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ELS 불완전판매 '유형화'한다…분쟁조정 속도 낼 듯
내달부터 H지수 ELS 손실 본격 현실화…현장검사도 조기 착수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채새롬 오지은 기자 = 당장 다음 달부터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 만기가 대거 돌아오는 가운데 금융감독원이 불완전판매 '주요 유형'을 제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대규모 분쟁 조정이 예상되는 만큼 미리 불완전판매 주요 유형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배상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주요 유형 미리 분류…고령·투자 경험 등 포함될 듯
24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H지수 연계 ELS 관련해 여러 민원을 바탕으로 유형별 분류 작업을 벌이고 있다.
금감원 고위 관계자는 "사전적으로 불완전판매 주요 유형을 미리 만들어 보고 있다"며 "유형별로 손실 부담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기준을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에 따라 은행들이 유형에 해당하는 건(민원)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나눠 조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도 "민원을 제기한 분들이 불완전판매 정황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지, 은행 측에 확인했을 때 입증이 되는지 등을 바탕으로 분류 작업을 하고 있다"며 "비슷한 유형을 범주화해놓아야 문제가 터졌을 때 신속한 배상 절차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H지수 ELS 투자자 가운데 고령층 비중이 상당한 데다가 투자 성향 및 가입 목적에 맞지 않는 상품을 권유받았다는 주장이 많은 상황이라 불완전판매를 인정할 수 있는 주요 사실관계와 그에 따른 유형들이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고난도 투자상품에 대한 투자 경험 유무도 유형에 포함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불완전판매 피해 사례들로 보기 어려운 유형들도 함께 걸러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상반기 만기 9.2조…1월부터 손실 현실화
금감원은 은행권에 대한 정식 검사에 착수하지 않은 상태다. 아직 손실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금감원의 이번 작업은 현장검사를 통해 드러난 불완전판매 건들 중 대표 사례를 지정해 분쟁조정을 진행해온 과거 방식과 차이가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확인된 불완전판매 사례를 유형화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가능한 (불완전판매) 케이스를 미리 제시하는 차원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워낙 ELS 손실 규모 및 분쟁조정 규모가 클 것으로 예상돼 사전 준비 없이는 혼란이 불가피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당장 다음 달부터 본격적으로 H지수 ELS 만기가 돌아오고 이에 따른 손실도 속속 확정된다.
금감원이 최근 정무위에 보고한 H지수 ELS 설명 자료에 따르면 은행권이 판매한 H지수 ELS 중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규모는 9조2천억원에 달한다.
당장 다음 달 만기 도래 규모만도 8천억원이다.
2월 1조4천억원, 3월 1조6천억원으로 증가세를 보이다가 4월 2조6천억원으로 정점에 달할 전망이다.
지난 9월 말 기준 녹인(knock-in·손실 발생 구간)이 발생한 H지수 ELS 규모는 6조2천억원이고, 이 중 5조9천억원(87.8%)이 내년 상반기 만기를 맞는다.
최근 H지수가 고점 대비 반토막 난 상황이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원금의 절반가량을 잃을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은 정무위 보고 자료에 "투자 규모 자체가 매우 크고 투자자 가운데 은행권 고령층 비중도 상당해 불완전판매 등 대규모 민원이 제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판매사가 적합성 원칙 등 판매 원칙을 준수했는지, 금융소비자보호법상 판매 규제 취지에 따라 판매했는지 여부 등이 주요 이슈 사항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고객 상황을 정확히 파악해 가입 목적에 적합한 상품을 권유했는지,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했는지 등이 쟁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이복현 금감원장은 "원금 손실이 나더라도 여유자금이니 크게 불려달라는 목적을 갖고 온 고객인지, 날리면 안 되는 노후 생계자금인데 정기예금 대신 원금손실이 나지 않는다며 (ELS를) 권유했는지 등 다양한 경우의 수를 보겠다"며 "책임을 져야 하는 그런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내달 검사 전환할 듯…은행권 자율 배상안 관측도
금감원은 'H지수 기반 ELS 투자자 손실 대응 TF'를 발족시키고 소비자 민원·분쟁 조정, 판매 금융회사에 대한 검사·조치 등을 유기적으로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내달 손실 현실화 시점에 맞춰 은행권에 대한 정식 검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최다 판매사인 KB국민은행이 첫 타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세훈 금융위 사무처장은 지난 22일 H지수 관련 합동점검 회의에서 "향후 금감원 검사 결과를 토대로 금융회사의 위규 소지를 엄정히 파악해달라"고 주문했다.
은행권이 금감원 분쟁조정 절차를 본격화하기 전 사적 화해 방식의 자율 배상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사적 화해는 말 그대로 금융사와 피해자들이 자율적인 협의를 거쳐 보상 수준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미 은행권이 과거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를 거치면서 사적 화해 방식을 다수 경험해본 바 있고, 금융당국 수장들도 공개적으로 은행들의 책임 있는 대처를 요구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 사태를 거치며 금융 소비자들의 (은행 보상 수준 등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상황이고 매번 은행들이 방패처럼 꺼냈던 '배임' 이슈도 실제 불거지지 않은 만큼 개별 회사별로 자율 배상안을 내놓는 곳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sj9974@yna.co.kr, srchae@yna.co.kr, built@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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