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급발진 의심사고'가 쏘아올린 작은 공…'도현이법' 어디까지[결산 2023]
여야 모두 '제도개선' 약속했지만…'도현이법'은 여전히 계류 중
(강릉=뉴스1) 윤왕근 한귀섭 기자 = 올 한 해 역시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잇따랐지만, 특히 국민들의 주목을 끌었던 것은 강릉에서 일어난 '차량 급발진 의심사고'였다.
해당 사고 자체는 지난해 끝자락 일어났지만, 사고의 민사적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운전자·유족 측과 제조사의 법정공방이 올해 내내 이어지면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해당 사고의 책임소재를 떠나 특히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했던 것은, "급발진 의심사고 입증을 왜 제조사가 아닌 운전자가 직접 해야 하느냐"는 아이 아버지의 외침이었다.
◇"급발진 사고 입증을 왜 운전자가"…아이 아버지 외침에 5만명 동의
지난해 12월 6일 일어난 해당 사고로 차량 동승자 이도현군(당시 12세)이 숨진 가운데, 사고 차량의 운전자가 아이의 할머니라는 점이 대중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러나 사고의 책임소재가 차량 결함인지, 운전자의 부주의인지를 떠나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입증책임을 소비자가 아닌 제조사가 해야 한다"는 아이 아버지의 주장이 특히 국민적 공감을 불렀다.
이는 제조물책임법 일부법률개정안, 일명 '도현이법' 제정 촉구 분위기로 이어졌다.
도현 군 아버지 이상훈씨는 지난 2월 23일 해당 내용을 골자로 한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원인 입증책임 전환 청원'을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올렸다.
이씨는 청원글에서 "자율주행 시스템이 적용되며 자동화되는 자동차에서 끊임없이 발생되는 급발진 의심 사고 시 소프트웨어 결함은 발생한 후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그 입증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그런데 현행 제조물책임법은 급발진 의심사고 발생 시 차량의 결함이 있음을 비전문가인 운전자나 유가족이 입증하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제조물책임법 조항을 최소한 급발진 의심 사고 시에는 자동차 제조사가 급발진 결함이 없음을 입증하도록 입증책임을 전환시키는 법 개정이 시급히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씨가 올린 청원은 닷새 만에 5만명의 동의를 받아내며 요건을 충족, 국회 소관위원회인 정무위로 회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청원에 참여했다는 유동원씨(37)는 "비전문가이자 자본과 시간이 없는 한 개인이 자동차의 결함을 찾아내 입증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느냐"며 "누구나 이런 일을 당할 수 있는데, 관련법이 제조사가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에서 급발진 사고가 공식적으로 인정된 사례는 현재까지 전무하다.
◇"국회 종료 코 앞인데"…여전히 계류 중인 '도현이법'
공분이 일자 정치인들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지난 대선 주자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강릉 급발진 의심사고를 언급했다.
당시 이재명 대표는 "급발진 사고의 피해 입증 책임이 전적으로 소비자에게 있는 제도적 미비가 원인"이라며 "피해자 입증 책임을 완화하는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여당의 중진이자 강릉을 지역구로 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도 사고 가족을 직접 만나 제도 개선을 약속했다.
권성동 의원은 당시 "다수의 전문가는 사고 원인을 급발진으로 지목하고 있다”며 “비극의 실체를 규명하고, 반복되지 않도록 관련법 개정을 비롯한 제도적 개선에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실제 국회는 국민의힘 정우택 의원·더불어민주당 박용진·허영 의원 등 여야가 합심해 해당 개정안을 대표 발의, 곧 통과 여부가 결론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올 한 해가 끝나가는 현재, '도현이법'은 여전히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소관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산업계 영향을 우려해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허영 의원은 "법안에 제시된 자료 제출 명령 제도에 대해서는 (공정위가)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라며 "법안을 수정해서라도 이번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고, 사망한 도현군 유족과도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고 말했다.
◇운전자 할머니 '혐의없음' 불송치…민사 공방 계속
이번 사고는 지난해 12월6일 오후 3시56분쯤 강릉시 홍제동 한 도로에서 60대 A씨가 몰던 소형 SUV가 배수로로 추락하면서 시작됐다.
이 사고로 동승자 도현군이 숨지고, 운전자이자 도현군의 친할머니인 A씨가 다쳐 병원 치료를 받았다.
해당 사건을 조사한 강릉경찰서는 국과수 분석 결과 증거부족을 이유로 최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된 A씨에 대해 '혐의 없음' 판단을 내리고 사건을 불송치하면서, 형사 건은 사실상 종결된 상태다.
이에 대해 검찰은 "해당 사고와 관련한 추가 자료 검토가 필요하다"며 지난 21일 강릉경찰서에 재수사를 요청한 상태다.
이와 별개로 급발진 의심사고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 위한 운전자 측과 자동차 제조사 간 민사소송 재판이 현재 진행 중이다.
운전자 측은 사고 차량의 설계 결함을 주장하고 있고, 자동차 제조사 측은 운전자의 페달 오조작을 주장하며 상반된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법원이 채택한 사고기록장치(EDR)·음향분석 감정인은 기존 국과수 감정결과와 제조사 측 주장과 상반되는 감정결과를 내놓은 상태다.
지난달 28일 열린 3차 변론에서는 재판부가 사고 당시 차량 후방 중간 '보조 제동등' 점등 여부를 확인할 필요성이 있다며 영상검증을 진행하기로 했다.
wgjh654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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