국은 기존 원전을 현명하게 활용해 수소를 생산하고 탈탄소화를 가속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는 중국과 유럽 등에 수소 및 탈탄소화 리더십을 넘겨주게 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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