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파페치 품은 쿠팡의 속사정
국내 최대 이커머스 플랫폼 쿠팡이 영국 명품 플랫폼 파페치(Farfetch)를 인수한다는 소식에 유통업계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쿠팡은 이번 인수로 “520조원 규모의 글로벌 명품 시장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라며 “65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하고, 쿠팡의 물류 혁신과 파페치의 럭셔리 역량을 결합해 최고의 경험을 선사하겠다”라고 밝혔다.
쿠팡이 한때 시가총액 260억 달러(약 33조9000억원)까지 갔던 세계 최대 럭셔리 커머스의 주인이 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업계는 ‘쿠팡이 로켓배송으로 백화점까지 공략한다’며 연일 떠들썩한 반응이다.
그러나 이번 인수를 바라보는 시각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한 인수합병(M&A) 전문가는 기자에게 “명품 로켓배송 시대라니, 핵심을 잘못 짚었다”라고 꼬집었다. 쿠팡의 파페치 인수의 본질은 재무적 투자자(FI)들의 엑시트(투자 회수)를 돕기 위한 전략이란 것이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하는 근거는 이번 인수 주체가 이커머스 쿠팡을 운영하는 한국 사업법인이 아닌 쿠팡 지분 100%를 보유한 모기업 쿠팡 Inc이기 때문이다.
쿠팡 Inc는 쿠팡이 지난 2021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기 위해 현지에 세운 기업이다. 지분 절반 이상은 소프트뱅크비전펀드, 그린옥스캐피털, 매버릭홀딩스 등이 갖고 있고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김범석 의장의 지분율은 10% 수준이다.
그러나 뉴욕증시에 상장 후 쿠팡의 주가가 맥을 못 추면서 투자수익을 추구하는 재무적 투자자들의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쿠팡은 상장 첫날 주가가 50달러에 육박하며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넘어섰지만, 현재 주가는 16.21달러에 그쳤다. 시가총액은 37조6706억원 수준으로 줄었다. 로켓배송을 시작한 지 8년 만인 지난해 3분기 처음으로 흑자전환에 성공하고, 올해는 연간 흑자가 확실시되고 있지만 주가를 띄우진 못했다.
쿠팡이 국내 유통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평가에도 좀처럼 주가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는 쿠팡이 예전만큼 고성장을 이루기 어려울 거란 공감대가 번지고 있어서다. 매출 대부분이 한국에서 나오는 쿠팡의 사업 구조상 성장이 둔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내 이커머스 침투율(전체 소매시장 중 이커머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44%가량으로 15%대인 미국, 중국 등에 비해 월등히 높아 성장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쿠팡은 전체 유통 시장에서 자사가 차지하는 점유율이 한 자릿수 수준이라며, 앞으로 점유율을 더 끌어올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쿠팡은 생필품 장보기 외에 부가가치가 높은 명품 패션, 화장품 등의 분야에선 아직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글로벌 사업 성과도 미미하다. 일본은 진출 2년 만에 사업을 접었고, 대만의 경우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되지만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주가를 발목 잡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주가가 내려가니 재무적투자자들이 엑시트를 하기도 어렵고, 이로 인해 다시 주가가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상황.
결국 쿠팡이 M&A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했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어 보인다. 비록 파페치가 파산 직전까지 가긴 했지만, 쿠팡과 달리 부가가치가 높은 명품을 팔고 있고 190개국에 진출해 있어 해외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도 제격이기 때문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은 “뉴욕 증시에 상장한 기업의 매출이 한국에서만 일어난다는 건 어색한 일”이라며 “이번 인수의 본질은 미국 본사 입장에서 쿠팡의 기업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에 가깝지, 국내 쿠팡에 도입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라고 했다.
이런 속사정에도 국내 유통업계는 향후 쿠팡의 사업 확장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모양새다. 이는 그간 쿠팡이 보여준 행보 때문이다.
쿠팡은 막대한 물류 투자로 당일·익일 배송인 ‘로켓배송’ 시스템을 구축, 국내 유통 시장의 승자가 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돈만 쏟아붓는 회사’라는 인식이 컸으나, 이제는 온라인은 물론 이마트, 롯데 등 전통 유통 강자들도 견제하는 시장의 리더가 됐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낸 쿠팡의 경험은 곧 “명품 로켓 배송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직매입을 기반으로 한 쿠팡과 거래 대행 기반의 마켓 플레이스인 파페치의 사업 구조가 엄연히 다른데도 말이다.
이번 인수를 두고 한 업계관계자는 “쿠팡이 또 한 번 창업가 정신을 발휘했다”라며 “쿠팡이 플랫폼을 고급화하고 전문성을 강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의 말대로 이번 M&A로 쿠팡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김은영 채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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