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학술기관서 106년 만에 광개토대왕비 탁본 발견

고정현 기자 2023. 12. 23.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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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박대재(52)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18일 프랑스 고등학술기관 '콜레주 드 프랑스' 내 아시아학회 도서관의 협조를 구해 이곳에 소장된 광개토대왕비 탁본 실물을 소개했습니다.

박 교수는 관련 연구자 등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광개토대왕비 탁본과 이 탁본을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 바람에 그간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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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대재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콜레주 드 프랑스' 내 아시아학회 도서관에서 최근 새로 발견한 광개토대왕비 탁본 1면을 설명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한 도서관에서 존재가 확인된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탁본이 100여년 만에 언론에 처음 공개됐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박대재(52)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현지시간으로 지난 18일 프랑스 고등학술기관 '콜레주 드 프랑스' 내 아시아학회 도서관의 협조를 구해 이곳에 소장된 광개토대왕비 탁본 실물을 소개했습니다.

두루마리식으로 말아놓은 길이 5.42m, 최대 너비 1.47m의 탁본입니다.

한자가 빼곡히 들어찬 1면의 왼쪽 중간은 탁본이 되지 않은 채 종이의 흰색 그대로였습니다.

광개토대왕비 해당 부분의 균열이 심하거나 글자가 훼손돼 아예 먹을 칠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박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가로 37∼38㎝, 세로 63∼67㎝ 내외의 장방형 종이를 여러 장 이어 붙인 탁본이라 접지 부위도 눈으로 식별할 수 있습니다.

박 교수는 "탁본에 쓰인 종이가 그 재질로 보아 한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이 탁본은 100년 넘게 외부에 그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은 채 콜레주 드 프랑스 아시아학회 도서관에 보관돼 있었습니다.

지난해 말 학회 창립 200주년 기념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도서관 사서 아멘나 씨가 서고 속 상자 안에 담긴 이 탁본을 발견했습니다.

아멘나 씨는 '신라' 등의 단어가 있어 일단 '중국 탁본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 박대재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와 프랑스 파리 '콜레주 드 프랑스' 내 아시아학회 도서관 아멘나 사서가 최근 새로 발견한 광개토대왕비 탁본 2면을 펼치고 있다.

이에 한국학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노미숙 사서에게 탁본을 살펴봐 달라고 했고 노 사서가 비로소 광개토대왕비 탁본임을 확인했습니다.

박 교수는 지난 10월 이 탁본에 대한 실측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습니다.

그 결과 이 탁본이 1910년 무렵 제작된 석회 탁본으로, 106년 전인 1917년 아시아학회 회원이던 앨리스 게티(1865∼1946)라는 인물이 학회에 기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박 교수는 게티 여사가 1910년대 연구 자료 수집 차 아시아 지역을 답사했을 때 중국 고서점가에서 이 탁본을 구해 프랑스로 가져온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박 교수는 관련 연구자 등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광개토대왕비 탁본과 이 탁본을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 바람에 그간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탁본은 프랑스의 동양학자 에두아르 샤반(1865∼1918)이 수집한 자료로, 그간 '샤반 본(本)'으로 불리며 동아시아 이외 지역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의 유일한 탁본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에 아시아학회 도서관에서 발견된 '게티 본(本)'은 총 4장으로, 광개토대왕비 총 4면 가운데 3면을 제외한 1면 1장, 2면 2장, 4면 1장입니다.

왜 3면이 빠지고 2면이 중복돼 있는지는 도서관 내 자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박 교수는 "이 탁본은 유일하게 같은 시기에 제작된 탁본 2장이 중복됐다"며 "이는 광개토대왕비 탁본의 제작 방식, 연대 추정에 좋은 근거가 되기 때문에 앞으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 광개토대왕비 북면 탑본 작업 모습 (사진=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연합뉴스)

박 교수는 또 해외에 있는 한국의 고서 발굴 작업을 위해선 국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파리 국립도서관이나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 같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한국 자료 소장 기관에 한국 자료를 담당하는 사서나 큐레이터가 없어 중국이나 일본 자료 담당자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박 교수는 "과거 한국 자료가 한문이다 보니 전공자가 아니면 중국 자료와 한국 자료를 구분하기 어렵다"며 "새로운 한국 자료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파리의 주요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한국 담당 사서나 큐레이터가 배치돼야 하는데 이런 부분은 민간 차원서는 할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고정현 기자 yd@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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