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냥꾼인가 백기사인가[사모펀드의 세계③]
주주행동주의 펀드로 탈바꿈…"제도적 배려 필요"
[서울=뉴시스] 김경택 배요한 기자 = 사모펀드에 대한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다. 모험자본 공급, 중소·벤처기업 투자, 신성장동력 발굴 등에서 톡톡히 제 역할을 하면서 '자금 해결사', '백기사'와 같은 존재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기업 사냥꾼', '먹튀'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사모펀드는 철저히 돈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며 기업을 싸게 인수해 가치를 끌어올린 뒤 비싸게 파는 것이 본업이자 숙명이기 때문이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사모펀드는 구조조정, 자금 투입 등을 통해 회사를 되살리는 순기능을 갖고 있지만 철저히 경제 논리로 투자 전략을 세우는 냉정함 탓에 '두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모펀드는 기업에 개입해 회사를 살리고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만 기업 인수 이후 되파는 과정에서 먹튀 논란을 일으키는 경우가 상당했다. 대표적인 예가 론스타 사태다. 론스타 사태란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지난 2003년 외환은행을 1조3800억원대에 인수한 뒤 약 4조대의 배당·매각 이익을 챙긴 사건이다.
이에 정부는 외국 자본에 대한 '대항마'로 육성하기 위해 국내 토종 사모펀드 운용사를 적극 육성했고, 현재 한앤컴퍼니, MBK파트너스, IMM인베스트먼트 등 대형 토종 PEF가 등장했지만, 여전히 사모펀드를 바라보는 시선은 마냥 곱지 않다.
사모펀드의 근본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한 것'에 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는 유동성이 부족한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구조조정을 통해 효율성을 높인다는 목적으로 기업에 투자하지만, 그 과정에서 지나친 구조조정 등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해내는 상황이 드물지 않게 목격돼 왔다.
물론,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해 경영권을 확보한 뒤 기업 가치를 높인 경우도 적지 않다. 올해 초 에스엠의 주가가 얼라인파트너스의 주주행동주의 캠페인으로 우상향했고, 오스템임플란트 역시 KCGI의 지배구조 개선 요구 이후 주가가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바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투자 회수가 끝난 기업 9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인수 시점에 평균 1070억원이던 기업 가치가 투자 회수 시점에 평균 2000억원으로 크게 올랐다는 분석도 있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시장의 관점에서 보면 사모펀드는 경영권 매각을 통해 일반적인 투자보다 훨씬 고수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기업 사냥꾼', '먹튀'라는 오명이 억울할 수도 있다"면서 "단 경제 논리가 아닌 사회적·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사모펀드의 지나친 구조조정과 분할 매각 등은 국민 정서와 어긋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명과 암이 분명한 탓에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배당금이나 시세차익에만 주력하던 과거에서 벗어나 최근 지배구조 개선, 부실 책임 추궁, 주주가치 제고 등 다양한 전략을 요구하는 주주행동주의 펀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와 지난 2018년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가 분할·합병을 추진할 당시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이를 반대, 경영 개입을 시도하면서 기업 사냥꾼 프레임이 불거진 것이다. 이에 앞서서는 지난 1999년 미국 헤지펀드 타이거펀드가 SK텔레콤 지분 취득 후 경영진 교체 및 사외이사 제도 도입을 요구하며 적대적 인수합병(M&A)을 시도하다가 이듬해 6300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은 후 지분을 모두 매도한 사례도 주주행동주의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주주행동주의 펀드가 가진 긍정적인 역할에도 불구하고 주주행동주의 펀드가 지나치게 단기 업적 주의에 치중하고 경영권 불안을 야기해 기업에 불필요한 비용 부담을 증가시킨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황 연구원은 "적극적인 주주제안이 기업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방향에서 제안된 것인지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중한 판단이 중요하며 주주제안에 대한 해석이 편파적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기업과 기관 투자자간의 의견소통이 일어날 수 있는 공식적·비공식적 정보 경로를 확대해야 한다"면서 "기업 경영진의 경영권 불안에 대한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제도적 배려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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