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이젠 땅속 항아리에 묻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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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을 마쳤다.
청방배추로 김치를 담갔다.
청방배추는 토종 배추 중 비교적 속이 노랗게 차는 배추다.
첫 귀농지인 경남 밀양에서 땅속 항아리에 김치를 묻었는데, 그 많은 김치에 하얀 곰팡이가 생기더니 모두 썩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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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방배추 크기 작지만 맛나… 뽀글뽀글 올라오는 김치의 신 냄새
김장을 마쳤다. 청방배추로 김치를 담갔다. 2023년에는 유난히 배추 모종이 자라지 않았다. 벌레가 갉아먹거나 죽거나 아예 크지 않았다. 더워진 기후 때문일까. 서늘한 곳에서 자라는 배추라 2024년엔 시기를 더 늦춰야 하나 싶기도 하다. 배추를 사서 먹을까 절망하는 와중에 다행히 실력 좋은 마을 이웃이 토종 청방배추 모종을 나눠주셨다. 자신도 귀하게 키웠을 모종을 거리낌 없이 나눠주는 이웃이 가까이에 있다는 건 축복이다.
충분히 숙성시킨 우리 똥거름을 밑에 뿌리고, 종종 오줌물을 주는 것만으로 배추는 쑥쑥 잘 자랐다. 시간이 지나 수확한 배추의 겉잎을 떼어 처마 밑에 말렸다. 부드럽게 씹히는 게 별미인 우거지가 되어 구수한 된장국을 끓일 것이다. 벌써 군침이 돈다. 남는 배추 찌꺼기는 닭에게 줬다. ‘꼬꼬꼬’ 날 것도 아닌데 날갯죽지를 펴서 쏜살같이 달려온다. 배추는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식물이다.
청방배추는 토종 배추 중 비교적 속이 노랗게 차는 배추다. 개량 배추보다 크기는 작지만 양보단 역시 질이다. 작으면 어떤가, 맛있으면 됐지.
짝꿍이 절인 배추를 홍시도 넣고, 이것저것 섞어 만든 양념에 무쳤다. 어디에다 넣지. 보관이 문제다. 냉장고는 이미 가득 찬 지 오래다. 그래, 땅속 항아리에 묻어보자. 첫 귀농지인 경남 밀양에서 땅속 항아리에 김치를 묻었는데, 그 많은 김치에 하얀 곰팡이가 생기더니 모두 썩어버렸다. 콘크리트를 깨서 만든 땅이었다. 아무래도 오래 딱딱하게 굳어 있던 땅이라 공기 순환이 되지 않아 그런 문제가 생겼던 것 같다.
다시 도전. 실패하지 말아야지. 항아리를 뜨거운 물로 깨끗이 씻고 뒤집어 말린다. 항아리가 내 무릎 조금 위로 올라오는 높이다. 텃밭 한 공간을 무릎만큼 파서 항아리 윗부분은 땅 밖으로 드러나게 남겨둔다. 환기를 위해서다. 마치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것처럼 간단하다.
먼지 한 톨 들어가면 안 된다. 정성스럽게 하나하나 절인 김치를 넣었다. 위에는 친환경 비닐과 마끈으로 묶어 이물질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일주일이 지난 뒤, 다시 들여다봤다. 뽀글뽀글 올라오는 김치의 신 냄새가 침샘을 저격했다.
옛사람들의 지혜가 참 놀랍다. 어떻게 항아리를 땅속에 묻어 음식 보관할 생각을 했을까. 항아리는 높은 온도(1200~1300도)에 구워지면서 물 입자보다 작은 구멍이 만들어지는데, 이곳으로 물은 나가지 않고 공기가 통해 숨을 쉰다. 밀양에서 김치에 곰팡이가 핀 것은 당연했다. 오랫동안 햇빛을 보지 못한 땅에 공기가 통할 리 없었다. 여기는 파면서도 지렁이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땅의 깊은 곳까지 공기가 통한다는 걸 실감했다.
냉장고 없는 집이 없다. 한 대는 기본, 석 대 이상 가진 집도 있다. 요새는 그 종류도 다양해져서 냉장고에 음식뿐 아니라 화장품과 옷까지 넣는다. 이렇게 사용하는 냉장고는 얼마나 많은 전기를 쓰고,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을까. 냉장고나 에어컨의 냉매로 쓰이는 수소불화탄소는 이산화탄소보다 수천 배 더 강력하게 지구온난화를 가속하는 온실가스다. 편의를 위해 냉장고를 쓴다 해도, 땅에 항아리를 묻는 등 대안적 방법은 얼마나 고려하고 있을까. 도시 아파트 단지 자투리 공간에 이런 항아리를 묻어보는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글·사진 박기완 토종씨드림 활동가
*농사꾼들: 농사를 크게 작게 지으면서 생기는 일을 들려주는 칼럼입니다. 지역이 다른 네 명의 필자가 돌아가며 매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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