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의 봄' 정우성 "30년차 배우의 소신? 한 캐릭터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모신정 기자 2023. 12. 24.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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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서 이태신 역
 "정의의 아이콘? 특별한 수식어 원하지 않아" 
"다른 이들이 용기내어 도전할 수 있도록 작은 씨앗 되고 싶어"
배우 정우성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배우 정우성은 지난해 8월 오랜 절친이자 동지같은 배우 이정재가 연출한 영화 '헌트'의 개봉 당시 국내 유수의 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 당시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부흥기인 90년대 초반 두 배우가 데뷔해 청춘스타의 수식어를 얻고 좋은 모습을 외형적으로 보여드렸다. 그동안 스타의 모습만 보여드렸는데 그 시간동안 두 친구가 얼마나 진지하게 영화에 임했는지 봐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영화 동료들에게 진심을 전한바 있다. 

위 무대인사 인삿말은 1994년 영화 '구미호'로 데뷔해 올해 데뷔 30년을 맞은 정우성의 영화인생에 대한 소회를 함축적으로 표현한 내용이 아닌가 싶다. 최고의 외모와 피지컬로 오랜 시간 칭송 받았지만 각종 흥행작과 문제작들을 소화하며 한국 영화의 최일선에서 부침없이 한결 같은 30여년을 보내올수 있었던 정우성의 힘은 영화에 대한 지독한 사랑에 있지 않았나 싶다. 

영화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9), 영화 '무사'(2001), 영화 '아수라'(2016)등 총 4편의 영화 작업을 함께 하며 이정재 못지 않은 영화 동지로 오랜 시간 함께 걸어온 김성수 감독과 그가 또 손을 잡은 신작 '서울의 봄'을 향한 관객들의 반응은 한겨울 한파를 모두 물리칠 수 있을 정도로 뜨겁고 거세다. 지난달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은 개봉 31일만인 지난 22일까지 956만 5537명의 관객이 관람해 1000만 관객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배우 정우성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정우성은 1979년 12월 12일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신군부 세력의 반란을 막기 위한 일촉즉발의 9시간을 그린 영화 '서울의 봄'에서 권력에 눈이 먼 전두광(황정민)의 반란군을 온몸으로 막아내려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역을 연기했다. 정우성은 영화 '비트' 출연 당시 얻었던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에 이어 최근 '헌트', '서울의 봄' 등을 통해 정의의 아이콘으로 불리게 된 것에 대해 "'비트' 때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어떤 아이콘 같은 것이 되고 싶지는 않다. 정의의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도 빨리 벗어나고 싶다"며 "다만 저와 이태신이 닮은 부분이 있다면 어떤 소신이 아닐까 싶다. 제가 30여년동안 배우 생활을 돌이켜보면 한 자리에 있지 않고 계속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고 했고 그런 소신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 처음 이태신 역으로 제안받았을 때 거절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캐스팅된 과정이 궁금하다.

▶ 캐스팅이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나에게 오겠구나'하고 직감이 왔다. '나에게 전화오겠구나' 싶었다. 김성수 감독이기에 일단 50% 마음이 기울었다. 영화 '헌트'의 촬영을 끝낸 뒤였기에 다른 인물이고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지만 누군가는 '비슷한 것 아니냐' 물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태신 안에 '헌트' 김정도가 보이기에 어려운 허들이 하나 쳐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그 우려를 말씀드렸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여지를 안고 시작하는 것은 무리 아니겠는가. 김성수 감독께 '좋은 배우들이 많은데 한번 찾아보셔라'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감독님이 '너 아니면 안해, 영화 엎을게'라고 협박조로 말씀하시더라. 물론 김성수 감독님의 영화이기에 같이 작업하는 즐거움과 신뢰는 당연한 것이지만 감독님이 만들고자 하시는 캐릭터에 관객의 접근이 여려울까봐 우려를 말씀드렸는데 안들으시더라.(웃움)

