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하고 작지만 독창적…장욱진 그림 30여년 뜯어본 미술사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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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를 잘 그리는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한국인의 심성에 가장 친근한 그림을 그린 화가로 꼽히는 장욱진(1917~1990). 나무, 집, 가족, 까치, 해와 달, 산과 아이 등의 단순한 인간·자연 이미지를 평면적인 화면에 반복해 그리면서도 그릴 때마다 시공간을 초월한 새로움과 독창성을 구축했던 이 거장은 평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작품에 보시한다'고 말할 정도로 선승의 수행과 같은 길로 보고 화업을 이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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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뭘 하는 사람이오?
“까치를 잘 그리는 사람입니다.”
“입산했더라면 진짜 도꾼이 됐을 것인데…”
“그림 그리는 것도 같은 길입니다.”
1976년 한국 선불교의 큰 어른이었던 경남 양산 통도사의 경봉스님은 한 시골사찰에서 초라한 행색의 50대 화가를 만나 선문답을 주고받는다. 화가는 스님과 대화를 나눈 뒤 ‘비움은 따로 있지 않다’란 뜻의 ‘비공(非空)’이란 법명을 받게 된다. 그의 이름은 한국인의 심성에 가장 친근한 그림을 그린 화가로 꼽히는 장욱진(1917~1990). 나무, 집, 가족, 까치, 해와 달, 산과 아이 등의 단순한 인간·자연 이미지를 평면적인 화면에 반복해 그리면서도 그릴 때마다 시공간을 초월한 새로움과 독창성을 구축했던 이 거장은 평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작품에 보시한다’고 말할 정도로 선승의 수행과 같은 길로 보고 화업을 이어나갔다.
지난 2000년 국민화가 반열에 오른 장욱진의 생전 작품과 관련 아카이브, 평론 등을 집대성한 ‘카탈로그 레조네’(전작 도록) 발간을 이끌었던 정영목 서울대 미대 명예교수는 그 뒤 20여년간 쓴 평문 등을 모아 최근 펴낸 책 ‘단순한 그림 단순한 사람’(소요서가)에서 화가의 삶의 태도와 세계관이 불교와 근본적으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었으나 작품으로 표출된 것은 또 다른 복합적 양상을 띠고 있었다고 짚어낸다. ‘사람의 몸이란 이 세상에서 다 쓰고 가야 한다’고 생전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도 산다는 것을 소모한다는 것으로 본 불교의 ‘무(無)’의 세계관의 반영이었으나 정작 불교와 직접 연관되는 작품들은 수십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파울 클레 같은 서구 모더니스트의 20세기 초 회화의 영향을 일정하게 받으면서 회화적으로 출발했으나 삶과 예술을 다르게 보지 않는 생활을 지속해가면서 생략과 압축의 조형언어가 자연스럽게 불도의 가르침과 일치해갔다는 것이 그의 통찰이다.
책은 이중섭, 김환기, 박수근, 유영국과 함께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 꼽히는 장욱진의 60년 화력을 작은 그림, 큰 주제, 오브제, 불교와 도가사상 등의 몇 가지 열쇳말로 정리한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고 그림은 형식으로 표현된다”는 지론을 펴면서 장욱진을 한국적 모더니스트 혹은 삶과 작업이 일치하는 전례없는 독창성을 보여주는 포스트모더니스트로 개념 짓는다. 정 교수는 장욱진이 60여년간 집요하게 나무, 집, 가족, 까치, 해와 달 같은 인간과 자연의 소재들을 반복적으로 표현한 사실을 놀라운 눈으로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엽서그림 같은 소품들로 주로 인식되어온 고인의 그림 세계를 무한히 큰 우주적 영역, 반복이 아닌 반복으로서 풀이한다. 화가 장욱진을 유일무이한 독창성을 지닌 진정한 한국적 모더니스트로 재평가하고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그의 자리를 재정립하기 위해 서사적 접근을 시도했다는 미덕이 돋보인다.
“그는 자연을 “그저” 보고, 듣고, 느낀다. 위선과 목적 없이 “그저”느낀다. 그리하여 마음이 비워지면 그림을 그린다…자연이 공간의 일이라면 그리는 행위는 시간의 일이므로 이러한 시공간의 여러 틈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장욱진의 그림이라 할 것이다.”(236~237쪽)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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