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2차 소송 승소에도 위자료 받지 못하는 까닭[판결왜그래]

김형환 2023. 12. 2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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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측 “정부와 맞서는 것처럼 느껴 부담”
대법 “소멸시효 만료 주장 배척…청구권 유효”
日 “한국이 알아서”…정부 “제3자 변제 적용”
제3자 변제 수용 불투명…재단 재원도 부족

[이데일리 김형환 기자]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정부와 맞서는 선택인 것처럼 느껴지고 있어서 많이 부담스러워하신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족의 2차 소송 변호인으로 활동했던 임재성 변호사는 강제징용 재판 이후 이같이 밝혔습니다. 약 10년만에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피해자들이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날 대법원은 피해자 1인당 최소 1억원, 최대 1억5000만원까지의 위자료를 인정했습니다. 승소에도 왜 기뻐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5년 전 1차 소송에서 승소한 피해자들도 아직 위자료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유족들과 법률 대리인단이 지난 21일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소한 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정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법 “소멸시효 만료 여부 따질 수 없어”

판결 내용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날 확정 판결이 내려진 소송은 총 2건으로, 강제 동원된 고(故) 양영수 씨 등 피해자들과 유족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2013년 3월 낸 손해배상청구소송과 1942년부터 1945년 사이 신일철주금에 강제동원된 곽모씨 등 7명이 2014년 2월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입니다.

양씨 등 피해자는 1944년 5월 일본 나고야 소재 미쓰비시중공업 항공기 제작소에 끌려가 월급을 거의 받지 못하고 강제노역했습니다. 이들은 ‘조선여자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강제 동원됐습니다. 아무런 보상도 해주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 후생성은 2014년 사회연금 탈퇴 수당으로 199엔(약 1800원)을 수령하라는 공문을 내려 공분을 산 바 있습니다. 곽씨 등은 사용자인 신일철주금으로부터 강제동원돼 강제노동을 당하고 임금 등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대법원은 앞선 1차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취지를 그대로 이어받아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의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명확히 밝혔다”고 설명했습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8년 10월 강제징용 피해자 여운택 씨 등 4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이른바 1차 소송에서 원고에게 1인당 1억원씩 손해를 배상하라는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당시 핵심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따라 원고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됐는지 여부였는데 대법원은 일본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이 한일 청구권협정 적용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본 기업들이 주장했던 소멸시효 만료 주장도 배척했습니다.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있고서야 법적 구제가 확실시됐기 때문에 이전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소멸시효 만료 여부를 따지는 것은 명백한 권리남용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판단에 대해 임 변호사는 “2·3차 소송에서 분쟁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시효였는데 오늘 판단이 이뤄졌기 때문에 다시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열리지 않는 한 법률적 쟁점들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7월 11일 서울 종로구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에서 열린 제3자 변제 공탁에 대한 피해자 측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강제징용 피해자 고 정창희 할아버지 장남 정종건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차 소송 4명, 제3자 변제안 거부…2차 소송은?

과연 피해자 및 유족들은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일본 정부로부터 위자료를 지급받을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배상 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 중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받은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지난 3월 우리나라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안’ 방식으로 배상을 받는 이는 11명입니다.

제3자 변제안 방식이란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있어서 일본 가해기업들을 대신해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따라 수혜를 받은 포스코 등 국내 기업들이 출연한 기금으로 제3자 재단을 설치해 배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1차 소송에서 제3자 변제안을 거부한 피해자들은 일본 기업의 직접적 배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은 지난 7월 기자회견을 열고 “당사자가 변제를 거부하는 경우 이해관계가 없는 제3자인 재단은 변제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은 지난해 4월 대법원에 일본 정부의 국내 재산을 강제 매각 조치를 통해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일본 기업의 항고, 재항고로 현재 1년반 넘게 대법원에 계류 중인 상황입니다.

2차 소송 판결 이후 일본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일청구권협정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라며 “제3자 변제 방식으로 한국 정부가 대응해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미즈 히로유키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이 김장현 주일 한국대사관 정무공사를 초치(외교적 용어로 항의 차원에서 외교관을 불러들이는 것)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우리 정부가 화답이라도 하듯 이날 승소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제3자 변제안을 적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피해자들을 한명 한명 만나 설득 작업을 진행하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제3자 변제안을 무조건 받아들인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입니다. 금전적 보상도 중요하지만 일본 기업 및 정부의 사과가 더 시급하다는 것입니다.

제3자 변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현재 배상금을 지급해야 할 재단에 남은 재원은 5억원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자발적으로 기부에 동참하겠다는 일본 기업은 없고 국내 기업의 선의에만 기대고 있는 상황입니다. 피해자들이 승소에도 찝찝한 이 상황, 이른 시일 내 우리 정부가 해결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김형환 (hwani@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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