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방의 감초’가 외국산인 이유, 그리고 한약재 국산화를 위한 노력
갑자기 감기 기운이 생기면 약국에서 아세트아미노펜 성분의 일반의약품 타이레놀을 구입해 복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 약에 들어가는 원료의 원산지를 따져가며 구입하는 사람은 없다. 의약품 원료는 원산지 표기 의무 대상이 아닐뿐더러 소비자들이 굳이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한약재는 의약품이면서도 농산물의 성격을 띠고 있어서 원산지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외국산 한약재라고 하면 일부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중금속 범벅’이나 ‘농약 기준치 초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하는 까닭에 의료기관과 제약회사에서도 가능하면 국산 한약재를 쓰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외국산 한약재가 사용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재배 환경 때문이다. 가장 흔한 보약인 십전대보탕에 들어가는 육계와 이른바 ‘다이어트 한약’의 주성분인 마황, 요즘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약재인 침향은 모두 한국에서 자라지 못하는 식물이다. 어떤 생물이든지 서식 환경이 알맞지 않으면 살 수 없고, 열대·한대나 고산·사막 지역에 사는 식물은 국산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약방의 감초’라는 비유적인 말까지 있을 정도로 모든 한약에 들어갈 것처럼 보이는 감초는 좀 특이한 상황이다. 현재 한국에는 감초를 재배하는 농가도 많고, 시장에서 국산 감초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하지만 의료기관이나 제약회사에서는 거의 전량 외국산 감초만 쓴다. 감초는 시베리아 원산으로 한국 기후에서 잘 자라지 못해 글리시리진산 함량 등 의약품 기준치를 통과하기가 어려우므로, 의약품 용도로는 쓰이지 못하고 식품으로만 이용되기 때문이다.
감초 국산화 문제는 조선시대에도 국가적 난제였다. 중국에서 종자를 들여와 전국에 나눠 심어 어느 지역에서 잘 자라는지 비교 시험했다는 실록 기록이 있다. ‘중국에서 들여와 여러 지역에 이식하였으나 번식이 잘 되지 않았다’라는 <동의보감> 기록도 있다.
세종대왕의 명으로 편찬된 <향약집성방>은 국산 한약재만으로 처방을 구성했기에, 여기 수록된 1만 가지가 넘는 처방 중 감초가 포함된 것은 하나도 없다. 최근에 와서야 농촌진흥청 등의 노력으로 유효 성분 함량이 높은 새 품종을 개발해 감초 국산화가 해결될 수 있게 됐다. 이 품종이 농가에 보급되고 나면 의료기관과 제약회사에서도 국산 감초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감초 한 가지를 국산화하는 데만도 수백 년이 소요됐는데, 200여 종에 이르는 수입 의존 한약 자원을 모두 국산화하려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할까. 다행인 것은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라는 점이다. 실내에서 한약 자원을 키울 수 있는 과학기술이 있다는 뜻이다.
온·습도, 광원, 공기 조성 등을 정밀하게 제어해 식물이 적절히 자라도록 하는 파이토트론(phytotron) 기술을 이용하면, 열대·한대·고산·사막이 원산지인 한약 자원도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다. 아울러 기후위기로 인해 국내 재배가 어려워지고 있는 작목도 보존할 수 있으며, 적은 양으로도 높은 효과를 내는 고기능성 한약재 생산으로 가격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약용 작물은 아직 노지에서 재배되고 있으므로, 지속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하겠다.
최고야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자원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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