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이었는데…“난 멍청해” 자괴감 부추기는 부모의 한마디는?[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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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회사 입사 3년 차인 김수영 씨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내내 심장이 두근거린다. 아무도 뭐라 하지 않는데도, 뭔가를 실수해서 혼날까 봐 불안해서다. 사소한 업무 지적이라도 당하는 날엔 수치심과 자괴감에 휩싸여 집에 와서도 끙끙거리며 일한다. 수영 씨는 “지적당한 보고서가 무능하고 쓸모없는 내 자신처럼 느껴져 부끄럽다”며 “사소한 업무 피드백도 ‘네가 멍청해서 그렇다’고 들린다”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실제로 그는 꼼꼼하고 성실해 사내 평판이 상당히 좋다. 남이 보는 수영 씨와 스스로 생각하는 수영 씨의 모습은 왜 이렇게 다를까.
수영 씨는 전형적인 ‘불행한 완벽주의자’다.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만큼 훌륭한 성과를 내지만, 정작 본인은 언제나 부족하다는 자괴감에 허덕인다. 불행한 완벽주의자들은 자신이 세운 높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멍청하고 한심한 사람으로 낙인찍는다. 아무 쏟아부어도 가득 찰 수 없는 ‘밑 빠진 독’과 같다.
그렇다고 대충대충 사는 게 좋다는 말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좋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크다. 조직 역시 이런 인재들을 선호한다. 다만 성과를 내기 위해 자신을 갉아먹으며 추구하는 완벽주의는 결국엔 득보다 실이 많다. 이런 불행한 완벽주의는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너 진짜 똑똑하다” 독이 된 칭찬
“머리 좋다” “똑똑하다”란 말을 들었을 때 기분 나쁜 사람은 없다. 학구열이 남다른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럴지 모른다. 그런데 아이에게 이런 칭찬을 많이 하면, 불행한 완벽주의자로 크도록 씨앗을 심어주는 것과 같다.
머리가 좋다는 칭찬을 많이 받고 자란 아이는 뭔가 성취를 이루면 “내가 머리가 좋아서” 혹은 “내 능력이 뛰어나서”라고 여긴다. 여기까진 괜찮다. 그런데 반대일 때가 문제다. 실패했을 땐 “내가 멍청해서” “내가 무능해서”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지능은 노력해도 바꾸기 힘든 요소다. 타고난 요소 때문에 어떻게 손쓸 방법도 없이 “나는 무능하다”는 자괴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머리 좋다”는 칭찬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한 연구를 살펴보자. 아이의 지능을 칭찬을 하지 말라는 말은 언젠가 어렴풋이 들어봤을 법하지만, 아래 소개할 연구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고 있어 자녀를 둔 부모라면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캐럴 드웩 미국 스탠퍼드대 심리학과 교수 연구팀은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고, 어려운 시험 문제를 풀게 했다. 그리고 실제 점수를 알려주는 대신 모두에게 “80점을 맞았다”고 알려주며 칭찬해줬다. 한 그룹에는 “이 문제를 풀다니 너 진짜 똑똑하구나”라고, 다른 그룹에는 “이 문제를 풀려고 정말 열심히 노력했구나”라는 칭찬을 해줬다.
그런 다음 난도를 높여 2차 시험을 치렀다. 5학년이 풀 수 없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이번에도 실제 점수를 알려주는 대신 “50점을 맞았다”고 알려줬다. 첫 번째 시험보다 30점이나 떨어진 점수였다. 아이들에게 이 점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물어봤다.
앞서 지능을 칭찬받았던 아이들은 시험을 잘 못 본 이유로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답했다. 틀린 시험 문제를 집에 가서 더 풀어보고 싶냐는 질문에는 “싫다”고 답한 아이들이 많았다. 시험을 못 본 이유를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생각한 아이들은 재도전 의지가 많이 꺾이고, 문제 풀이에 흥미를 잃었다.
반면 노력을 칭찬받은 아이들은 낮은 점수를 받은 이유로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답했다. 그리고 “시험 문제를 집에 가져가서 더 풀어보고 싶다”고 했다. 노력하면 결과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도전하고 싶은 의지가 생긴 것이다.
심지어 이들은 실제 점수에서도 차이가 났다. 두 번째로 봤던 어려운 시험에서 노력을 칭찬받은 아이들은 지능을 칭찬받은 아이들보다 점수가 높았다. 문제가 어려웠지만, 칭찬으로 고무돼 끈기 있게 도전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남들과 비교…성적 거짓말하기도
앞서 소개한 수영 씨는 회사에서 잘못을 지적받은 보고서가 꼭 자기 모습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그런데 그 보고서가 진짜 수영 씨일까? 그저 수영 씨가 작업한 여러 보고서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왜 자신과 동일시하는 걸까. 또 그동안 수많은 잘 쓴 보고서는 어디로 가고, 왜 이렇게 잘하지 못한 일에만 집착하는 걸까.
앞서 소개한 같은 연구진의 또 다른 연구를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연구진은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비슷한 조건의 또 다른 실험을 했다. 이번에는 두 그룹으로 나눈 뒤에 시험을 보고, 얼굴을 모르는 다른 학교 동급생에게 시험 점수를 알려주라고 했다.
