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살해' 대형 로펌 변호사… 그날 무슨 일이 [사사건건]

조희연 2023. 12. 24.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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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크게 다쳤습니다. 머리도 다치고. 크게 다쳤습니다”

지난 3일 오후 7시49분 119에 이같은 신고가 접수됐다. 신고자는 국내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하고 있던 A(50)씨. 119구급대는 신고가 접수된 서울 종로구 사직동의 한 주상복합아파트로 향해 심폐소생술(CPR)을 한 뒤 A씨 아내를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사망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A씨를 긴급 체포했다. 사건 현장에는 검사 출신의 전직 국회의원인 A씨 아버지도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아내를 둔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 대형 로펌 출신 미국 변호사 A씨가 지난 12일 서울 성북구 성북경찰서에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송치되고 있다. 뉴시스
◆前 국회의원 아버지 도착한 뒤 119 신고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이성만 무소속 의원이 소방청으로부터 제출받은 ‘119신고자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A씨는 지난 3일 오후 7시49분 119에 “여기 구급차가 급히 필요하다. 우리 가족이 아프다”고 신고했다. 119상황요원이 가족 중 누구 아프냐고 묻자 A씨는 “와이프”라고 답했다.

아내의 상태를 상세하게 설명해달라는 상황요원의 요구에 A씨는 “머리도 다치고 크게 다쳤다”고 했다. 의식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의식이 조금 있다. (부르면) 조금 반응은 하는데 크게 반응은 안 한다”고 말했다. 상황요원은 아내의 응급 처치를 위해 구체적인 상태를 물었지만 A씨는 “정확하게 모르겠다”며 제대로 답변하지 않았다.

상황요원이 다른 사람을 바꿔달라고 하자 옆에 있던 그의 아버지 B씨가 전화를 대신 받았다. A씨는 피를 흘리는 아내를 두고 자신의 아버지에게 먼저 전화를 걸고, 그가 현장에 도착한 뒤에야 119에 전화한 셈이다. B씨는 상황요원에 “일단 빨리 와달라”며 “응급처치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 사고가 나서 피를 많이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응급처치 필요 없고 병원으로 모셔다드리면 된다는 겁니까.” 상황요원이 묻자 B씨는 “예. 사고가 나가지고 피를 많이 흘리고 있다”고 답했다. 상황요원이 “응급처치를 알려 드리려고 여쭤보는 것”이라고 설명해도 B씨는 “우선 빨리 와달라. 그럴 상황이 아니다”고만 했다. 상황요원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응급처치가 필요 없냐고 재차 물었다. B씨는 “예. 아기들이 있어가지고”라며 피를 흘리는 A씨 아내보다 아이들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119구급대. 세계일보 자료사진
소방은 신고 3분 만에 현장으로 출동했다. 또 A씨에게 세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통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119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해 확인한 A씨 부인은 위중한 상태였다. 당시 구급활동보고서에는 “접촉 당시 환자가 무의식, 무호흡, 맥박 없고, 바닥에 피가 흥건한 상태였다”며 “목 외상, 이마열상, 두부출혈로 외상성 심정지가 추정된다”는 등의 내용이 적혔다.

소방은 응급처치를 하며 아내를 27분 만에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아내는 오후 9시쯤 사망했다.

◆긴급체포된 A씨, 살인 혐의로 구속송치

경찰은 지난 12일 살인 혐의로 A씨를 서울중앙지검에 구속 송치했다.

부부는 평소 금전 문제 및 성격 차이로 가정불화를 겪었고 사건 당일에도 관련 내용으로 다툰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금속 재질의 둔기로 아내를 때렸다”며 “(둔기는) 고양이와 놀아주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부검 결과 A씨 진술과는 달리 피해자 사인이 경부 압박 질식과 저혈량 쇼크 등이 겹친 것으로 추정된다는 1차 구두 소견을 밝혔다.
아내 살해 혐의를 받는 50대 미국 변호사 A씨가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뉴시스
사건 당일 현장에서 긴급 체포된 A씨는 지난 6일 구속된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 윤재남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A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뒤 “(A씨가)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영잘실질심사를 위해 6일 오후 1시45분쯤 서울 성북경찰서 유치장을 나온 A씨는 갈색 패딩 점퍼를 입은 채 흰 마스크와 캡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왜 살해했나’ ‘혐의 인정하나’ 등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우발적인 범행이었나’라는 질문에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법원에 도착했을 때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법정 안으로 들어갔다.

A씨는 국내 대형 로펌을 다니다 최근 퇴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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