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계 원로 "유럽 안보, 더는 미국에 의존해선 안 돼"

김태훈 2023. 12. 24.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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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1990년 동서독 통일 조약 협상을 주도한 독일 정계의 원로가 '더는 유럽의 안보를 미국에 의존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주목된다.

당장 2024년 미국 대선에서 고립주의자이자 미국 우선주의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이 큰 만큼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 이상 미국이 유럽의 안전보장에 전적인 책임을 질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더 강력한 유럽 차원의 방위력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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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협상 주도한 볼프강 쇼이블레
"러시아의 우크라 침략은 곧 유럽 침공"
국방비 지출 확대 등 방위력 개선 주문
"프랑스 보유 핵무기, 유럽 위해 쓰여야"

1989∼1990년 동서독 통일 조약 협상을 주도한 독일 정계의 원로가 ‘더는 유럽의 안보를 미국에 의존해선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주목된다. 당장 2024년 미국 대선에서 고립주의자이자 미국 우선주의자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이 큰 만큼 대비해야 한다는 취지다. 그는 미국 핵우산의 대안으로 유럽연합(EU) 역대 유일한 핵무기 보유국인 프랑스의 역할을 강조하기도 했다.

볼프강 쇼이블레(81) 독일 연방의회 하원 원로의장은 23일(현지시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유럽에 대한 침공”으로 규정했다. 이어 독일의 방위력은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정계의 원로인 볼프강 쇼이블레 연방의회 하원 원로의장. 독일 연방의회 홈페이지
독일은 동서독 통일 후 21년이 지난 2011년 징병제를 완전히 폐지하고 모병제로 전환했다. 그런데 군에 자원입대하려는 젊은이가 크게 줄어 정적한 규모의 병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쇼이블레는 독일 방위력 강화를 위해 징병제를 다시 도입할 것인지에 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을 계기로 독일 정부는 국방예산을 크게 늘리기로 했다. 올라프 숄츠 총리 내각은 2022년 국방비 지출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평균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그와 별개로 수년간 방위력 개선에 투입할 1000억유로(약 140조원)의 특별기금도 조성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쇼이블레는 “국방을 위해 더 많은 지출을 해야 한다는 것은 명확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유럽은 충분한 억제력이 필요하다”며 “자유와 안전의 유지에는 비용이 든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더 이상 미국이 유럽의 안전보장에 전적인 책임을 질 것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더 강력한 유럽 차원의 방위력을 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약 11개월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조 바이든 현 대통령을 누르고 백악관에 재입성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 시점에서 매우 주목되는 발언이다. 트럼프는 임기 내내 유럽 동맹국들, 특히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와 극심한 불화를 겪었다. 트럼프는 ‘독일 같은 부자 나라가 방위비를 그렇게 적게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 ‘독일이 국방 예산을 늘리지 않으면 독일에 주둔한 미군을 철수시킬 수 있다’는 위협도 가했다. 기본적으로 고립주의 성향인 트럼프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미국 우선주의를 신봉한다.
2017년 3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미·독 정상회담 도중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발언하는 동안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다. 트럼프 시절 독일·미국 관계가 얼마나 험악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AP연합뉴스
그간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미국의 핵우산 제공을 통해 안보를 누려 온 유럽이 독자적 방위 태세를 확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쇼이블레는 프랑스의 역할에 주목했다. 프랑스는 EU 회원국 가운데 유일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이자 핵무기 보유국이다. 쇼이블레는 “프랑스가 핵 억제력을 유럽을 위해 활용할 수 있도록 독일을 비롯한 유럽이 전반적인 재정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결정적인 순간 프랑스의 핵무기가 유럽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프랑스와 다른 유럽 국가들이 평소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다만 그는 핵무기 사용 여부와 관련한 최종 결정은 프랑스가 갖게 될 것이라는 전제 조건을 달았다.

쇼이블레는 50여년 전인 1972년 기독민주당(CDU) 소속의 연방의회 하원의원으로 중앙 정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헬무트 콜 총리 내각과 메르켈 총리 내각에서 내무장관, 재무장관 등을 역임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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