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유기동물의 친구 장필순…“그들이 나를 가르쳐줘요”
제주 유기동물 돕는 싱어송라이터 장필순
“우울하고 힘이 들 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그냥 내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돼요. 당신에겐 친구가 있잖아요.”
겨울날의 고양이 목덜미처럼 보드랍고 따스한 음성이 작은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직접 통기타를 연주하며 팝송 ‘친구가 있잖아요’(You’ve got a Friend)를 들려주는 이는 싱어송라이터 장필순씨다. 그의 멜로디를 듣던 맨 앞자리의 관객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마라도 고양이’를 입양한 가족이었다. 유기동물의 친구가 되어준 사람들에게, 친구가 들려주는 노래였다. 앞으로도 친구가 되어달라는 당부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설 자리 잃은 고양이들을 위해
지난 9일 제주시 애월읍 제주관광대학교 데몬스트레이션룸에서 열린 ‘마라도 고양이 임시보호·입양프로젝트 입양가면무도회’ 콘서트에 장필순씨와 고양이의 친구들이 모였다. 2005년 제주도로 이주한 이후 꾸준히 유기동물 보호 활동을 하고 있는 장씨가 이번에도 무대에 올랐다. 그는 지난 9월 제주시 관덕정에서 열린 거리공연제에서도 마라도 고양이를 위한 공연을 펼쳤다.
마라도 고양이는 지난 3월 멸종위기종인 뿔쇠오리의 보호를 위해 마라도에서 제주시로 옮겨진 고양이들이다. 마라도에서 나고 자랐지만 섬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한꺼번에 퇴출당했다. 당시 반출된 45마리의 고양이들은 현재 5마리가 입양을 갔고, 12마리가 가정에서 임시보호를 받고 있지만, 아직 27마리가 ‘제주 세계자연유산센터’ 내 임시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단체들은 이러한 행사 등을 통해 고양이들의 현실을 알리고, 임시보호·입양 희망자를 모집하고 있다.
“설 자리를 잃은 아이들이잖아요. 저도 뜻을 보태는 의미에서 참여한 거죠.” 콘서트를 마친 장필순씨를 9일 저녁 제주시 애월읍 자택 인근 식당에서 만났다. 매번 ‘재능 기부’로 무대를 서고 있지만, 그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는 듯 말했다. 행사를 기획한 ‘유기동물없는 제주네트워크’의 김란영 상임대표는 그를 이렇게 소개했다. ‘제주, 유기동물 하면 딱 떠오르는 한국의 대표적 가수’.
장필순씨는 한국 포크록의 대모라는 명성과 함께 ‘유기동물’이 열쇳말로 따라온다. 그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jejusoony)도 음악 아니면 동물로 도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기동물에 마음을 쏟게 된 특별한 사연이 있었을까.
“동물은 나를 가르쳐 주는 존재”
도시 생활에 지쳐 쉬려고 온 제주에서 마주친 ‘낯선 풍경들’이 계기였다고 한다. “짧고 무거운 쇠줄에 묶여 있는 마당개들, 우리 부모님 세대처럼 동물을 방치해 키우는 분들이 많았어요. 유기견도 참 많았고요.” 제주는 인구수 대비 유실·유기동물 발생 건수가 전국 1위로, 보호소 안락사율도 전국에서 가장 높다. 눈에 띄는 유기동물을 한 두 마리씩 돕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제주에 이사 온 지 어느덧 18년, 변화는 서서히 찾아왔다. “이렇게 유기동물 위한 콘서트가 열리고 많은 이들이 인식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게 큰 변화죠.” 여전히 마을을 떠돌거나 방치된 개들도 많지만, 그 모습을 보고 시민 개인이 직접 나서서 동물을 보호하거나 도우려 하는 움직임이 많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아프고 버려진 동물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동물 구조는 아무나 못 합니다. 한없이 마음이 여려야 하고, 아주 세속적이지 못하고, 남이 아픈 것을 보았을 때 잘 무너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생명을 구하거든요. 제가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게 뭘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는 단순히 이들을 돕는 역할만 하고 있지 않다. 제주도 내 동물단체인 ‘프렌들리핸즈’에서 가수 이효리씨와 함께 활동하며 제주 유기동물 문제를 알리고 있고, 유기동물을 위해서라면 작은 무대도 마다치 않고 참여한다. 꾸준히 자선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을 일부를 유기동물 후원에 쓰고 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 자신이 얻는 게 훨씬 크다고 했다. “동물들은 이유 없는 사랑을 주잖아요. 동물들은 저를 많이 가르쳐 주는 존재예요.”
어깨에 다시 기타를 메는 이유
반려견을 생각하며 그가 지은 노래 ‘개똥이’(2021년)에도 이런 마음이 가득 담겨있다. ‘삶에 지쳐 상처뿐인 나, 넌 알고 있던 거지. 힘든 꿈에 시달릴 때도 넌 늘 내 곁에 있어 줬지.’
한편 그는 지난 7월 말 반려견 ‘까뮈’가 애견호텔에서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고를 겪기도 했다. 그에 대한 말은 아끼고 있다. “반려동물 영업 관련 제도가 개선되어야 하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동물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무엇이 달라져야 할까. 그는 동물과의 공존과 배려가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사회를 꿈꾼다. “동물을 집안에 데려다 놓고 꼭 끌어안고 살자는 게 아니에요. 아주 덥거나 추운 날 거리의 개와 고양이들이 목을 축이고 추위를 피할 곳이 있는 곳, 거창하지 않더라도 그들도 함께 사는 생명이라는 작은 호의가 당연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는 매일 반려견, 마당에 사는 길고양이, 동네 길고양이까지 6~8마리의 ‘동거 동물’을 모시며, 쑤시는 어깨에 기타를 메고 다시 무대에 오른다.
제주/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박승연 피디 yeo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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