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콜택시 ‘바늘구멍 기준’ 서울시···법원 “위법한 차별 시정하라”[판결돋보기]

김혜리 기자 2023. 12. 24.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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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콜택시 | 서울시 제공

‘장애인콜택시’는 누구에게 필요할까.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버스나 지하철 이용이 어려울 정도의 장애’란 무엇을 뜻하는가. 서울시는 이 질문에 ‘보행상 장애가 심한 이들’이란 답으로 갈음하며 장애인들의 콜택시 이용을 거절해 왔다. 중증장애인이라 하더라도 보행상 장애가 심하지 않으면 장애인콜택시를 사용할 수 없다며 태워주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시의 이처럼 협소한 장애인콜택시 운영에 제동이 걸렸다.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성지용)는 지난 21일 서울시의 장애인콜택시 이용 거부를 ‘위법한 차별행위’라고 판단했다.

장애인콜택시, 부산은 되고 서울은 안 된다?

중증장애인 황모씨와 서울시의 싸움은 2년 전 시작됐다. 황씨는 생후 100일쯤 낙상사고로 척수를 다쳐 팔다리를 움직이기 힘들게 됐고, 2019년부터는 활동 보조인의 부축 없이는 걸을 수 없게 됐다. 그는 광주, 부산, 인천 등에선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했지만 정작 거주지인 서울에서는 이용할 수 없었다. 서울시 측에서 황씨가 상지(팔)는 중증 장애지만 하지(다리)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다는 이유로 콜택시 이용 신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황씨는 지난해 2월 서울시와 서울시 장애인콜택시를 운영하는 서울시설공단을 상대로 ‘장애인콜택시 이용을 허가하고, 정신적 손해에 500만원을 배상하라’며 장애인 차별중지 청구소송을 냈다.

쟁점은 장애인콜택시 이용대상자를 규정한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을 어떻게 해석할지였다. 교통약자법 시행규칙 제6조는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할 수 있는 교통약자를 ‘보행상의 장애인으로서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서 버스·지하철 등의 이용이 어려운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황씨 측은 이 규정이 ‘보행상의 장애인이면서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을 뜻하는 것이라고 봤다. 반면 서울시는 반드시 ‘보행상의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어야 한다고 해석했다.

1심 법원은 서울시 측 해석이 잘못됐다고 봤다. “법령해석에 있어 대중교통 이용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인이 배제되지 않도록 이용대상을 지나치게 축소하지 않을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차별하면 안 된다고 규정한 ‘이동 및 교통수단’에 장애인콜택시가 포함돼 있지 않아 서울시의 이용 거부가 차별행위는 아니고, 서울시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했다.

법원 “어느 부위든 장애 심하고 대중교통 이용 어렵다면 제공해야”

2심 법원은 더 적극적인 판결을 내놨다. 서울시의 장애인콜택시 이용 거부가 ‘위법’하고 ‘차별행위’라고 판단한 것이다. 우선 ‘보행상 장애’가 심한지 아닌지를 판단할 기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 서울시의 주장엔 근거가 없다고 했다. 장애인복지법엔 보행상 장애가 있는지를 판정하는 기준은 있지만, 보행상 장애의 정도를 경증과 중증으로 나누는 기준은 없다는 것이다.

문제의 교통약자법 조항에 대해서도 1심과 같이 황씨 측 손을 들어줬다. 서울시는 1심 판결 이후 국토교통부에 장애인콜택시 이용대상자에 대한 해석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 서울시의 해석과 황씨 측 해석을 함께 보내면서도 “입법취지를 고려해 서울시 측 해석으로 판단해 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에 국토부는 ‘보행상 심한 장애인으로 버스·지하철 등 이용이 어려운 사람’이라 회신했고, 서울시 측은 재판부에 해당 공문을 증거 자료로 제출했다. ‘교통약자법의 주관부처인 국토부까지 서울시와 마찬가지로 콜택시 이용대상자를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국토부의 유권해석은 법원의 판단을 구속하지 않는다”며 이를 기각했다. 이어 “보행상의 장애가 있고, 어느 부위의 장애이든 그 정도가 심하고 버스·지하철 이용이 어렵다면 특별교통수단을 제공하는 것이 교통약자법 입법 취지에도 맞는다”며 황씨 측 판단이 옳다고 판단했다.

2심은 서울시의 장애인콜택시 제공 거부가 차별행위에 해당한다며 1심 판결을 일부 뒤집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26조가 교통약자에게 특별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를 거부하는 것은 차별행위라고 본 것이다. 그러면서 서울시와 서울시설공단이 황씨에게 위자료로 3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서울시의 모호한 용어로 차별 초래, 당장 고쳐야”

이번 판결이 장애인 이동권을 폭넓게 보장하는 초석으로 기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황씨와 비슷한 처지의 보행 장애인들이 본인들에 대한 차별행위도 중지해달라며 집단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황씨의 법률대리인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는 “서울시 측은 재판에서 ‘지금도 장애인콜택시가 부족해서 대기시간이 길다’고 주장했지만, 이건 장애인콜택시를 탈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줄여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고 법정대수 자체를 늘려야 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한 정부가 최종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국토부는 장애인콜택시의 법정대수를 산정할 때도 ‘보행상 중증장애인’을 기준으로 산정해왔고, 지난 7월 개정한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에서도 ‘중증보행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며 “법원이 이 용어에 대한 정의 규정 자체가 없는 상황임을 꼬집었다”고 했다. 이어 “이번 판결로 장애인콜택시의 법정대수가 다시 제대로 산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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