그 결과 “머리가 좋다”는 칭찬을 받은 아이들의 약 40%는 다른 학교 아이들에게 자기 점수를 더 높게 부풀려서 알려줬다.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점수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또래에게 공개하는 것뿐인데도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연구팀은 “성과에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다른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라며 “성과가 곧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학습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노력을 칭찬받은 아이들은 다른 아이에게 있는 그대로의 점수를 알려줬다.
또 아이들에게 ‘틀린 문제를 푸는 방법’과 ‘다른 학생은 몇 점 맞았는지’ 둘 중 무엇이 더 궁금한지 물어봤다. “머리가 좋다”는 칭찬받은 아이들의 86%가 틀린 문제 푸는 방법보단, 다른 애들은 몇 점 맞았는지에 관심이 있었다. 노력을 칭찬받은 아이들은 77%가 틀린 문제 푸는 방법을 알길 원했다. 성과에 집착할수록 틀린 문제를 잘 풀어 다음에 더 좋은 성적을 받겠다고 할 것 같지만 의외의 결과였다. 자신에게 직접 득이 되는 문제 풀이 방법보단, 남의 성적과 비교하기 바빴다.
연구팀은 “지능을 칭찬받은 아이들은 매우 성과 지향적이고, 실패에 극도로 취약했다”며 “이들은 과제에 흥미가 낮았고, 해결하고자 덤비는 끈기가 부족했으며, 실패 후에는 자기 비난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게다가 이들은 나중에 지능과 관련 없는 일을 하고 나서도 그 결과를 자신의 지능 탓으로 돌리기도 했다.
잘해야 인정받는 ‘조건부 사랑’…완벽주의 키워
어떤 부모도 자녀가 불행하길 바라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행복하게 잘 살라고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강조한다. 이 과정에서 부모도 아이에게 미칠 영향을 잘 몰랐기에 잘못된 방향으로 칭찬하고, 성과 지향적인 삶을 강요했을 수 있다. 게다가 부모도 역시 성과 지향적인 삶을 강요받으며 자란 과정에서 완벽주의 성향을 갖게 돼 그럴 가능성이 크다.
이때 부모의 양육 태도가 권위적이기까지 하다면 자녀의 완벽주의 성향은 더욱 강해진다. 여기서 ‘권위 있는 부모’와 ‘권위적인 부모’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세계적 아동발달학자 다이애나 바움린드는 자녀를 통제하는 정도와 애정을 표현하는 정도에 따라 부모의 유형을 구분했다. 이에 따르면, ‘권위 있는 부모’는 애정을 주면서 통제도 가하는 이상적인 부모다. ‘권위적인 부모’는 애정은 덜 주면서 혹독하게 야단치고, 엄격한 기준으로 통제하는 부모다.
‘권위적인 부모’는 자녀가 뭔가 성공했을 때만 겨우 칭찬해주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자라는 아이들은 존재 자체로 사랑받는 경험을 하지 못한다. 잘해야 사랑받는 조건부 사랑에 익숙해져 실수하고, 실패했을 때 인정받지 못할까 봐 과도하게 불안해한다. 완벽함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아예 시작조차 엄두 내지 못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기도 한다.
“존재 자체가 기쁨”이라는 메시지 대신 “성공해야만 내 자식” 같은 암묵적 메시지로 인해 자녀는 타의적 완벽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지난 기사 ‘“난 무능하다”는 강박, ‘불행한 완벽주의자’ 만든다’ 참고) 또한 부모 자신의 완벽주의 성향으로 인해 “내가 못난 탓”이라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자녀도 이를 보고 배울 가능성이 크다.
“100점 아녀도 괜찮아” 스스로 다독여야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완벽주의 성향은 삶의 훌륭한 ‘무기’라는 점이다. 과도한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겪는 부작용도 많지만, 이 덕분에 많은 것을 성취해 내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100%’ ‘100점’ ‘1등’과 같은 절대적인 목표는 수정할 필요가 있다. 과한 목표는 필패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네 명의 완벽주의자’와 ‘나는 왜 꾸물거릴까?’를 집필한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100% 대신 70%를 추구하라”고 조언한다. 70점 수준으로 대충하란 얘기가 아니다. (사실 완벽주의자들에게 ‘대충’은 더 어렵게 느껴지는 미션이다) 매사에 100%를 달성하려고 끙끙거릴 게 아니라, 진짜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일에 최대의 노력을 쏟을 수 있도록 선택과 집중을 하라는 말이다.
즉, 굳이 전심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는 힘을 빼고 30% 정도는 여유를 가져도 된다. 이 교수는 “모든 일에 100% 힘을 쏟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심리적 에너지를 비워두는 부분이 있어야 진짜 중요한 일에 최선을 다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노력으로 결과를 통제할 수 있는 일에는 노력하고, 노력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은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모든 일에서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다 지쳐버린 건 아닌지 돌아보자. 하다못해 마트에서 작은 물건이라도 싸게 잘 사려고 한참을 비교하고, 상사에게 쓸 메일의 인사 문구를 고치고 또 고치느라 몇 분 이상을 허비하는 모든 행동이 ‘잘하고 싶어서’ 일 수 있다. 에너지를 아낄 때를 구분해야 진짜 중요한 일에 쏟을 힘이 남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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