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 훈련, 가야 할까요?…최저학력제 '늦장 공지'에 피해 속출
학생선수들, 조마조마…학부모들은 "교육 당국, 제때 알려줬다면…"
(서울=연합뉴스) 이의진 기자 = 지방의 한 중학교 운동부에서 개인 종목에 매진하는 '학생 선수' 김모 군은 요즘 매일 초조하다.
중학교 2학년 김 군은 소속 운동부 '에이스'로 통한다. 지난 5월 열린 제52회 전국소년체전에서 메달을 목에 거는 등 전국적으로도 실력이 뒤지지 않는다. 꿈도 국가대표다.
김 군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기말고사 탓에 눈물을 흘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달 8일이 수학 시험일이었다. 김 군은 전날 밤 갑자기 체온이 38.7도까지 올랐다. 어렵게 등교해 시험을 친 김 군은 독감 진단을 받았다.
가뜩이나 수학을 잘 못하는 김 군은 갑자기 한 문제 한 문제가 간절해진 상황이 된 터라 아픈 것도 서러웠다고 한다.
김 군은 이번 학기 국어, 영어, 수학 등 주요 과목에서 학년 평균 점수의 40%보다 높은 성적을 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중학교 3학년이 되는 내년 상반기 대부분 대회를 출전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청소년 국가대표 자격도 멀어지고, 진학 경쟁에서도 불리한 처지로 몰린다. 이 시기 대회 성적은 고교 진학과 직결된다.
교육부가 2024년 3월 24일부터 시작하는 '최저학력제' 때문이다.
학교체육진흥법 시행규칙에 명시된 이 제도는 1학기 성적이 기준에 미달하면 2학기에, 2학기 미달 시 다음 1학기에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모든 경기 출전을 제한한다.
김 군의 어머니 A 씨는 학생 선수도 최소한의 학업을 쌓아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 최저학력제 행정이 예고된 점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A 씨는 아들의 성적이 반영되는 시기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찾아올 것이라고 예측하지 못했다.
경기 출전 여부를 가르는 성적의 학기가 '2024년 1학기'일 줄 알았기 때문이다.
A 씨의 예상과 달리 이달 초 교육부는 올해 2학기 성적으로 내년 1학기 출전 여부를 정한다고 각 시도 교육청에 공문을 보냈다. 김 군 학교가 기말고사를 치르기 불과 며칠 전이었다.
문제의 시행규칙이 성적에 따른 출전 제한 조치를 담은 것이니, '성적 반영'이 아닌 '대회 참가 제한'을 기일에 맞춰야 한다는 게 교육부 입장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올해 2학기 성적을 반영하는 게 불가피하다.
이같은 '공식 발표'는 대부분 학교가 기말고사를 치르거나 앞둔 시점에 나왔다.
그전까지 '2024년 3월 24일부터 적용된다'는 모호한 시행규칙상 문구 외 자세한 정책 설명은 없었다는 게 결국 혼선의 빌미가 됐다.
A 씨도 올여름부터 정확한 '시행 시기'에 의문을 품긴 했다.
그래서 최저학력제에 대해 수소문했다는 A 씨는 일부 시도 교육청으로부터 올해 2학기 성적은 반영되지 않는다고 안내받았다고 주장한다.
A 씨는 23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시행 시기를) 도저히 알 수 없어 전국 여러 교육청에 전화를 돌렸다. 정확히 알려주지 못하는 곳도 있었지만, 복수의 교육청이 내년 1학기 성적부터 적용된다고 안내해줘 그 말을 믿었다"고 말했다.
교육부의 공문 안내가 늦어지자, 최저학력제 개정안 적용일(2024년 3월 24일) 이후인 내년 1학기 성적으로 2학기 출전을 따지는 쪽으로 정책 방향을 해석한 일부 현장이 나타난 것이다.
교육부는 교육청 측에 내년부터 대회 출전 제한이 곧바로 이뤄질 가능성을 여러 차례 공유했다고 하지만, 일부 교육청은 관련해 전달받은 바 없어 당혹스럽다고 주장한다.
당국 간 소통에서 엇박자가 나온 가운데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부랴부랴 시험 준비에 나선 김 군은 수학을 뺀 나머지 과목에서는 기준 점수 이상 성적을 냈다.
이제 수학 성적 발표만 기다리고 있다. 다만 중간고사 성적이 저조한 탓에 합계 성적이 기준을 넘을지 근심이 크다.
서울의 한 중학교 야구부 소속인 김모 군도 사정이 같다. 김 군도 한 과목이 기준 성적을 넘지 못할 확률이 높아 가슴을 졸인다.
어머니 B 씨는 동계 훈련에 김 군을 보내야 하나 고민 중이다.
B 씨는 "공문대로라면 내년 경기를 못 뛰어 고입이 어려워진다. 그건 운동을 그만두라는 이야기인데 동계 훈련을 참가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학교가 있는 지역은 평균 점수가 높다. 공문을 보고 뒤늦게 공부를 시켰는데, 단기간에 따라가기 힘든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B 씨는 "최저학력제에는 불만이 없다. 문제는 성적을 관리할 시간이 너무 짧았다"며 "공문이 내려온 후 기말고사까지 기간이 일주일이었다. 수행평가도 끝났는데 일찍 알려줬으면 이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국회 국민동의청원 사이트에는 교육 당국의 행정 탓에 피해를 보는 학생들을 구제해달라 요구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교육부) 해석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성적 반영 시점을 명확히 이해할 수 있도록 제정되거나, 충분한 공지가 필요했다"고 주장했다.
이 청원을 올렸다는 C 씨는 아들이 서울의 한 중학교 육상부 선수다.
C 씨는 "학년 평균의 40%가 어려운 기준이 아니라는 건 안다"면서도 "최저학력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전 마지막 학기라 생각해 운동에 더 집중한 탓에 시험에 대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는 "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취지에 공감한다. 학교 현장과 시도 교육청의 의견을 청취하고 있고, 내부적으로도 깊게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한체육회도 최저학력제 시기를 둘러싼 논란을 인지하고 있다.
체육회 관계자는 "학교 체육 현장의 피해를 줄이는 방향으로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pual0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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