- 이태신은 실제 12.12 군사반란 사건 당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에게서 모티브를 얻은 인물이다. 하지만 허구도 많이 가미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태신을 연기하며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 김 감독님이 처음 이야기하실 때 '가장 허구의 인물이어야 한다'라고 하셨다. 12.12사건의 무대 위에서 이태신을 만들어 갈 때는 모든 것을 배척해야 했다. 감독님은 전두광(황정민)과 이태신의 싸움이 불과 물의 싸움이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이태신에 대해서는 내가 선택을 해야하는데 정말 많은 고민을 했다. 어느 날 감독님이 제가 유엔 난민국 친선 대사로서 연설하고 있는 동영상을 보내주시더라. '나보고 뭘 찾으라는 말씀이지?' 궁금했다. 감독님은 그 인터뷰에 임하는 정우성의 자세, 타인의 이야기를 타인에게 전할 때 굉장히 조심스럽고 단어 하나도 신중히 고르는 모습을 원하신 것 같다. 그 누구에게도 강요하려고 해서는 안되는 모습을 원하신 것 같다. 실제 12.12 사태가 벌어졌을 때 무모하게 달려드는 무리들을 대할 때 감정적이지 않게 자기 본분을 지키는 이성적 차분함을 원하신 것 같다. 

배우 정우성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영화속 이태신과 실제 정우성의 공통점으로 강직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라는 부분이 겹치는 것 같다. 정우성만의 신념을 세상에 많이 내보이며 살아오기도 했다. 이태신을 표현할 때 정우성 안에서 끌어낸 모습과 그렇지 않는 부분이 있을텐데.

 ▶ 올바름이라는 것은 정의 내리기 힘든 부분인 것 같다. 누군가의 올바름이 누군가에게는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 영화 '아수라' 때부터 그런 인상을 받았는데 김성수 감독님은 인간의 본성에 대해 탐구하시는 것 같다. 내 안에 전두광이 있을 수도 있고 육군본부의 우유부단한 똥별들도 있을 수 있고 이태신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상황을 맞닥뜨렸을 때 어떤 내가 나와서 어떤 표현을 하는가. 그 누구도 무관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시려고 했던 것 같다. 이런 자세로 이야기 다루셨고 저는 그것을 쫓아 갔다. 감독님이 영화 안에서 다루는 인간 본성에 대한 고민,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자기 본분을 지키려는 신념을 그리려 했다. 그 신념조차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인간들 각자 자신의 신념이 있기 마련이니까. 사심과 공심을 나눴을 때 이태신은 공적으로 자신의 본분을 지키려고 한 인물로 보고 그 안에서 찾아갔다. 

- 반란군 우두머리 전두광 역에 황정민이 이미 캐스팅되어 있었다. 부담이 되지는 않았나. 

▶ 당연히 부담됐다. 글로 읽었을 때 캐릭터의 묘사를 보며 대사를 상상하며서 읽게 되지 않나. 소설이 무서운 이유가 그런 것 아닌가. 이미지화되어 있지 않은 걸 머릿속으로 상상하기 떄문 아닌가. 상상해보니 '만만치 않겟구나'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가 타죽는 것 아냐' 싶더라. 그 부담이 엄청났다. 황정민 형이 만드는 전두광만의 에너지가 상상이 갔다. 그런데 그것을 서로 잘 해냈을 때 얼마나 쫀쫀하겠나. 잘 해야 한다는 부담과 두려움을 어쩔수 없이 감당해야만 했다.

- 전두광과 이태신의 첫 복도 대면신에서도 두 배우의 힘이 느껴지던데. 

▶ 저 또한 그런 힘을 느꼈다. 촬영장에서는 의식하지 않더라도 각자 캐릭터에 집중하느라 정민 형과 잘 말을 섞지 않았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그때도 리허설을 했는데 보통 리허설 떄는 진짜 연기를 하지는 않는다. 전두광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어떤 느낌이 오더라. '큰일 났다. 어떻게 하지' 싶었다. 이태신답게 대응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민이 형 표정에서도 이태신을 충분히 느낀 것 같더라. 그때 느낌이 좋았다. 

배우 정우성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김성수 감독과는 영화 '비트'(1997), '태양은 없다'(1999), 영화 '무사'(2001), 영화 '아수라'(2016)에 이어 '서울의 봄'까지 총 5편을 함께 하고 있다. 진정한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겠다. 

