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만난 서인국과 '이재, 곧 죽습니다'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배우 겸 가수 서인국은 평소에도 웹툰과 게임 등의 콘텐츠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출연한 티빙 오리지널 '이재, 곧 죽습니다' 역시 영상화가 되기 이전부터 즐겨본 작품이다. 이제는 작품을 보면 '어느 정도 사이즈가 들어갈지 예상이 된다'는 서인국은 '이재, 곧 죽습니다'의 영상화를 확신하고 판권에 관심을 가졌지만, 이미 판권이 팔려 더 이상의 진전은 이뤄지지 못했다. 서인국 역시 촬영 등의 이유로 작품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 그렇게 멀어졌던 서인국과 '이재, 곧 죽습니다'는 돌고돌아 다시 만났다.
지난 15일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이재, 곧 죽습니다'는 지옥으로 떨어지기 직전의 이재가 12번의 죽음과 삶을 경험하게 되는 인생환승 드라마다. 서인국은 좌절의 끝에서 죽음의 심판을 받는 최이재 역을 맡았다. 7년간 취업 실패를 거듭한 끝에 삶의 의지를 잃은 최이재는 흙수저로 태어나 삶의 쓴맛만 보다 죽음 이후 잔혹한 심판을 받게 된다. 파트1 공개 이후 인터뷰를 위해 만난 서인국은 '이재, 곧 죽습니다'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작품을 망설임없이 수락했던 이유를 밝혔다.
"제가 살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회사에서 제작을 하니까 혹시 몰라 추천한다는 의미로 전화를 드렸어요. 아니나 다를까 이미 진행이 됐더라고요. 사람 보는 눈은 똑같다는 생각을 했죠. 처음에 저에게 제안이 왔을 때는 12명의 환생 중 한 명이었어요. 작품 자체를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참여하는 데 의의를 뒀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최이재 역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하셨어요. 엄청나게 기뻐서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취업준비를 하면서 혹독한 현실에 좌절하는 이재와 마찬가지로 서인국 역시 가수를 꿈꾸던 과거 온갖 고생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최이재를 구축하는 데 있어서는 자신의 경험에 이입하지 않고 온전히 최이재가 가진 상황에 집중했다.
"저도 가수지망생을 하면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오디션도 많이 떨어져봤는데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만, 이제를 준비하면서 제 감정을 이입하기에는 이재가 가진 고통이 너무나도 컸어요. 그런 생각보다는 이재가 가진 상황에 집중했어요. 하루 만에 전 재산, 사랑하는 사람, 친구를 잃고 마지막 희망이 짓밟히는 상황이잖아요. 이재가 가진 고통과 스트레스, 남들을 부러워하는 시기와 질투, 그로 인해 나의 불행에만 포커싱하는 성격이 되어버린 부분에 집중했어요. 그래서 모든 걸 내려 놓고 싶다는 최이재를 표현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최이재가 12번의 죽음과 환생을 경험하는 '이재, 곧 죽습니다'에는 각기 다른 배우들이 출연해 이재의 환생을 연기한다. 최시원, 성훈, 김강훈, 장승조, 이재욱, 이도현으로 이어지는 환생 라인업은 서인국마저도 "한 획을 긋겠다"는 자신감을 심어줄 정도로 화려했다. 바쁜 스케줄 탓에 일정을 조율하는 건 쉽지 않았지만, 정상급 배우들답게 이를 극복해내며 '다인일역'의 훌륭한 모범답안을 만들었다.
"라인업을 보고 '이거 한 획을 긋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만, 모두 바쁘신 분들이라 작업 과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리딩도 나눠서 했어요. 감독님이 제가 리딩하는 모습을 녹음하고 촬영해서 12명의 이재에게 보여주고, 촬영 현장에서 찍었던 제 모습도 모니터링한 다음에, 제 연기를 베이스로 감독님의 디렉팅이 들어갔어요. 12명의 이재가 죽고나서는 저에게 다시 와야 하기 때문에 저는 그 감정과 마지막 포즈 등을 토스 받아서 다시 촬영했어요. 엄청난 작업이었지만, 결과물을 봤을 때는 서로 간의 시너지가 잘 나온 것 같아 큰 일을 치룰 것 같았어요."
화려한 환생 라인업을 자랑하지만 결국 이들을 대표하는 건 서인국이다. 서인국은 화려한 라인업을 대표한다는 부담감보다는 애정을 가진 작품의 주인공을 맡게 된 부담감이 더했다고 털어놨다.
"원작의 팬으로 처음에는 참여라도 하고 싶었던 작품인데, 최이재 역할을 맡게 되니 기분이 좋았다가 확 부담이 됐어요.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고 놓치면 공격당할 수 있는 위치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것처럼 다른 분들도 생각하시는 게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실망하시면 어쩌나 부담이 되긴 했어요.
