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정후의 메이저리그 성공을 확신하는 이유
(MHN스포츠 김현희 기자) 역시 야구에서 역대급 성적을 올리는 이들은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 특별함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간단한 것을 실천하면서 꾸준히 하는 것이 전부다. 기술적인 부분은 그 다음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본인이 좋아서 해야 하고, 나쁜 경험은 과감하게 버린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이정후(샌프란시스코)다. 아버지 이종범 코치가 현역 시절 상당한 스타 플레이어였기에 그에 따른 득과 실을 모두 경험했던 그는 본의 아니게 일찍 '사회'를 배워야 했다.
최근 KBSN 오효주 아나운서와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서적이 화재가 됐던 것도 그 안에서 이정후 본인의 인생관과 야구관,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내용이 허심탄회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잘 됐던 부분을 복습하기에도 시간이 짧기에 안 됐던 부분을 과감하게 버리고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 서적의 제목이 왜 '긍정의 야구'인지 알 수 있었던 대목이기도 하다.
사실 이정후는 고교 시절부터 야구에 목말랐던 기대주였다. 6할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과정 속에서도 어떻게 하면 더 야구를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했던 선수였다. 고교 3학년 시절, 부상으로 잠시 방망이를 내려 놓았을 때 말 그대로 야구 기술에 아마추어였던 필자에게도 "어떻게 하면 야구를 잘 할 수 있을지 알려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당시 이정후는 서울 지역 1차 지명 발표를 앞두고 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당시 필자는 "아니, 고교 시절에 6할까지 친 선수가 무엇을 걱정하는가! 지금은 잠시 쉬어 가는 때라고 생각하고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이제 1차 지명 발표가 눈 앞이니, 프로에가서 잘 할 것을 생각하자."라고 조언한 바 있다. 그리고 이 조언이 전달된지 얼마 가지 않아 넥센 히어로즈(지금의 키움 히어로즈)가 1차 지명권을 이정후에게 행사한다는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당시 이정후는 본인의 가벼운 부상도 그냥 스쳐 지나가는 추억이었음을 깨달았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이러한 천성을 프로에 가서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간단하면서도 쉽게 유지할 수 없는 이 일을 이정후는 해냈다. 타격 5관왕과 리그 MVP 수상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는 본인을 향하여 전달되어 오는 조언과 위로의 말에 그 이상의 감사를 전달해 오기도 했다. 일례로 고교 시절 마지막 추억이라 할 수 있는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에서 1루심의 결정적인 오심으로 대한민국 대표팀이 대만에 패하자 현지 중계 방송으로도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1루수 이정후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당시 이정후는 "판정도 판정이었지만, 당시 1루를 지키던 내가 확실하게 수비를 잘 했다면 수월하게 아웃 판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 아니었는가!"라며 그 날 패배를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필자는 '어린 선수들의 명승부를 어른들이 망친 당시 대회는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로 이에 응수한 바 있다. 그리고 이 당시 패배를 2년 후에 휘문고 후배 김대한(두산)이 아시아 선수권 우승을 되찾아 오면서 톡톡히 갚은 바 있다. 당시 이정후는 누구보다도 감사의 인사를 전달하며, 동료들과 함께 획득한 동메달에 다시 기뻐하기도 했다.
'긍정의 야구'를 읽으면서 또 하나 착각을 일으키는 부분이 있다면, 이정후의 야구관이 그의 롤모델이기도 한 '스즈키 이치로'와 상당히 동일했다는 데에 있었다. 야구를 하나의 '인격수양의 매개체'로 여기는 이치로는 50의 나이에도 여전히 일본 전역을 돌면서 순회코치를 자처하고 있다. 이 정도로 야구를 대하는 이치로의 자세는 진심인 것이다. 그런데, 이정후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이치로 못지않은 외야수로 거듭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는 이정후가 실패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기서 찾게 되는 것이다.
이치로도 시애틀에서 첫 시즌을 보낼 때 리드오프로 시작했다. 이정후 역시 현지에서 풀타임 리드오프로 예상하고 있다. 이정후가 이치로의 MLB 1년차 시절만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본다.
사진=MHN스포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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