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동행] "자신있는 기술로 남 도와 뿌듯"…27년 미용봉사 배점옥씨
"내 취미는 봉사, 일상이고 습관…멈추지 않고 이어가는 게 내 목표"
(울산=연합뉴스) 장지현 기자 = "아버님∼ 머리 어떻게 해 드릴까요?"
지난 18일 울산 동구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난 배점옥(52) 씨의 얼굴이 환한 미소로 빛났다.
몇 차례 가위질과 함께 바리캉이 지나가자 덥수룩하던 어르신의 머리가 반듯해졌다.
능숙한 솜씨로 10분도 안 돼 미용을 끝낸 배 씨는 어르신의 얼굴에 붙은 잔 머리카락까지 스펀지로 꼼꼼히 털어내는 마무리 작업도 잊지 않았다.
거울에 여러 각도로 머리를 비춰보던 어르신은 구레나룻을 한 차례 쓸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올해로 27년째 미용 봉사를 이어오고 있는 배 씨의 일상은 온통 봉사 일색이다.
동구 미용봉사단 '하늘 한마음회'를 비롯해 장애인 복지시설 미용봉사단 '로드회', 네일아트 봉사단 '오늘네일' 등 다양한 봉사단체 회장을 맡고 있고, 부족한 미용 분야 봉사자 수를 늘리기 위해 다른 봉사자들을 교육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손뜨개질, 풍선아트, 반찬 만들기 등 손으로 할 수 있는 봉사라면 마다하지 않는다.
"누가 취미를 물어보면 '내 취미는 봉사'라고 얘기해요.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을 시간에 나가서 다른 어려운 분들을 도울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잖아요. 친구들한테도 가끔 따라와서 옆에서 빗자루질이라도 해달라고 해요. 그렇게라도 봉사의 기쁨을 접하게 해주고 싶어서요."
배 씨의 봉사 인생은 1997년 울산 한 미용학원에 강사로 취직하면서 시작됐다.
미용 관련 경험이 많지 않았던 그가 학생들을 더 잘 가르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무료 미용 봉사였다.
배 씨는 당시 학원 원장님과 함께 울산 북구 한 장애인 복지시설을 찾아가 원생들의 머리를 무료로 잘라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 실력이 쌓이고, 학원을 물려받아 원장이 된 뒤에도 봉사활동은 계속됐다.
배 씨가 가르친 학생들도 그의 봉사 여정에 함께하고 있다.
코로나 여파에 학원 문을 닫고 지금은 경주로 이사했지만 배 씨는 여전히 봉사하기 위해 평일에 두세 번은 울산으로 온다.
"다들 자격증을 따고, 자기 가게를 차리고, 생업으로 바쁘지만 그래도 함께하고 있어요. 한창때는 10명도 넘었는데 지금은 고정적으로 같이 봉사하는 멤버는 7명 정도예요. 저보다 열심히 하는 회원들도 많아요. 차 있는 회원들이 없는 회원들 챙겨서 같이 가자고 하고, 서로 독려도 하고요. 빠지려야 빠질 수가 없어요."
하고 많은 봉사활동 중에서도 미용 봉사에 대한 배 씨의 자부심은 특히 대단하다.
그는 "머리 미용은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누구나 필요한 것"이라며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기술을 활용해 남을 도울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하다"고 눈을 반짝였다.
무료 미용이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잘라도 되는 것은 아니다.
배 씨는 "어르신들 저마다 추구하는 스타일이 다양하다"며 "이쪽 머리는 놔두고, 어디는 잘라주고, 어디는 어떻게 해달라는 요구사항을 가감 없이 말씀하시기 때문에 최대한 맞춰서 예쁘게 해드리려고 한다"고 했다.
27년 봉사 인생에서 그가 가장 보람을 느낀 순간은 거동이 불편한 이들의 집을 찾아가 머리를 잘라주는 때라고 한다.
배 씨와 하늘 한마음회 회원들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외출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방문 미용 봉사를 시작했다.
원래대로면 방문 미용은 코로나 때만 한다는 계획이었지만, 필요로 하는 어르신들이 점점 많아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배 씨는 "복지관에 나오는 분들은 그래도 거동이 가능한 분들인데 그조차 어려운 분들은 밖에 못 나오고 집에 누워 계신다"며 "머리가 길게 자라 수세미처럼 엉켜 있는 경우도 많은데 그런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미용"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처음에는 한 달에 방문 대상자가 10명이 안 됐는데, 요즘은 20명이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배 씨는 내년에도 힘이 닿는 대로 남들을 돕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봉사는 일상생활이자 습관"이라며 "지금 하는 봉사를 중간에 멈추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는 게 목표이자 계획"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jjang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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