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모자라고요?”… 추위에 군인도 셀럽도 뒤집어쓴 ‘이것’ [박수찬의 軍]
추운 겨울이 되면 등장하는 패션 아이템 중 하나가 방한용품인 발라클라바(Balaclava)다.
눈, 코, 입을 제외한 나머지 얼굴 부위를 모두 감싸는 형태로서 방한 기능을 극대화한 아이템이다.
국내에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발라클라바를 착용한 사람들의 사진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송혜교, 한지민 등 유명 연예인들도 SNS에 인증샷을 올린 바 있다.
얼굴을 가려 머리를 작게 보이게 하는 ‘소두’ 효과도 있고, 모자와 목도리를 함께 착용하는 효과가 있어 한파가 심한 겨울철에 인기다.
◆영국군이 썼던 마스크가 유행하는 이유
역사적으로 발라클라바는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발라클라바라는 이름은 1854년 영국, 프랑스, 오스만 제국과 러시아가 1854년 벌인 크림 전쟁 당시 영국군과 러시아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우크라이나 남부 크름반도 세바스토폴 인근의 발라클라바에서 유래했다.
당시 날씨는 추웠고, 전장이었던 크름 반도의 환경은 가혹했다.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가 임박한 1854년 9월에 크름 반도에 상륙했고, 세바스토폴을 포위하고 발라클라바에서 싸웠던 시기는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뒤였다.
군대에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발라클라바는 이후에도 군용으로 쓰이면서 재질 등이 발전했다.
사람의 열은 머리나 목을 통해 외부로 많이 발산되는데, 발라클라바로 머리와 목을 감싸면 겨울철에 신체 바깥으로 열이 방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머리가 차가워져서 발생할 수 있는 뇌혈관 수축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발라클라바는 한국군에서 안면마스크라는 명칭으로 불리면서 오랜 기간 사용됐다.
따뜻하고 가벼우며 벨크로를 적용해 탈·부착이 편리하다.
전투복처럼 위장무늬가 있어서 겨울철 혹한기 훈련 과정에서 위장크림을 얼굴에 바르기가 부담스러울 때에도 사용할 수 있다. 추운 날씨 속에 경계근무를 설 때에도 유용하다.
다양한 색실을 사용해 개성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구찌를 비롯한 고급 패션 브랜드에선 보석으로 장식하거나 모자, 안경 등을 발라클라바에 추가해 가면을 쓰는 효과를 주기도 했다.
발라클라바는 보온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서 근사한 모양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패션 악세사리로 주목을 받았다.
화려한 보석이나 목걸이처럼 세련되거나 아름답지는 않으나, 남들과는 다른 모습을 드러내면서 독특한 자극을 찾는 트렌드를 충족하기는 부족함이 없다는 평가다.
발라클라바가 유행하는 이유로는 사회적 불안감이 원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SNS에 개인정보가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고, 불법적인 영상촬영 등이 만연하면서 신변에 위협을 받거나 물질적인 피해를 입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디지털 폭력과 범죄도 끊이지 않는다. 이같은 환경은 인간의 생존 욕구를 키운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신분을 보호하고 싶어하는 심리가 발라클라바를 통해 나타났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영향이라는 평가도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사람들은 과거와 달리 마스크를 착용해 얼굴의 일부를 가리는 것에 익숙해졌다.
코로나19가 크게 유행했던 기간에 마스크를 착용하면서 겨울철에 얼굴에 느껴지던 추위가 다소 나아졌던 기억도 여전히 남아있다.
발라클라바는 군사 분야에서도 널리 쓰인다. 다만 방한 외에 군인의 신원을 감추기 위한 용도로도 쓰인다.
고도의 훈련을 받은 특수전부대원, 정치적 목적을 위해 동원된 용병이나 무장조직원 등은 얼굴이 드러나면 당사자나 그 가족이 위협을 받을 수 있고, 군사정보가 유출될 위험도 있다.
이같은 위험을 방지하고자 발라클라바를 사용한다. 사실상의 복면이다. 한국군 대테러부대인 707부대나 경찰특공대원들도 외부에 노출된 채 훈련 등을 할 때는 얼굴을 가린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크름반도를 합병할 당시 현장에 투입되어 우크라이나군과 싸웠던 무장조직원들은 눈과 미간만 노출되어 있던 발라클라바를 썼다.
이들은 소속 부대나 계급 등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표식도 사용하지 않았다. 러시아 특수전부대나 체첸인일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표식이 없다보니 추측만 난무했다.
발라클라바를 쓴 채 AK소총을 휴대한 정체불명의 러시아군이 활동하는 모습은 서방 세계에 강한 위압감을 줬다.
러시아 민간군사기업 바그너 그룹 대원들도 발라클라바를 착용하고 우크라이나와 아프리카 등에서 활동했다. 때문에 이들의 신원에 대해선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세계 각국의 특수전부대도 발라클라바로 얼굴을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한다. 교전 도중 특수전부대원의 얼굴에 드러나는 미세한 표정 변화도 적군에게는 정보로 쓰일 수 있다.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변수도 부대원의 생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얼굴을 덮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발라클라바는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다. 은행강도나 테러리스트, 반군들은 자신들의 신원을 경찰이나 군이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발라클라바를 쓰고 움직인다. 대중을 상대로 위압감을 주는 효과도 있었다.
지난 2016년 프랑스에 열렸던 유로2016과 관련, 테러를 시도했다가 우크라이나 국가안보국(SBU)에 적발됐던 프랑스인은 AK 소총과 폭발물 외에 발라클라바 20개를 소지하고 있었다.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도 전통복장에 샌들을 신고 AK 소총을 쏘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을 과시하면서 발라클라바를 썼다.
팔레스타인 무장조직 하마스 대원들도 발라클라바를 사용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수집능력을 지닌 이스라엘과 적댇관계에 있는 만큼 이스라엘에 정체가 노출되는 것을 피하려는 의도다.
발라클라바는 혹한에 직면한 군인과 민간인들에게 따뜻함을 제공하는 아이템이다. 반면 테러리스트나 범죄자에겐 신분을 감추면서 악행을 저지를 수 있도록 해주는 도구이기도 하다.
양면성이 뚜렷한 아이템이지만, 추워지는 겨울을 보내는데 유용하다는 점에서 발라클라바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쓰일 것으로 보인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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