▶ 사실 김성수 감독님의 첫 장편 상업 영화에 주인공으로 제안을 받았는데 제가 수락을 하지 않았던 일이 있다. 그때 '김 감독님과는 평생 못볼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그 다음 작품 때 또 제안을 주시더라. 너무 고마웠다. 거절당하셨을 때 감정을 사적으로 담아두고 있지 않으시더라. 저를 큰마음으로 받아들여주셨더라. 그 작품이 '비트'였다. 그때 당시에도 저를 나이 젊은 예쁘장한 인기 많은 배우로 대하지 않으시고 동료로 대해주시더라. '이 부분 내용은 네가 써보면 어때?'라고 제안을 해주셨다. 그때 너무 기분이 좋았고 기운이 나더라. 

감독님이 연출부나 스태프들과 소통하는 것을 보면서 많은 걸 깨우쳤다. '영화 작업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저에게는 큰형 같은 분이다. 현장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준 엄청나게 좋은 선배다. 감독이라는 직업이 무엇인지 그냥 보여주시는 분이다. 무한 신뢰할 수 밖에 없다. 김성수 감독님 연출부 하셨던 분들이 감독으로 입봉을 많이 하셨는데 그들을 동료로 받아들이시더라. 자신의 영향 하에서 감독으로 성장한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다. 계속 동료로서 배우려는 자세를 보이시더라. 이런 모습이 김성수 감독님이 청춘을 유지하는 비결 아닐까. 사소한 것에서도 큰 가치를 평가하시는 분이다. 제가 감독이 되려는 꿈을 이루는 데도 김성수 감독님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제가 쓴 글을 보여드리면 '좋다, 계속 써봐라'면서 욕구를 계속 상승시켜 주셨다.

-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 제작부터 영화 '헌트' 주연, 영화 '보호자' 연출, 그리고 '서울의 봄' 주연까지 쉬지 않고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좀 지칠 것 같은데 에너지 충전은 어떻게 하나. 

▶ 요즘 지쳤다. 드라마 촬영이 딱 끝나니 지치더라. 좀 쉬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 한 작품에서 얻는 피로감은 다음 작품에서 보상 받는다. 일에 대한 어떤 즐거움과 가치, 이런 것들이 내 스스로 평가할 때 굉장히 크고 흡족하고 감사하고 그러니까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진짜 한번 푹 쉬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든다. 

- 극중 전두광 무리가 다이내믹하게 사건을 벌여가는 것에 비해 이태신은 전화를 걸면서 도와달라고 읍소하는 연기가 큰 비중을 촬영한다. 언론시사회 당시에도 연기의 어려움을 호소한바 있는데 이태신을 표현하는데 어려운 지점이 있었다면. 

▶ 저는 그 부탁 부분을 앵벌이 연기라고 부른다.(웃음) 이태신은 상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려는 사람이다. 스트레스가 쌓이고 답답하다고 해서 화로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극복하려고 하다보니 많이 외롭다. 그 상황 속에서 사람들에게 외면 당하고 안좋게 내몰리고 혼자 고립되더라도 그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받아들이면서도 어떻게든 자신이 가진 직무의 책임으로 돌파할려고 고민한다. 감정적 대처보다 이성적으로 상황을 해석하려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모습들이 얹혀진 이태신을 볼 때 정말 답답하고 고군분투했겠구나 싶다 처음 정상호 육군참모총장님(이성민)을 만나는 장면을 연기할 때 답답함을 느꼈다. 이태신은 어떤 사람일까 막연하게 찾아가는 첫 단추같은 장면이었다. 정 참모총장이 조용히 제안했을 떄 조용히 거절한다. 그런데 그 모습에 이태신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그 장면이 되게 막연하더라. 연기를 하면서 잘 해낸건가 의문이 들더라. 첫 단추를 잘 꿴건가 막연한 마음이 들었다. 

배우 정우성 /사진제공=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 이태신 역에 대한 부담과 그 막연함을 어떻게 이겨냈나. 

