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플랫이 선정한 올해의 여성 ‘98년생 김현진씨’[아듀 2023 송년 기획-젠더 이슈]
자신의 목소리를 꿋꿋하게 지킨 김현진씨
“범죄자가 처벌받는 판례를 만들어가면
세상이 조금씩 변화하지 않을까요”
성희롱을 당했다고 폭로한 지 7년, 그중 절반에 가까운 4년 동안 이어진 재판. ‘무고 가해자’가 될 뻔했던 1998년생 김현진씨(25)는 숨거나 피하지 않았다. 김씨는 늘 재판에 참석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문단 내 성범죄 사건, 미투(#MeToo·나는 고발한다) 운동 등에서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공개한 여러 피해자들은 ‘꽃뱀’ ‘무고범’이라는 시선과 싸워야 했다. 여성들은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라고 외쳤지만 가해자가 감옥에 간 건 폭로한 지 7년이 지나서였다.
경향신문 플랫팀은 24일 페미니즘 백래시(사회·정치적 변화에 대해 나타나는 반발 심리 및 행동) 현상이 강해진 2023년,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지켜온 김현진씨를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했다.
2016년 18세 고등학생이었던 김씨는 시를 좋아해 문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1년 전 시인 박진성씨(45)에게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후 많은 것이 바뀌었다. 당시엔 박씨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성희롱 피해 사실만 알렸다. 박씨는 자신의 이야기임을 알고 김씨에게 ‘치료비를 대주겠다’ 등 연락하더니, 돌연 돈을 노린 ‘허위 미투’라고 몰아갔다.
사건 초기 박씨는 문단 내 성범죄 사건을 보도한 언론사를 상대로 승소한 판결을 앞세워, 언론사들에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그 소송들에 김씨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김씨는 법원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민사소송 1심이 진행된 2021년 4월 9일, 김씨는 처음으로 재판정에 출석해 울음을 삼켜가며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이후 늘 재판정에 참석해 발언했다. 몇 년을 무고범 낙인에 시달린 끝에 검찰이 박씨를 허위사실 공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고 법원은 지난달 8일 박씨에게 ‘1년8개월의 실형’을 선고, 그를 법정구속했다.
전면에 나선 김씨는 재판 승소를 이끈 ‘주역’이었다. 오랜 시간 김씨가 보여준 단단함은 유사한 피해와 2차 가해를 겪는 여성들에게 위로가 됐다. 경향신문은 지난달 20일 김씨의 인터뷰와 판결 분석 기사를 실었다. 김씨가 SNS에 공유한 경향신문 지면 기사 게시글은1만회 넘게 리트윗되며 큰 반향을 얻었다. SNS에선 “당신들의 가해를 기억하고 기록하는 이들이 끝까지 추적해 수많은 ‘김현진들’의 말, 시간, 자리를 되찾을 것이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김씨는 지난 20일 기자와 통화에서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된 소감으로 “지금도 어디선가 싸우고 있거나 일상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피해자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싸운 여성들과 연대한 사람들에게 공을 돌렸다. 김씨는 “앞서 싸운 피해 여성들을 보면서 저도 용기를 얻고 나설 수 있었다”며 “제 싸움에도 많은 분이 연대와 응원을 보내주셨기에 잘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아직 박씨와 당시 ‘2차 가해’를 했던 사람들에게 사과를 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는 범죄자가 마땅히 처벌받는 판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세상이 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성범죄뿐 아니라 ‘넥슨 사태’를 봐도 오히려 피해자들이 2차 가해까지 받아요. 범죄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니 가해자들이 더 활개 치고 피해자들은 낙심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제 재판처럼 결국 범죄자가 처벌받는 판례를 하나씩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세상이 조금씩 변화하지 않을까요.”
김씨는 박씨 사건을 알리기 위해 만든 X(구 트위터) 계정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다른 피해 여성들의 사건에 연대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다. 드디어 재판을 마친 김씨의 내년 계획이 궁금했다.
“내년 봄쯤 학교에 가보려고요. 고등학교 때 시를 배웠는데 그때를 떠올리는 게 더 이상 무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성인이 된 제가 과거의 저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지 않을까요. 동시에 지금의 전 과거의 제가 낸 용기에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대로 인사하고 과거의 저를 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선희 기자 y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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