非시리즈·역사물로 천만 관객…韓영화 희망 보여준 '서울의 봄'
스릴러 같은 박진감·황정민 '분노 유발' 연기 눈길…젊은 층 입소문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국내 영화계가 최악의 위기에 몰린 가운데 '서울의 봄'이 이른바 '천만 영화' 반열에 오르면서 한국 영화의 가능성을 재확인했다.
영화계에선 시리즈물이 아니더라도 "좋은 작품이면 성공할 수 있다"는 반응과 함께 내년에 한국 영화가 재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코로나 이후 '시리즈 선호' 경향 깨고 천만 영화 달성
24일 배급사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김성수 감독의 '서울의 봄'은 이날 누적 관객 수 1천만 명을 돌파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세 번째로 천만 한국 영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서울의 봄'은 팬데믹 이후 시리즈가 아닌 작품이 천만 관객을 상영관으로 불러낸 첫 사례다. 시리즈가 아닌 작품이 천만 영화가 된 건 '기생충'(2019) 이후 4년 만이다.
시리즈물로는 지난해 '범죄도시 2'가 1천269만여 명을, 올해 7월 '범죄도시 3'가 1천68만여 명을 각각 동원하면서 '쌍천만' 기록을 세운 바 있다.
최근 수년 국내 영화계에서는 시리즈물 선호가 뚜렷해지는 양상이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2월 이후부터 '서울의 봄' 전까지 관객 500만 명 이상을 동원한 한국 영화는 '범죄도시 2', '범죄도시 3', '한산: 용의 출현'(726만여 명), '공조 2: 인터내셔날'(698만여 명), '밀수'(514만여 명) 등 5편이었다. 이 가운데 4편이 전편의 후광이 남아 있던 속편이다.
이는 관객들이 어느 정도 재미가 보장된 작품을 선택한 결과로 풀이할 수 있다. 관람료가 오르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가 널리 이용되는 상황에서 상영관에 직접 갈 유인은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수고스럽게 극장을 찾아가는 이들은 '실패 확률'을 낮추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성공한 전편을 보유한 속편이 관객들의 선택을 받기 좋은 셈이다. 관객이나 제작자 모두 굳이 '모험 회피'로 기우는 상황이었다.
'서울의 봄'이 이런 경향을 깨고 대흥행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주로 속편이 관객을 가져가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새로운 작품에 대한 투자를 과감하게 하기 어려운 분위기도 있었다"면서 "그러나 '서울의 봄' 성공 사례로 작품 자체가 좋다면 좀 더 도전적으로 투자·제작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영화 위기 속 대흥행…"현대사 관심 유도" 역할도
최근 한국 영화계는 코로나19 여파가 남아 있던 작년보다 흥행작 수가 감소하는 등 벼랑 끝으로 몰린 상황이었다.
여름 휴가철이나 추석을 겨냥한 대형 작품이 줄줄이 흥행에 실패했고 손익분기점을 넘은 상업 영화는 4편에 불과했다. 외국 영화는 팬데믹 이전 수준에 근접할 정도로 관객이 증가했지만 한국 영화는 절반가량만 회복했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한국 영화가 잘 안되는 때에도 '서울의 봄'이 천만 영화 반열에 올랐다는 건 기대를 충족하는 한국 작품이 나와만 준다면 관객들이 언제든지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본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이어 "다른 사람들과 영화를 함께 보고 감정을 공유하는 극장의 힘이 건재하다는 것도 재입증된 셈"이라며 "최근 개봉한 '노량: 죽음의 바다'를 시작으로 내년 작품들까지 흥행 기세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코미디 위주의 작품이 인기를 얻었던 최근 흐름과는 달리 '서울의 봄'은 무거운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에서 이번 흥행은 더 고무적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가볍게 보고 잊어버리는 소비를 넘어 작품의 영향력을 상영관 바깥으로 파급하는 '무비 저널리즘' 역할을 톡톡히 했다는 것이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20∼30대는 물론이고 중년 세대도 12·12 군사반란을 자세히 알지 못했는데 '서울의 봄'이 역사적 사실을 다시 한번 환기했다"면서 "영화가 끝난 뒤에도 관객들이 사건 관련 인물을 찾아보고 학습하도록 하는 역할도 했다"고 짚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 역시 '서울의 봄'을 두고 "MZ세대에게 우리 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유발하고 세대 간 소통을 유도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콘텐츠"라고 말했다.
작품 자체 매력적…관객 자발적 홍보·무대인사 효과도 '톡톡'
'서울의 봄'이 흥행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는 무엇보다 작품 자체가 지닌 매력이 꼽힌다.
이 영화는 12·12 군사반란 당시의 9시간을 스릴러 장르 못지않게 긴장감 넘치게 그려냈다는 평을 들었다.
정지욱 평론가는 "젊은 관객들 사이에서 팝콘을 사서 상영관에 들어갔다가 반 이상을 남기고 나왔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집중력 있게 이야기를 끌어냈다"며 "아주 무거운 주제를 치밀하고 촘촘하게 풀어낸 작품"이라고 했다.
보안사령관 전두광 역의 황정민,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역의 정우성 등 배우들의 연기가 뛰어나다는 호평도 줄을 이었다. 황정민은 악역을 너무 잘 소화하는 바람에 관객들의 온라인 '분노 챌린지'를 끌어냈다.
관객들이 분풀이를 할 수 있도록 상영관 근처에 '두더지 잡기' 게임기가 설치됐고, 황정민이 과거 납치 피해자를 연기한 영화 '인질'이 재상영되기도 했다.
입소문도 이어졌다. '서울의 봄' 관객 연령층이 20대와 30대에 몰리면서 온라인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주목받았다고 영화계는 보고 있다. CGV 기준 20대 관객은 25%, 30대는 29%로 젊은 층이 절반을 넘겼다.
김성수 감독과 배우들의 찾아가는 홍보 또한 흥행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의 봄'이 첫 천만 영화인 정우성은 230번이 넘는 무대 인사에 일일이 참여해 관객들을 직접 만났다. 수도권과 광주, 대전, 부산, 울산 등 전국을 누볐다. 무대 인사가 포함된 상영 회차는 대부분 매진됐다.
또 다른 배급사 관계자는 "스타 배우가 나오는 무대 인사는 박스오피스 성적에 직결될 정도로 중요한 홍보 수단"이라면서 "'서울의 봄'은 배우들의 입담이 좋고 팬서비스도 훌륭해 관객들 사이에서 재밌다고 소문이 났기 때문에 천만 영화에도 무시하지 못할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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