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기술전쟁 2라운드… 반도체 vs 희토류

이우중 2023. 12. 23.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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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범용반도체로 中 압박하자
中, 희토류 가공기술 수출 통제
美, “동맹국도 안보에 예외 없다”
日 US스틸 인수 영향 면밀 검토
미·중 갈등 속에 웃는 ‘연결국가’
베트남·멕시코 등 어부지리 얻어

중국이 전략물자인 희토류의 가공기술 수출을 금지하기로 했다. 범용 반도체까지 옥죄려는 미국의 대(對)중국 압박에 맞불 격으로 꺼내든 카드로, 미·중 정상회담 등으로 개선 기대감을 보였던 양국 간 기술 전쟁이 2라운드에 접어드는 모양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중국 상무부와 과학기술부는 21일 ‘중국 수출 금지 및 제한 기술 목록’을 새로 발표하고 희토류의 채굴, 제련 등 가공기술을 수출 금지 목록에 포함시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희토류 생산의 약 60%를 점유하고 있고 가공 및 정제 산업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90%에 육박한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번 조치는 희토류 선적 자체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중국 외 지역에서 희토류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좌절시키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해 12월 가공 기술을 수출 금지 및 제한 기술 목록에 포함하는 방안에 대한 의견 청취에 들어간 바 있다. 당시 수출 금지 이유는 국가안보와 공공이익 보호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對)중국 무역 제한 조치 확대에 맞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 장시성에 있는 희토류 광산의 2010년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중국은 지난 8월부터 반도체 소재인 게르마늄과 갈륨 수출을 통제했고 이달 들어서는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흑연 수출 제한에 돌입했다. 이에 다음 차례는 희토류라는 전망이 커졌고, 실제로 중국은 수출 자체를 통제하지는 않았지만 희토류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이번 수출 금지는 미국과 유럽이 중국산 희토류에서 벗어나 자립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나왔다. IEA는 글로벌 친환경 추세에 따라 2040년 희토류 수요가 현재보다 7배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장비 수출통제 등을 통해 중국의 첨단 반도체 개발을 견제하고 있는 미국은 저가의 중국산 범용 반도체의 미국 시장 장악을 막는 방법도 고민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2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미국 기업의 중국산 범용 반도체에 대한 의존도 등 중국의 범용 반도체 생산에 대한 정보 수집에 나선다. 상무부 당국자는 미국 기업들이 범용 반도체를 어떻게 조달하고 사용하는지 이해하기 위해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내년 1월 자동차, 항공우주, 방산 등 분야 100개 이상의 기업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일부 중국 반도체 기업이 경쟁사를 제치기 위해 저렴한 가격을 활용해왔으며 미국 정부는 중국이 철강과 태양광에 이어 범용 반도체 산업까지 장악하는것을 막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지나 러몬도 상무부 장관은 성명에서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중국이 자국 기업의 범용 반도체 생산을 확대하고 미국 기업이 경쟁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면서 우려스러운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징후를 봐왔다”며 이번 조사가 “우리의 다음 행동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 행동에는 관세나 다른 무역 도구가 포함될 수 있다고 당국자는 말했다.

미국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는 지난 12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범용 반도체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시급히 행동해야 한다”며 상무부가 중국산 범용 반도체에 관세를 부과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대중 반도체 수출통제를 시작으로 중국이 인공지능(AI)을 개발하고 군대를 현대화하는 데 필요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노력을 집중해왔다. 이에 중국은 미국이 수출을 통제하지 않는 더 단순한 기술의 반도체를 구형 생산기법으로 제조하는 데 수십억달러를 투자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상무부는 조사 내용을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촉진하기 위해 기업에 지원하는 반도체법 보조금 지급 결정에도 참고할 계획이다. 또 조사를 통해 미국의 방산기업들이 공급망에서 중국산 반도체를 단계적으로 없애도록 설득하려 한다고 당국자는 설명했다.