서인국의 말대로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작품이 영상화되는 과정에서 원작 팬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한다면 오히려 혹평을 받기 쉽다. 출연진 이전에 원작의 팬이었던 서인국은 자신이 알고 있고 기대하고 있던 것들을 주입하는 대신 오로지 대본에만 집중했다.
"이걸 그대로 구현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기 때문에 아예 다른 세계관으로 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웹툰에서의 캐릭터 성격과 대본에서의 성격이 다른 지점이 있는데 정답은 이쪽(대본)이라고 생각했어요. 멀티버스처럼 서로 다른 우주의 이재가 상황을 겪는다고 생각했어요. 결과물을 보니 오히려 원작과 달라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고 비슷해서 재미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저는 원작이 있는 작품도 원작보다는 대본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물론, 대본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도 있겠지만, 제가 작업하는 과정에서는 필요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배우 데뷔작인 KBS '사랑비' 이후 출연한 '응답하라 1997'이 큰 성공을 거두며 서인국은 상당히 빠르게 주연 배우 자리에 올랐다. 이어진 '주군의 태양', '쇼핑왕 루이', '어느 날 우리 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 '미남당' 등에서 주연, 혹은 비중있는 역할을 소화한 서인국은 자신이 맡은 책임감에 대해 돌아보며 '작은 성취감'을 통해 이를 극복한다고 밝혔다.
"배우뿐만 아니라 스태프 등 작품을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일하는데 안되면 책임감을 많이 느껴요. 그러다보니 작품을 고를 때 무겁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어쩔 때는 쉬고 싶을 때도 있어요. 이렇게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질 때는 나를 옥죄지 말고 지금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소년들' 처럼 작은 역할도 나가보고, 사소한 일을 완성해서 성취감을 느껴보기도 하고요. 그런 생각을 한 지 몇 년 됐는데 정신적인 부분에서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서인국이 말하는 '사소함에서 오는 성취감'은 동생이 운영하는 카페에 일을 도와준다든가, 집에서 요리를 완성하는 등 말그대로 사소했다. 때로는 '위스키 한 병을 다 마셔보자'는 목표도 있었다. 빈말로라도 '대단한 일을 했다'고는 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다만, 무언가를 해냈다는 사실 자체는 서인국에게 큰 도움이 됐다. 이렇게 작은 성취의 중요성을 깨달은 이유는 어느 순간 솔직하게 스스로를 직면했기 때문이었다.
"작품이 잘 됐다가 안 됐다가, 이런 부분이 반복되다 보니 제가 단단해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착각이었더라고요. 강해진 게 아니라 외면하고 있던 거더라고요. 어떤 계기가 있던 건 아닌데 어느날 문든 그런 생각이 들면서 확실하게 직면했어요. 그래서 작은 성취감을 느껴보자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물론, 친구들끼리 치는 장난일 때도 있고 작은 거긴 하지만 쌓이다보면 습관이 되더라고요. 제 인생에서 힘든 시기가 왔을 때 다시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조그마한 성취감을 쌓아나가고 있는 서인국은 그 성취를 조금씩 확장하려 한다. 제작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본인이 직접 구상해놓은 시나리오도 있다. 가수로서도 새 앨범을 준비 중이다. 직업적인 부분 외에도 즐겨하는 게임 패스 오브 엑자일(POE)의 공략법을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다는 꿈도 가지고 있다.
"제작에도 관심은 있는데 돈을 무서워하는 편이라 뛰어들기보다는 회사에 제작사가 있으니 추천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어요. 시나리오 역시 관심 있고 실제로 써놓은 것도 있어요. 관심가지는 감독님도 있었고, 작가님과 만나서 더 진행하려는 차에 '이재, 곧 죽습니다' 촬영에 들어가게 됐어요. 만약에 되면 이름 좀 올려달라고 해야죠. 앨범 작업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POE 새 시즌이 시작됐는데 빌드를 사람들과 공유 해보고 싶기도 해요. 오늘을 기점으로 일정이 마무리되는데 이제 달려봐야죠."
서인국은 내년이면 어느덧 데뷔 15주년을 맞는다. 서인국은 신인 시절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로 '시키는 대로 하지 말아라'라고 전했다. 이는 여전히 회자되는 '애기야' 때문이었다. 다만, 15년의 지난 활동을 전체적으로 돌아보면 "장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도 더욱 발전하고 싶다는 목표를 전했다.
"신인 서인국에게는 '무작정 시키는 대로 하지 말고 자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표출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애기야'때문이긴 한데 솔직히 반반이에요. 그 모습을 귀여워해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그로 인해 고통받는 서인국을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앞으로도 기꺼이 고통스러워 해드릴게요. 지난 15년을 전체적으로 돌아본다면 장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일들이 있었고 사람들이 모르는 개인적인 힘든 부분도 있었거든요. 그럴 때도 멘털이 흔들리지 않고 감정선에 대한 파악이 빨랐던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그렇게 지금의 서인국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앞으로의 서인국은 더 베테랑, 프로페셔널이고 많은 걸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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