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재미" vs "의존 우려"…늘어나는 외국드라마 리메이크

오명언 2023. 12.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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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라'·'사랑한다고 말해줘'·'재벌X형사' 등
소재 경쟁에 IP확보 치열…"오리지널 극본 부족 악순환" 지적도
왼쪽부터 tvN '마에스트라'·ENA '사랑한다고 말해줘' [각 방송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이승미 인턴기자 =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지휘자 차세음(이영애 분) 그리고 다정한 매력의 농인 화가 차진우(정우성).

각기 다른 드라마를 이끄는 두 주인공의 공통점은 둘 다 원작인 외국 드라마 속 캐릭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24일 방송가에 따르면 이처럼 해외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드라마들이 속속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달 9일 방영을 시작한 tvN '마에스트라'는 2018년 방송된 프랑스 드라마 '필하모니아'가 원작이다. 전 세계 오케스트라 지휘자 중 5%뿐이라는 여성 지휘자 마에스트라를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tvN '마에스트라' [tvN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주인공 차세음은 원작의 헬렌 바리체(마리 소피 페르단)와 비슷한 설정으로 등장한다. 그는 뜨거운 카리스마와 대비되는 섬세한 해석으로 연주자와 청중을 쥐락펴락한다. 젊은 차세음은 검은 정장만큼 틀에 박힌 클래식 판을 뒤흔드는 인물이다.

차세음은 해체 위기의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갑자기 부임하면서 조직 내부에 다양한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한국 정서에 맞춰 리메이크했다는 '마에스트라'는 단원들을 독하게 몰아세우기로 유명한 차세음에 대한 단원들의 반대를 원작보다 간접적으로 풀어냈다.

원작에서 단원들은 헬렌을 골탕 먹이기 위해 그의 첫 지휘 때 악보를 넘기지 못하게 붙여버린다. '마에스트라' 속 단원들은 환영 인사랍시고 불가능한 임무라는 뜻을 가진 영화 '미션 임파서블' 메인 원본 사운드트랙(OST)을 연주하는 우회적 방식을 택한다.

tvN '마에스트라' [tvN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시청자들 사이에는 "원작은 6부작인데, '마에스트라'는 12부작이라서 내용이 훨씬 풍부한 것 같다", "전반적으로 프랑스 시리즈 분위기인데 한국 정서가 섞여 신선하다", "원작이 더 스릴러 같은 느낌을 살린 것 같다" 등의 반응이 나온다.

현재 방송 중인 ENA '사랑한다고 말해줘'도 해외 드라마를 각색한 작품이다. 손으로 말하는 농인 화가 차진우(정우성)와 마음으로 듣는 배우 지망생 정모은(신현빈)의 소리 없는 사랑을 다룬 클래식 멜로극이다.

1995년 일본 TBS에서 방송된 동명의 드라마를 원작으로 하는데, 정우성이 원작 드라마의 리메이크 판권을 구매했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ENA '사랑한다고 말해줘' [EN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정우성은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원작 드라마를 보는데 청각장애가 있는 남자의 목소리가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올 때 심장을 두들기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며 "드라마화(리메이크)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작품인데 긴 시간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여러분께 선보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원작의 잔잔하고 애틋한 감성을 살린 '사랑한다고 말해줘'는 주인공들의 차분한 감정선을 세심하게 그려낸다.

특히 정우성은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차진우의 마음을 대사 대신 눈빛으로 표현해내며 몰입감을 자아낸다는 호평을 받는다.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남녀가 현실의 벽 앞에서 멈칫하게 되는 장면들은 깊은 울림을 남긴다.

ENA '사랑한다고 말해줘' [ENA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작에서는 두 주인공이 계속해서 부딪히면서 이겨내는 극복 과정을 그렸지만, 한국 리메이크판은 서로에게 기대며 서로를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는 점에서 화법의 차이가 있기도 하다.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원작의 흔적을 여기저기에 숨은그림찾기나 퍼즐처럼 심어놔서 원작 팬들에게는 비교하는 쏠쏠한 재미가 있다", "원작보다 긴 호흡으로 담아낸 장면들이 더 깊은 여운을 남긴다", "볼수록 각 작품의 개성이 뚜렷하게 와닿는다" 등의 반응이 나온다.

해외 드라마를 국내 정서에 맞게끔 리메이크하기 시작한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시청률 28.4%로 지금까지 JTBC 역대 최고 시청률 기록을 유지하고 있는 '부부의 세계'(2020)는 영국 드라마 '닥터 포스터'를 리메이크한 작품이고, 높은 작품성으로 지금껏 회자하는 드라마 '마더'(2018), '엉클'(2022) 등도 모두 리메이크작이다.

드라마 '부부의 세계' [JTBC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특히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려는 제작자들의 '지적재산(IP)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면서, 소설과 웹툰, 웹소설뿐 아니라 기존 드라마를 리메이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내달 26일 처음 방송되는 SBS '재벌X형사'는 국내 최초 러시아 드라마 리메이크작이다. 2014년 방송됐던 'Mazhor(실버스푼)'을 원작으로 한다.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는 "소재 전쟁 때문에 최근 들어 리메이크작들이 많아진 것 같다"며 "해외 드라마 리메이크는 기존의 완성품과 그에 따른 시장 반응을 확인하고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이점을 갖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점수로 따지자면 평균점을 가져갈 수는 있겠지만, 국내 시청자들의 정서에 맞게끔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큰 괴리감이 생길 수도 있다"고 짚었다.

SBS '재벌X형사' [SBS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오리지널 IP를 창출하는 대신 웹툰과 소설, 해외 드라마 등 기존 IP에 대한 의존을 심화하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 겸 드라마 평론가는 "해외 드라마 리메이크가 활발해진 이유는 오리지널 드라마 극본이 부족해졌고, 그러다 보니 또다시 다른 원작으로 눈을 돌리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실 오리지널 드라마 IP 발굴은 단막극을 통해 이루어지는데 요즘 단막극은 아사 상태에 이르러 있다"며 "tvN과 KBS에서 하는 단막극 시리즈 열 몇 개 정도에 불과하지 않으냐"고 지적했다.

coup@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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