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년 만에 파리 도서관서 빛 본 광개토대왕비 탁본
1910년대 제작 추정…광개토대왕비 4면 중 3면은 없어
박 교수 "한국 자료, 中 자료와 혼동…韓 자료 발굴 더 힘써야"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프랑스 파리의 한 도서관에서 존재가 확인된 고구려 광개토대왕비의 탁본이 100여년만에 언론에 처음 공개됐다.
프랑스 파리에서 연구년을 보내고 있는 박대재(52)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는 이달 18일(현지시간) 프랑스 고등학술기관 '콜레주 드 프랑스' 내 아시아학회 도서관의 협조를 구해 이곳에 소장된 광개토대왕비 탁본 실물을 소개했다.
두루마리식으로 말아놓은 길이 5.42m, 최대 너비 1.47m의 탁본 1면을 테이블 위에 펼치자 검은 먹 바탕에 선명한 한자로 된 비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탁본 실물을 펼치기 위해 책상 여러 개를 붙여놨지만 이마저도 좁을 정도로 크기가 컸다.
한자가 빼곡히 들어찬 1면의 왼쪽 중간은 탁본이 되지 않은 채 종이의 흰색 그대로였다. 광개토대왕비 해당 부분의 균열이 심하거나 글자가 훼손돼 아예 먹을 칠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가로 37∼38㎝, 세로 63∼67㎝ 내외의 장방형 종이를 여러 장 이어 붙인 탁본이라 접지 부위도 눈으로 식별할 수 있었다. 박 교수는 "탁본에 쓰인 종이가 그 재질로 보아 한지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종이에 스며든 먹의 농도가 얼마나 진한지 탁본을 펼쳐둔 흰색 책상 위에 먹 가루가 우수수 떨어졌다. 먹 가루가 아직도 떨어진다는 것은 처음 탁본을 뜬 이후 사람 손을 가급적 타지 않고 보관됐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실제 이 탁본은 100년 넘게 외부에 그 존재가 잘 드러나지 않은 채 콜레주 드 프랑스 아시아학회 도서관에 보관돼 있었다.
지난해 말 학회 창립 200주년 기념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 도서관 사서 아멘나 씨가 서고 속 상자 안에 담긴 이 탁본을 발견했다.
아멘나 씨는 '신라' 등의 단어가 있어 일단 '중국 탁본은 아니다'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에 한국학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노미숙 사서에게 탁본을 살펴봐달라고 했고 노 사서가 비로소 광개토대왕비 탁본임을 확인했다.
박 교수는 지난 10월 이 탁본에 대한 실측 조사와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이 탁본이 1910년 무렵 제작된 석회 탁본으로, 106년 전인 1917년 아시아학회 회원이던 앨리스 게티(1865∼1946)라는 인물이 학회에 기증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박 교수는 게티 여사가 1910년대 연구 자료 수집 차 아시아 지역을 답사했을 때 중국 고서점가에서 이 탁본을 구해 프랑스로 가져온 것으로 추정했다.
박 교수는 관련 연구자 등이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광개토대왕비 탁본과 이 탁본을 같은 것으로 혼동하는 바람에 그간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한 탁본은 프랑스의 동양학자 에두아르 샤반(1865∼1918)이 수집한 자료로, 그간 '샤반 본(本)'으로 불리며 동아시아 이외 지역에 있는 광개토대왕비의 유일한 탁본으로 알려졌었다.
이번에 아시아학회 도서관에서 발견된 '게티 본(本)'은 총 4장으로, 광개토대왕비 총 4면 가운데 3면을 제외한 1면 1장, 2면 2장, 4면 1장이다.
왜 3면이 빠지고 2면이 중복돼 있는지는 도서관 내 자료에도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이유를 알 수 없다.
박 교수는 "이 탁본은 유일하게 같은 시기에 제작된 탁본 2장이 중복됐다"며 "이는 광개토대왕비 탁본의 제작 방식, 연대 추정에 좋은 근거가 되기 때문에 앞으로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 교수는 또 해외에 있는 한국의 고서 발굴 작업을 위해선 국가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파리 국립도서관이나 국립 기메 동양박물관 같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한국 자료 소장 기관에 한국 자료를 담당하는 사서나 큐레이터가 없어 중국이나 일본 자료 담당자가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박 교수는 "과거 한국 자료가 한문이다 보니 전공자가 아니면 중국 자료와 한국 자료를 구분하기 어렵다"며 "새로운 한국 자료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파리의 주요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한국 담당 사서나 큐레이터가 배치돼야 하는데 이런 부분은 민간 차원서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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