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간첩은 경찰이 잡는데…예산 권한은 아직 국정원에

정세진 기자, 이강준 기자 2023. 12.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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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간첩신고는 112-③
[편집자주] 내년부터 간첩 수사는 국가정보원이 아닌 경찰이 전담한다. 대공수사권을 이관하는 법이 통과되고 3년의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준비는 여전히 미진해 자칫 안보 공백이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방첩에 사용되는 안보예산 조정권한이 국정원에 있어 기관간 협조가 필수적인데 수사에 있어 기관간 권한의 경계는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아울러 '안보경찰'은 경찰 내 대표적인 비인기 보직이어서 우수 수사 인력 확보도 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정보원이 지난해 12월19일 제주시 노형동 소재 박현우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있다. 혐의는 국가보안법 위반 등이다./사진=뉴스1
"간첩 잡는 정보전은 머니게임입니다. 북한 간첩이나 공작 관련 핵심정보를 가진 인물은 한국 정보당국만 노리는 게 아니거든요. 중국, 일본, 러시아, 미국은 가만히 있겠어요?"

내년부터 대공수사권이 경찰로 넘어오지만 관련 정보예산 편성권은 여전히 국가정보원(국정원)에 있다. 대공수사는 '협조자'에 대가를 제공하고 간첩활동 등 정보를 얻는 것이 핵심인데 자칫 기관간 불협화음이 생길 경우 예산부족으로 이어져 곧 수사에 차질을 빚을 수 있다는 전망이 경찰 내부에서는 나온다.

내년 1월부터 경찰청 본청과 18개 시도청 소속 대공 수사관 700여명이 간첩수사를 전담한다. 대공수사권을 넘겨받기에 앞서 경찰은 지난 6월 기준 462명이었던 대공수사인력을 내년 1월 두배 가까이 늘리는 등 조직과 인력을 확보하며 준비했다. 경제안보·테러·방첩·첨단안보 등 안보수사 인력을 포함하면 내년부턴 1000여명의 경찰 수사관이 대공수사를 포함한 안보수사 분야를 담당한다.

인력·조직 같은 '양'은 갖췄지만 예산이라는 '질'은 필요한 만큼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경찰 대공수사에 필요한 예산은 크게 정보예산과 일반예산으로 구분한다. 일반예산은 사무실 인테리어 등 업무환경조성에 쓰는 비용이다. 종북단체 내부에서 경찰을 돕는 협조자에게 지원하는 협조자비 등 대공수사비는 모두 정보예산에서 지출한다.


일반예산은 경찰청이 국회 정보위원회를 통해 기획재정부에 예산안을 제출해 마련한다. 하지만 정보예산의 조정 권한은 국정원에 있다. 경찰뿐 아니라 국방부와 통일부 등 다양한 정부기관이 국내 방첩활동을 함께 수행하면서 정보예산을 나눠 쓴다. 이때 사용하는 정보예산을 어느 기관이 얼마나 쓸지 분배하는 조정권한이 국정원에 있는 것이다.

이에 경찰 내부에선 정보예산 조정권한을 가진 국정원이 가진 데 대한 불만도 나온다. 내년부터 대공수사는 전부 경찰이 담당하는데도 국정원은 수사규모보다 부족한 수준의 정보예산만을 경찰에 배분했다는 것이다.

대공수사는 특성상 예산규모가 수사 결과와 직결된다. 대공수사 협조과정에서 협조자들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지거나 생명과 신체의 위협을 받기도 한다. 북한 또는 외국 정부의 지령을 받아 간첩활동이나 공작을 진행하는 사건의 특성상 관련 정보를 얻기 위해선 협조자비 등 정보예산 지출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2015년 대법원에서 내란선동·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사건'의 경우 국정원이 협조자비를 적극 활용해 수사한 사례로 꼽힌다. 협조자가 확보한 증거는 대법원 판결의 핵심 증거로 채택됐다.

국정원은 수사 과정에서 협조자에게 자택을 구매해주고 매달 생활비를 지급하면서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해외여행을 명목으로 출국시키기도 했다. 사건수사가 끝난 이후에도 협조자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식당이나 가게를 차려주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협조자가 북한 요원의 암살 위협속에서도 국정원을 신뢰하고 대공수사 증거를 확보하는 등 공작에 적극 동참하는 이유다.

국정원과 경찰이 지난 1월 18일 오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제주평화쉼터 대표 차량을 압수수색하고 있다./사진=뉴스1


한 시도경찰청 안보수사 관계자는 "미국 CIA(중앙정보국)가 왜 정보력이 뛰어나겠냐"며 "탈북자 중에서도 고위장성, 당관계자 등 핵심정보를 가지고 있거나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정보를 최대한 비싼값에 팔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중국·일본·미국 등 정보당국이 제공하는 돈보다 적게 주면 굳이 한국 경찰과 협조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경찰은 우선 내년도 안보수사 일반예산을 기존 61억800만원에서 69.5% 늘린 103억5700만원으로 책정해 국회 정보위에 제출했다. 현재 여야 의원들의 이견이 없어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일반 예산으로 수사장비 등을 구입해 대공수사 업무환경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정세진 기자 sejin@mt.co.kr 이강준 기자 Gjlee1013@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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