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딩 눈치 보여 코트 입었다"…뮤지컬 '시체 관극' 논란 [연계소문]
연(예)계 소문과 이슈 집중 분석
공연계 '관람 분위기' 두고 갑론을박
옴짝달싹 못하는 '시체관극'…"매너" vs "과해"
대중음악계에선 '떼창' 지적도
"개인 영역 규제 어려워, 성숙한 공공 의식 필요"
최근 뮤지컬 업계에 '시체관극'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시체관극'이란 일절의 소음이나 미동 없이 '쥐 죽은 듯' 공연을 봐야 한다는 고착화된 관람 형태를 지칭한다.
연말을 맞아 자녀들이 준비한 뮤지컬 나들이에 따라나선 김 모(62) 씨는 공연을 보기 전까지 딸들에게 지겹도록 관람 예절을 교육받았다고 털어놨다. 김 씨의 딸들은 "앞자리에는 특히 팬들이 많으니 몸을 너무 자주 움직여서도 안 되고, 공연 중간에 물 마시는 것도 최대한 자제하라"고 했다. 김 씨는 "행여나 피해가 될까 봐 신경이 곤두선 채로 공연을 봤다"고 했다.
김씨는 이날 영하의 날씨에도 코트를 챙겨 입었다. 그는 "요즘은 패딩 소리에도 눈치를 준다고 한다"며 "오랜만에 가족들과 기분 전환하러 가는 건데 괜히 서로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최대한 신경을 썼다"고 했다.
실제로 서울의 대형 뮤지컬 공연장에서는 관객들의 옷차림이 두꺼워지자 '패딩 등 부피가 큰 옷은 공연 시작 전 정리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소리가 날 수 있는 비닐 등은 미리 정리하라', '뒷사람의 시야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 등을 좌석 등받이에 붙이고 관람하라' 등의 안내도 이어졌다.
휴대폰 전원을 끄고, 음식물 반입을 금지하고, 옆 사람과의 대화를 자제하는 등의 에티켓은 라이브 공연의 특성상 예기치 못한 소리나 움직임이 전체적인 극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작된 것들이다. 여기에 타인을 배려해 모자 착용을 자제하고, 껌을 씹지 않고, 옆 사람에게 기대지 않는 등의 요소들이 추가돼 왔는데 이제는 관객의 옷차림과 관람 자세까지 지적하는 게 적절한 것이냐는 의견이 나온다. 과도한 에티켓 요구가 오히려 쾌적한 관람 환경 조성을 방해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하우스 어셔(공연장 안내원)에 매니저까지 5년여의 경력을 보유한 A씨는 "'시체관극'은 예전에도 흔히 쓰던 말이었지만 요즘은 티켓 가격이 오르면서 더 심해졌다. 관람 기회가 흔치 않아졌으니 더 예민해지고 비싼 비용을 지불한 만큼 높은 집중도를 원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순간에 관크(관객 크리티컬의 준말로, 관람을 방해하는 행위를 뜻함)녀가 됐다. 어디 가서 남한테 피해는 안 주고 살았다는 자부심이 있었는데 고나리(이래라저래라 지적하는 것) 당하니 이렇게 마상(마음에 상처 입었다의 준말)일 수가 없다. 2막이 갑자기 보기 싫어졌다. 아무래도 내 옆에 분이 민원을 내신 것 같다"
한 뮤지컬 관객이 공연을 본 후 자기 블로그에 올린 글이다. 업계는 난처하다는 입장이다. 경직된 관람 분위기가 활성화된 시장을 위축시켜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발표한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2023 3분기 공연시장 티켓판매 현황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올 3분기 공연시장 티켓 판매액은 3271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9년 3분기(1149억원)와 비교해 184.7% 증가한 수치로,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걸 넘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티켓 판매액 1위는 대중음악 콘서트(1711억원), 2위는 뮤지컬(1114억원)이었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옆 사람의 반복적인 머리 넘기기, 심지어 숨소리가 불편하다는 분들도 있다. 컴플레인이 들어오면 그에 따른 대처를 할 수밖에 없는데 안내받은 관객의 기분이 상하면서 역으로 항의가 들어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나라 뮤지컬 시장이 팬덤 파워를 기반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코어 팬들 위주의 관람 문화가 정착되어 왔다. 뮤지컬이 대중화에 주력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관객 유입을 막는 요소가 되어선 안 될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뮤지컬 업계에서 '시체관극'이 화두라면, 대중음악 분야에서는 '떼창'이 줄곧 거론된다. 팬들이 함께 노래하며 즐기는 아이돌 콘서트는 다소 불만이 적은 편이지만 공연 횟수가 많지 않고 무대 감상을 원하는 팬들이 많은 브루노 마스, 찰리 푸스 등 내한 가수의 공연 이후에는 늘 '떼창'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던 바다. 가수들이 감격하는 모습에 '떼창' 문화가 일종의 자부심처럼 자리 잡았는데 과도하게 큰 주변 관객들의 노랫소리에 제대로 공연을 즐기지 못했다는 반응이 줄을 잇는다.
10년 경력의 하우스 매니저 B씨는 "과거에는 서비스 관점 위주로 관객 응대가 이뤄졌다면 요즘은 관람의 흐름을 방해하는 행동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나 사전 공지 내용에 따라 단호하게 안내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 관람 태도 등은 제3자가 개입하기 어렵고, 개인의 영역을 과도하게 규제해서도 안 된다. 세세한 부분까지 매뉴얼화해 강제할 순 없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제작사나 공연장은 시야·좌석 등 관객 간 불편함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을 지속적으로 고심하고 마련해야 하며, 고객은 보다 성숙한 공공 의식을 가져 상호 건전한 공연 관람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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