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에 떨어 본 사람은 안다…개미마을의 따뜻한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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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도 만원, 올해도 만원을 기부했어. 좋은 마음으로 하지. 나도 도움을 받으니까. 더 있으면 더 하고 싶어."
김씨는 "증손자를 키워서 기부를 많이는 못 하지만, (나도) 쌀 한 포대 주면 얻어먹는데 기부를 안 해서 되겠나"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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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가구 200만원 모아
“지난해에도 만원, 올해도 만원을 기부했어. 좋은 마음으로 하지. 나도 도움을 받으니까. 더 있으면 더 하고 싶어.”
기온이 영하 13도까지 떨어졌던 지난 22일 아침 8시,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개미마을엔 집집마다 하얀 김이 폴폴 올라왔다. 지붕 끝 배수로엔 땅으로 떨어지던 물이 팔뚝만 한 고드름이 된 채 매달려 있었다. 차 한대가 눈이 녹지 않은 길을 거북이처럼 올랐다.
인왕산 등산로변에 있는 개미마을은 서울의 대표적인 달동네다. 저소득층과 노인층이 많은데 도시가스가 연결돼있지 않아 연탄과 등유로 매서운 겨울을 난다.
솔 끝마다 얼음 방울이 맺힌 빗자루로 집 앞을 쓸던 김계연(69)씨는 등교하는 증손자를 마을버스에 태운 뒤 손을 흔들었다. 이 동네에만 40여년을 살았다는 김씨는 “겨울 석달이 문제”라며 문을 열어 천장까지 붙여둔 단열 매트를 보여줬다. 집 바깥벽에도 단열재가 덧대어 있었다. 몸이 힘든 탓에 아침·저녁으로 연탄을 교체하기 어려워 바닥에 전기장판만 겨우 깔아뒀다. 설거지, 샤워할 때만 온수를 쓰기 위해 난방을 한다.
10년 전부터 김씨는 성금으로 1만원을 낸다. 김씨는 “증손자를 키워서 기부를 많이는 못 하지만, (나도) 쌀 한 포대 주면 얻어먹는데 기부를 안 해서 되겠나”라며 웃었다.
알음알음 시작된 모금이 본격화한 건 2018년 겨울부터다. 그해 겨울 기름값이 급등했고, 많은 집이 기름보일러를 연탄보일러로 교체했다. 그때를 기점으로 주민센터나 복지단체에서 연탄 지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지난 22일 오전 마을 어귀에서 만난 권용원(75)씨는 “그 전엔 하는 사람만 기부했는데 난방비가 올라 어려울 때 외부에서 연탄 지원을 해주자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 이후 더 많은 분이 기부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권씨는 올해에도 5만원을 기부했다. 마을 중턱엔 각 집으로 배달을 기다리고 있는 연탄과 장작이 쌓여 있었다.
‘우리도 받기만 하지 말고 내자.’ 어려울 때 받았던 마음에 보답하자는 분위기가 퍼져나갔다. 지난해엔 183만2000원이 모였다. 전년도보다 12만5000원 는 액수다. 아직 12월이 다 가지 않았지만 24일 현재 올해 모금액은 200만원을 훌쩍 넘겼다. 신기록이다. 100여 가구의 개미마을(홍제3동 23·24통) 주민들은 이렇게 모은 돈을 매년 ‘희망온돌 따뜻한 겨울나기’ 성금으로 주민센터에 전달한다. 서울시와 서울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모금하는 이 성금은 지역 내 어려운 이웃을 지역에서 돕자는 취지로 매년 겨울 서울 시내 각 ‘통’ 별로 성금을 모금한다. 개미마을은 매년 모금액 상위권을 차지한다.
어려운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 마음을 잘 안다고 하지 않느냐.
사랑방 격인 동네 슈퍼에서 만난 홍제3동 23통장 구기만(58)씨는 “어려운 사람들은 어려운 사람들 마음을 잘 안다고 하지 않느냐. 모금한다고 얘기하면 싫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대개 자기 형편에 맞춰 1만∼5만원씩 낸다”며 “대부분 독거노인들이다. 사실 우리 동네 주민 입장에선 무리하는 거다. 그런데도 연탄 등 지원받은 게 있으니 보답하는 마음으로 성심성의껏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김가윤 기자 ga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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