미국 백악관은 또 일본제철의 미국 철강기업 US스틸 인수를 승인하기 전에 이번 거래가 국가 안보 등에 미칠 영향을 면밀히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레이얼 브레이너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이날 성명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긴밀한 동맹국의 기업일지라도 외국 기업이 이 상징적인 미국 기업을 매수하는 게 국가 안보와 공급망 신뢰성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정말 면밀히 조사해야 마땅해 보인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브레이너드 위원장은 “이것은 의회가 권한을 부여하고 바이든 행정부가 강화한 범정부 외국인투자위원회가 면밀히 조사할 준비가 된 종류의 거래로 보인다”며 “행정부는 그런 조사가 이뤄질 경우 그 결과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적절한 경우 행동할 준비가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브레이너드 위원장이 언급한 조사는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 심의다. CFIUS는 외국인의 미국기업 인수합병 등 대미 투자가 국가 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심사해 안보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시정 조치를 요구하거나 대통령에 거래 불허를 권고할 수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이날 US스틸과 일본제철은 CFIUS에 심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앞서 오하이오와 펜실베이니아주 등 과거 철강산업이 부흥했지만 외국과의 경쟁에 밀려 쇠락한 ‘러스트 벨트’의 정치인들은 US스틸 매각에 반대하며 CFIUS가 거래를 막을 것을 촉구해 왔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중국 견제 등에 협력해야 하는 주요 동맹인 일본의 US스틸 인수를 막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전망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깐깐한 심사를 예고한 것이다.

사이토 겐 일본 경제산업상은 22일 각료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미국 정부가 인수건을 경제 안보 관점에서 심사할 의향을 보인 데 대해 “일본제철이 절차에 확실히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그는 이어 개별 기업의 안건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을 삼가겠다면서 “미·일 동맹은 전례 없이 공고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제철은 미 정부의 입장에 대해 아직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이니치신문은 “미국 제조업을 상징하는 명문 기업 인수에 대해 미 의회 여야 의원들과 전미철강노조도 반발하고 있어 인수 절차가 난항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블룸버그통신은 21일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이들 국가의 중간 지대에서 양측을 연결하는 베트남·폴란드·멕시코·모로코·인도네시아 등 ‘연결국가’의 역할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연결국가들은 이런 갈등 속에서 경제적 이득을 얻으려 하고 있으며, 블룸버그 산하 블룸버그이코노믹스와 블룸버그비즈니스가 무역·투자 부문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확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5개국의 국내총생산(GDP) 비중은 세계에서 4%에 불과하지만 2017년 이후 ‘그린필드 투자’(기업이 외국에서 용지를 직접 매입하고 사업장을 새로 짓는 투자방식)에서의 비중은 10%를 넘겼다.

베트남은 2018년 미중 무역전쟁 이후 수혜를 본 대표적 국가로 지난 9월 미국과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양자 관계를 격상했으며,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회원국이기도 하다. 베트남은 저렴한 인건비와 비교적 양호한 인프라 시설을 바탕으로 애플 협력업체인 폭스콘 등 다수 기업의 투자를 유치했다. 베트남 수출의 3분의 1가량은 미국으로 향하는데, 베트남 제조업체들의 최대 원료공급 국가는 중국이다.

미국과 인접한 멕시코는 미국·캐나다와의 자유무역협정(FTA)을 바탕으로 미국 수출의 교두보 역할을 희망하고 있다. 대미 수출에서 멕시코가 중국을 앞질렀지만 2017년 이후 멕시코의 중국산 수입액 증가는 멕시코의 대미 수출액 증가보다 더 빠르게 늘었다. 멕시코·미국 국경에 공장을 만든 제조업체 다수가 중국 회사들이고, 이들이 미국 시장을 겨냥한 제품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뜻이다.

폴란드는 전기차 배터리 제조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세계 배터리 생산에서 중국에 이어 2위를 기록 중이다. 폴란드에는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등도 진출해있다. 이 과정에서 폴란드는 중국산 흑연 등의 수입을 늘리고 있으며, 폴란드의 중국산 수입액은 2017년 이후 112% 증가했다.

모로코는 전기차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에 들어가는 인산염 매장량이 세계 최대인 장점을 살려가고 있다. 모로코는 유럽·미국과 강력한 관계를 맺고 있는 동시에 외국인직접투자(FDI)에 대한 호의적 태도를 바탕으로 미·중 사이를 이으려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2억7000만명에 달하는 인구와 풍부한 천연자원을 활용해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한다. 인도네시아는 전기차 공급망을 완성하려는 구상으로 미국과 중국 기업들을 적극 유치하고 있으며, 테슬라와 폭스바겐도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상태다.

베이징=이우중 특파원 lol@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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