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첫발 뗐지만… 가격 올리든 말든 아직은 강 건너 '유튜브 구경'

이혁기 기자 2023. 12. 2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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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쿠프 IT 언더라인
빅테크 가격인상과 무대책
줄지어 구독료 올린 기업들
당황한 소비자만 울상 지어
해외 빅테크 규제 강화하는데
한국 이제 발걸음 뗴기 시작
빅테크 법망 이대로 괜찮나

현대인에게 '구독 서비스'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유튜브부터 음원 스트리밍, OTT 등 하루의 시작과 끝을 구독 서비스와 함께하고 있으니까요. 이 때문에 세계 각국에선 유튜브, 넷플릭스 등 빅테크를 규제하는 법안을 속속 내놓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에선 이제 막 논의를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최근 빅테크 기업들이 줄지어 구독료를 올리고 있다.[사진=뉴시스]

최근 들어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가격을 일제히 올리고 있습니다. 스타트를 끊은 건 OTT 플랫폼인 '디즈니플러스'입니다. 지난 11월 기존에 운영하던 단일 요금제(9900원)을 9900원짜리 스탠다드 요금제와 1만3900원인 프리미엄 요금제로 나눴습니다. 문제는 고화질 서비스, 기기 4대 동시 스트리밍 등 단일 요금제에서 지원하던 기능을 프리미엄 요금제에만 적용했다는 점입니다. 사실상 가격이 9900원에서 1만3900원으로 40.4% 오른 셈입니다.

국내 시장점유율 5.0%(공정거래위원회·2022년 기준)에 불과한 디즈니플러스만 가격을 올렸다면 큰 문제가 되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기업들도 하나둘씩 가격 인상 행렬에 뛰어들면서 파문이 커졌습니다. 토종 OTT 플랫폼 '티빙'은 12월부터 기본 요금제인 베이직의 가격을 기존 7900원에서 9500원으로 20.2% 올렸습니다. 더 높은 해상도를 지원하는 '스탠다드(1만900→1만3500원)'와 '프리미엄(1만3900→1만7000원)'도 각각 인상했습니다.

일주일 뒤인 8일 유튜브도 요금제를 기존 1만450원에서 1만4900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인상률은 무려 42.5%에 달합니다. OTT 공룡인 넷플릭스는 다른 방식으로 가격 인상을 단행했습니다. 9500원짜리 베이직 요금제를 목록에서 아예 뺀 겁니다. 새로 가입하거나 재가입하는 소비자들은 이제 광고형 요금제(5500원)나 스탠다드(1만3500원), 프리미엄(1만7000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광고를 보고 싶지 않은 소비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최소 스탠다드 요금제를 골라야 합니다. 이렇게 따지면 가격이 9500원에서 1만3500원으로 42.1% 인상된 셈입니다.

소비자들 사이에선 어떻게든 저렴하게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분주합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방법은 VPN(가상사설망·Virtual Private Network)으로 자신의 위치 정보를 우회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으로 튀르키예·인도·아르헨티나 등 상대적으로 구독료가 저렴한 나라로 국가 정보를 바꿔 결제하면 요금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가령, 인도의 유튜브 프리미엄 요금제는 월 129루피로, 우리 돈 2000원가량만 내면 유튜브를 광고 없이 즐길 수 있습니다. 이 정도 금액 차이면 '디지털 이민은 선택이 아닌 필수'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법합니다.

문제는 이들 기업이 가격을 올리는 것에 소비자는 별 저항을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무엇보다 대체재를 찾기 힘듭니다. 유튜브를 예로 들어보죠. 국내에선 유튜브와 어깨를 견줄 만한 동영상 플랫폼 서비스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시장점유율도 압도적입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2 인터넷이용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의 유튜브 이용률은 88.9%에 달합니다. 10명 중 9명은 유튜브를 본다는 얘기죠. 이런 입지를 가진 유튜브가 가격을 올리면 구독자들은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구독하지 않아도 유튜브를 이용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유튜브는 몇년 전부터 꾸준히 동영상 시청 시 노출되는 광고 횟수와 빈도를 늘리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광고에서 자유로운 유료 결제를 경험해 본 소비자로선 광고를 봐야 하는 저렴한 요금제로 바꾸기가 쉽지 않습니다.

OTT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넷플릭스의 국내 월간활성사용자수(MAU)는 1137만명으로 2위인 티빙(510만명)의 2배에 달합니다.

물론 유튜브와 달리 OTT 시장엔 대체재가 있습니다. 웨이브나 쿠팡플레이 등 상대적으로 더 저렴한 OTT 서비스를 이용할 순 있습니다. 하지만 '더 글로리' 'D.P. 시즌2' 등 국내에서 대박을 친 작품들은 대부분 넷플릭스에서 독점 상영했습니다. 이 작품들을 보려면 넷플릭스를 결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외에선 이들 빅테크 기업의 행보를 저지할 강력한 법적 대안을 내놓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독점적 지위를 가진 빅테크 기업을 규제할 '디지털시장법(DMA)'을 만들어 내년 3월부터 시행할 예정입니다. 이 법을 통해 EU는 시가총액 750억 유로 이상, 월 이용자 4500만명 이상, 연매출 75억 유로 이상인 기업들을 '게이트 키퍼'로 지정해 제재를 가할 수 있습니다.

[자료 | 업계 종합, 사진 | 연합뉴스]

캐나다에선 지난 4월 '온라인 스트리밍법'이 통과됐습니다. 이 법안의 골자는 넷플릭스나 스포티파이(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등 거대 기업이 캐나다 방송규제법을 따르도록 만들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할 수 없도록 하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지만 국내 정부는 아직 빅테크 기업을 규제할 뾰족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1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경쟁촉진법(가칭) 제정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하긴 했습니다. 시장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를 지정하고 독과점 남용 행위를 규제하는 것이 이 법안의 골자입니다. 하지만 어떤 기준으로 지배적 사업자를 판단할 것인지 등 세부사항이 빠져 있어 법 제정까진 상당 기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이헌율 고려대(미디어학) 교수는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들은 대안을 찾기 어려워지는 '락인(Lock-in)' 효과에 발이 묶여버린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이들 기업의 요금 인상을 막지 않으면 소비자들은 계속 기업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빅테크 기업들의 '가격 인상 행진'을 이대로 두고 봐도 괜찮을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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