▶ 끝까지 이겨내지 못했다. 이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관객들이 이렇게 호응해주시는 것이 놀랍다. 내가 잘 한 건가. 이태신에 감정이 이입되고 상황에 대한 분노를 함께 느끼면서 전두광 역 황정민 형의 연기를 전체적으로 보면서 징글징글하더라. 기빨리는 느낌이었다. '내가 잘 한건가, 맞게 했나' 다시 한번 느껴지더라. 인간이기에 어떤 확실성을 스스로에게 찾으려고 하는데 사실 맞고 틀린 것은 있을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있을 수 없다. 그걸 인정해야만 하는 직업이다. 

'아수라'때 인물에 얹혀진 스트레스를 표현해야 했다. 한도경은 상황을 부정하고 도망치려고 하던 인물이다. 촬영이 다 끝나고 나서야 그 스트레스를 다 표현하는게 어떤 건지 느껴졌다. 감독님이 뭘 하려고 했는지 알게 됐다. '서울의 봄'에서는 촬영 초기부터 감독님의 의도가 느껴졌다. 성수 형이 어떤 시점으로 이 세계를 보고 있는지 알겠더라. 나의 이해도는 부족할 수 있으니 감독님께 많이 기댔다. 

그나마 아내와 있는 연기를 할 때가 편했던 것 같다. 인간적으로 가장 편안한 모습이었다. 8사단장에게 앵벌이할 때는 얼마나 절박한가. 대부분 연기가 모두 전화 해서 부탁하는 거다. 상대가 어떤 결정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 촬영이 끝나고 처음 보는 것이 감독님의 시선이다. 또 가장 첫 제 3자의 시선은 촬영감독님인데 '컷'하고 촬영 감독님의 시선이 늘 궁금했다. 이태신의 절박함을 느꼈나, 안느꼈나를 살폈는데 촬영감독님이 이태신의 마음을 느끼셨더라 . 하지만 나중에는 촬영감독님 시선도 의심이 들더라.(웃음)

- 처음 이태신이라는 인물을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 이태신은 자기 본분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이다. 인간의 성향상 힘이 세지는 쪽으로 뭉치게 되어 있고 혹은 남들의 눈치도 보지 않나. 어떤 사람이라도 내 안에 이태신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인물도 있을 수 있다. 다만 관객들이 이렇게까지 이태신을 향한 뜨거운 응원을 보내시는 것에는 그들안에 이태신이 있기에 공감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싶다. 

- 김성수 감독은 이태신 역에 정우성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평소 친한 배우여서가 아니라 이태신이 가진 직업에 대한 본분을 대하는 자세와 정우성이 배우로서 연기를 대하는 자세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었다고 하더라. 인물을 찾아나갈 때 배우로서의 진실된 자세와 진정성이 투철하다던데. 

▶ 감독님이 저에 대해 평가해주시는 이야기이기에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제가 배우로서 여러 선택들을 해 왔잖나. 제 경력 정도 되면 흥행만 쫓는게 아니라 이런 저런 시도도 해보고 스스로에 대한 의미 부여도 해보게 된다. 그런 선택들에 대해 감독님이 지켜보실 때 선배로서 바람직하다고 보신 게 아닐까.  

- 이태신 역은 전두광에 비해 외모적 특색을 살릴 수도 없고 사건을 적극적으로 일으키는 인물도 아니기에 연기하기가 훨씬 어려웠을 것 같다. 실제 모델 장태완에게서 멀어진 허구의 인물로 연기해달라는 김성수 감독의 주문 때문에도 더 어려웠을 것 같다. 

▶ 전두광도 황정민 배우의 해석에 감독님이 바라보는 관점까지 더해져 재해석되지 않나. 전두광은 분장으로 카리스마를 내세울 수 있기에 그런 점은 부러웠다. 12.12라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을 무대 위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재창조해야 하는데 애초 모티브와 비슷하게 해나간다면 캐릭터 디자인에 대한 고민음 크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무대에서 전두광과 이태신은 우리가 새롭게 만들어 내야하는 캐릭터였기에 제로 상태에서 하나씩 만들어 나가야 했다. 

