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나의 배터리ON] 추돌사고 난 토레스 EVX, 배터리만 멀쩡한 이유는
[편집자주] '박한나의 배터리ON'은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배터리 분야의 질문을 대신 해드리는 코너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온을 비롯해 배터리 밸류체인에 걸쳐 있는 다양한 궁금증을 물어보고 낱낱이 전달하고자 합니다.
"KG모빌리티의 토레스 EVX가 추돌사고로 인한 전소에도 122개로 이뤄진 배터리셀에는 전혀 불이 붙지 않아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전기차가 전소될 정도의 화재에도 배터리가 온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지난 16일 오후 3시 10분경 부산광역시 북구 금곡동 인근 강변도로에서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이날 도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앞에 있던 토레스 EVX를 뒤에서 들이박았고, 추돌 시 승용차에서 시작된 불은 토레스 EVX까지 번져 차량 2대 모두 전소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사고가 주목을 받은 것은 토레스 EVX가 전소됐고 배터리팩도 화재로 영향을 받았음에도 LFP 블레이드 셀에는 열폭주에 의한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토레스 EVX에는 122개의 셀이 들어가는데 단 한 개의 셀도 변형이나 소실이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화재 감식 현장에 있었던 심준엽 KG모빌리티 기술연구소 ECO파워센터장 상무는 "당시 출동한 소방서에서도 전기차 화재용 장비를 여러 개 갖추고 갔는데 '쓸 일이 없었다'고 했다"며 "확인 과정에서 화재로 소실된 배터리 외장재의 재를 걷어 내고 배터리를 확인해 보니 셀이 그대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특히 쿨링플레이트 아래쪽에 있는 배터리 셀은 손상 자체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소방당국은 이날 26분 만에 화재 진화를 완료했다. 통상 전기차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배터리의 열폭주와 유해가스 발생 등으로 2시간 넘게 진화에 시간이 소요되고, 4만 리터 가까운 물이 필요해 진압에 어려움을 겪는다. 셀 수백개가 모여 한 팩을 이루는 배터리 특성상 한 셀에서 열폭주가 시작되면 다른 셀로 불이 옮겨붙기 때문이다.
심 상무는 "토레스EVX 의 배터리 용량을 고려할 때 표준규격인 21700(지름 21mm·높이이 70mm) 원통형 배터리로 구성할 경우 약 4000개 내외가 들어가는데, 토레스 EVX에는 LFP블레이드셀 122개만 들어간다"며 "팩에 들어가는 셀의 개수가 적기 때문에 셀 불량으로 인한 열폭주 등의 요인이 화재로 이어질 확률이 현저히 낮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KG 모빌리티에서 적용한 LFP 블레이드셀은 NCM(니켈코발트망간) 대비 열폭주 상황에서 유독가스의 분출이 없다"며 "순간 발열량도 1000도 내외로 급상승하면서 폭발하는 특성의 NCM과 비교해 블레이드셀은 200도 내외의 순간 발열량을 보여 폭발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고 덧붙였다.
심 상무는 토레스 EVX 차종에 가장 적합한 배터리를 개발한 게 배터리의 안정성을 확보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토레스 EVX에 탑재된 블레이드셀은 중국 배터리업체인 BYD가 특허를 가진 배터리셀이지만, 토레스 EVX 차종에 들어가는 배터리는 KG모빌티의 규격과 성능의 요구사항에 따라 KG모빌리티와 BYD가 공동 개발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심 상무는 "토레스 EVX에 적합하도록 LFP를 기반으로 처음부터 별도 개발한 배터리"라며 "셀과 팩의 생산도 BYD 중국공장 중에서도 KG모빌리티 전용 라인 공정에서 별도로 생산되며 한국 시장에 적합한 엄격한 품질관리를 통해 공급된다"고 말했다.
또 배터리에 적용된 셀투팩(Cell To Pack) 공법이 배터리 내구성을 강화하는 데 역할을 했다고 봤다. 셀투팩은 모듈이라는 중간 과정을 삭제하고 배터리 팩에 셀을 바로 담는 것으로, 셀을 촘촘하게 적재하고 셀과 팩 간의 접합상태 보강 등 외부 충격에 강한 배터리 팩으로 설계해 효율과 내구성이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심 상무는 "기존 배터리는 셀, 모듈, 팩으로 구성돼 모듈 간 통로의 배선 등으로 화재가 커질 수 있다"며 "반면 LFP 블레이드 배터리의 내부는 셀로만 가득 차 있고 팩의 최적설계를 통해 NCM 대비 화재에 취약한 내부 배선이나 회로를 최소화해 화재를 버틸 수 있는 시간이 다소 길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심 상무는 "이번 화재로 오히려 토레스 EVX에 적용된 LFP 배터리가 화재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하나의 사례가 된 것 같다"며 "조만간 배터리를 평택 연구소로 옮겨 BYD 엔지니어들과 함께 해체·분석 작업을 진행할 예정으로 셀들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다시 확인하겠지만 이번 사고를 계기로 막연한 전기차에 대한 우려나 두려움이 확산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당초 KG모빌리티는 LFP 자체의 화학적 안정성에도 LG에너지솔루션이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가의 제품이 아닌 중국산 배터리 탑재를 결정하면서 신차 출시 전부터 비판받았다. '중국산 제품을 믿을 수 없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히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LFP 배터리는 크리스털 형태의 육면체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격자 형태의 '올리빈 구조'를 가져 매우 안정적이고 화학적 안정성도 높다. 과충전이나 과방전으로 인한 화재 위험이 낮고 배터리가 뜨거워지는 현상도 적어 배터리 수명이 긴 편이다.
하지만 이번 사고로 토레스 EVX에 적용된 LFP 배터리의 안전성이 입증됐다는 반응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누리꾼들은 "이번 화재로 LFP 배터리를 다시 보게 됐다", "고열에도 강하니 중국산 배터리를 비판만 할 순 없다", "배터리에 불이 가해졌는데도 불이 안 탄 게 놀랐다", "하나 사야겠다" 등을 올리고 있다.박한나기자 park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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