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씨, 닥치고 정치혁명입니다”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3. 12. 2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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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과천 법무부 청사에서 이임식을 마치고 떠나는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1년 반을 돌아볼 때 ‘여기가 패착’이라는 장면을 하나만 들라면 지난 2월 국민의힘 대표 경선 개입을 꼽고 싶다. 나는 그즈음 칼럼에서 “김기현이 되면 조용히, 그러나 확실히 망할 것”이라고 썼다. 물론 용산이 비토를 놓은 다른 후보가 된다고 망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적어도 당정관계 변화와 정치혁명에 대한 한 줄기 희망은 걸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지금껏 지지부진한 인상을 면치 못하는 이유를 하나만 들라면 시대 소명에 대한 인식 결여를 꼽겠다. 그들은 지난 대선에서 ‘국가 정상화’를 내걸어 집권했다. 지나서 보니 윤 정권은 국가 정상화를 ‘문재인이 아닌 것’으로 이해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결과 ‘문재인과 방향만 반대일뿐 정상은 아닌 길’을 걸어왔다는 인상을 받는다. 국민은 수직 이동의 초월적 정상화를 열망했는데 윤 정부는 수평운동에 머무르고 있다.

그 수평운동은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도 현실에 안주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했다. 현 정부 지지층에게 제1야당 대표가 이재명이라는 현실은 매우 비현실적이다. 그 비현실적 현실을 가능하게 한 것은 두루뭉술 말해서 변하지 않은 여당이고 좁혀 말하면 ‘김기현 국힘’이었다. 하향평준화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경쟁은 일어나지 않는다. 2월 당 대표 선거에서부터 여당의 정치개혁이 시작되었더라면 이재명 민주당은 무너졌을 것이다. 지금 당내 비명 세력들은 이낙연씨가 ‘신당하자’고 추파를 던져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재명을 무너뜨릴 정치 동력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 동력은 경쟁자인 여당이 바뀔 때만 생겨나는 것이다.

‘이재명’이라는 현상은 정치적 현상이고 정치는 정치를 통해서만 무리 없이, 역사적으로 정리될 수 있다. 그를 검찰 수사로 끝장내려는 기도는 실패했다. 그 후유증으로 강서구청장 보선에서 참패했다. 거기에 크고 작은 국정운영 실수와 인사 실패가 더해졌다. ‘지는 놈’에게 냉혹한 것이 여론이다. 본격적으로 윤석열 정부를 얕보기 시작하는 기운이 움트고 있다. 마키아벨리가 정리했듯 얕보이는 지도자가 제일 안 좋다.

윤석열 정부가 훼손된 권위를 회복하는 길은 자신에게 부여된 시대소명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국가 정상화’의 개념설정부터 새로 해야 한다. 그 정상화는 40년이 다 돼 가는 87체제와 그 토양에서 사방팔방 뿌리를 뻗은 기득권 체제를 손보는 ‘정치 혁명’이어야 한다. 지금쯤 윤 대통령 본인도 한국 대통령들이 걸어간 ‘윤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것은 청와대라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었고, 사람의 문제도 아니고, 오로지 권력 시스템의 문제다. 권력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 정치 혁명이고 정치 혁명의 동력은 내부 혁명에서 나온다.

대선 국면이었던 2022년 1월 윤석열-안철수 연대가 필요하다며 나는 이렇게 썼다.

“야권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윤석열과 안철수가 ‘대한민국 정상화 혁명’이라는 가치연대의 동지가 되길 바란다. 그 혁명은 대선승리로 끝나는게 아니다. 여러 전선에서 비정상의 조직적 저항이 있을 것이다. 비정상은 반대진영에만 있는게 아니다. 대한민국 정상화보다 자신의 이익을 우선하는 야권내 세력이 1차적으로 타기되어야 할 비정상 세력이다.”

요행히 윤-안 연대가 이뤄졌고 정권교체는 되었지만 ‘정상화 혁명’은 없었다. 안철수를 쓰고 안 쓰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나는 그의 능력에 여러 번 실망했다). 내부 혁명을 통해 얻은 동력으로 대한민국을 정상화하려는 야심조차 가져본 적이 없다는데서 윤석열 정부는 길을 잃고 말았다. ‘1차적으로 타기되어야 할 비정상 세력’으로서의 여당으로는 야당을 자극하지 못하고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다. 여론을 움직이지 못하면 기득권은 정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때문에 3대 개혁도 안되고 의대 정원 확대도 안된다. 먼저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으면 변화는 불가능하다. 여론의 가슴을 덥힐 어떤 내부혁명도 윤정부는 하지 않았다.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가망이 별로 안 보이자 여권은 ‘조용히 망해가던’ 김기현 체제를 끌어내리고 1973년생 한동훈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불러왔다. 솔직히 그가 성공할지 잘 모르겠다. 사람의 천재성이라는 것은 우연히 발견되는 것이다. 지금 여당은 ‘혹시 있을지도 모를 한동훈의 정치적 천재성’에 운명을 맡겼다. 한동훈의 말마따나 ‘9회말 투아웃 투스트라이크’라면 무조건 방망이가 나가야겠지만 나는 지금이 7회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왜 안 나쁘냐 하면 한동훈보다 나은 인물이 여당에 단 한명도 없기 때문이다. 정말 한심한 당이 아닐 수 없다. 이 중차대한 시기에 평생 검사만 한 사람을 불러와 ‘이순신’이 되라고 한다. 한동훈이 할 일은 이 한심한 당의 면면을 싹 물갈이하는 것이다. 그 당에는 중진들도 별로지만 초선들이 특히 꼴불견이다. 집단 홍위병 노릇을 그렇게 알아서, 눈에 쌍심지 돋우고 하는 초선 집단을 나는 처음 보았다. 그들에 비하면 내일모레 여든이면서 아직 국회의원 한번 못한 장기표가 백배, 천배 ‘청년스럽고‘ 가슴을 뜨겁게 한다. 돈 안 밝히고, 권력 행사에는 무심하지만 애국에는 관심이 있는 10명만 찾아서 지휘부에 앉히라. 그게 정치 혁명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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