감독님이 어떤 확신을 가지고 제안하셨지만 제가 이해하는 단어들과 감독님이 말하는 단어들이 다를 수 있으니 접점을 찾아나가야 했다. 현장에서 끊임없이 서로의 접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행위를 가지고 했을 때는 확신을 가지고 했어도 전체적 완성도 면에서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어떤 행위와 묘사에 집중되어 있는 캐릭터라면 고민을 덜했겠는데 심리적 판단을 해야하는 인물이고 전화할 때의 자세 같은 어떤 살과 뼈를 만들어야하니 그 어떤 막연함들이 있었다. 그 막연함이 더 많은 관찰과 고민을 만들어냈다. 전두광 패거리들이 모여 있는 장면 등에서 계속 찾아가서 살펴보게 됐다. 실제 정민이 형과 붙는 신이 별로 없는데 오히려 정민이 형 연기를 가장 많이 옆에서 지켜 본 작품 같다. 정말 징글징글하게 해내기에 '큰일 났다' 싶었다.(웃음) 

- 김성수 감독이 특별히 이태신에 대해 주문한 내용이 있다면. 

▶ 감독님은 선과 악의 대결보다 직무와 책임을 지키려고 하는 이태신의 소신이 드러나기를 바라셨다. 그 소신을 지키려고 했기에 전두광 패거리를 정정당당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관객분들도 그런 사태를 함께 바라봐 주시니 이태신이 멋지다고 표현해주시는 것 같다. 이태신이 멋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 없다. 감독님은 이태신을 통해 관객들이 사건을 목격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김 감독님이 19세 때 한남동에서 그 사건 당시 총성을 듣고 30대가 되서야 12.12 사태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 '너무 말도 안되는 일들이 있었다'고 생각하신 것에서 이 영화는 시작됐다. 감독님은 선과 악에 대한 정의를 내리려고 하시기보다 인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고 싶어하신 것 같다. 인간 본성에 대해 집요하게 포착하려고 하셨다. 명분이나 정의를 강요하는 영화는 아니다. 

- 바리케이트를 넘는 엔딩신에서도 이태신의 곧은 자세가 드러난다. 

▶ 정말 힘들었다. 감독님은 '정우성은 키가 크잖아. 잘 넘어 갈거야'라고 말씀하셨지만 힘들더라. 그런데 이태신이 자기의 소신을 위해 바리케이트를 넘는 것, 눈앞에 장애물이 있어도 꿋꿋하게 느리지만 무거운 발걸음이더라도 넘으려고 하는 것에 그 사람의 성격이 담겨 있다. 가시에 찔리고 옷이 뜯어져도 그는 그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 정우성에 대해 '정의의 아이콘'이라는 새 수식어가 퍼지고 있더. 청춘의 아이콘에 버금가는 수식어인데. 

▶ 다음에는 정말 허름한 캐릭터를 해야 하나 싶다. 단 한번도 제가 정의로움의 아이콘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다. '비트' 당시 청춘의 아이콘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릴 때 빨리 벗어던지고 싶었다. 어떤 아이콘이 되고 싶지도 앟고 아이콘일 수도 없다. 그때는 그저 청춘의 외로움을 표현한 것 뿐이다. 당시 청춘들은 누구나 그런 외로움을 느끼셨을 테니 동시성을 느끼고 민이라는 인물에 그런 대표 수식어를 주신 것 같다. 

이번에도 빨리 정의로움을 벗어던지고 싶다. 

- 이태신이라는 캐릭터는 정우성에게 어떤 캐릭터로 남겨질까. 

▶ 부담스러운 캐릭터로 남을 것 같다. 너무들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 (지금 당장은 모르겠고)시간이 흘러서 두고 봤을 떄 '서울의 봄'과 이태신이 어떤 의미 있는 캐릭터인지 확인할 것 같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소신은 중요하다. 배우 직업을 가진 정우성이 추구해왔던 것을 살펴보면 어느 한 캐릭터에 머물러 있지 않으려고 했다. 그것이 배우 정우성의 소신이다. 계속 해서 도전하고 배우 정우성이 경험한 것들, 특히 꼭 주류의 장르가 아니더라도 새 작품에 같이 참여하려고 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도전하려고 했고 다른 사람들이 용기내서 도전할 수 있는 작은 씨앗이 될 수 있는 작품들에 참여하려고 했다. 그런 생각으로 저를 강요하거나 채찍질하지는 않지만 이 생각을 품고 작품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더라. 지난 30년을 돌이켜보면 그런 소신으로 임한 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스포츠한국 모신정 기자 msj@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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