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러시아 사람이 같이 일한다면?…전쟁 바라보는 4가지 유형 [파일럿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양측의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는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유엔에 따르면, 전쟁으로 인해 우크라이나에서 약 100만 명이 사망하고 800만 명이 난민이 되었다. 또한, 우크라이나의 인프라와 산업 시설이 크게 파괴되면서 경제적 피해도 막대하다.
우리들이야 가끔 이렇게 활자나 영상으로 된 뉴스를 보는 것이 전부지만, 현재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자신의 친구 혹은 지인들이 전쟁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고, 이미 전선에 나가있는 사람들 중 내 가족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전쟁의 당사자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한 직장에서 근무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서로 대놓고 말은 못하지만 당연히 예전만큼 엄청 편하거나 막역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중동에 위치한 많은 항공사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다국적 승무원들이 많은 특성상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승무원이 같은 비행기를 타고 근무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쉽게 이해하려면 어느날 옆 나라가 우리나라를 쳐들어와서 현재까지 수많은 한국인이 죽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외국계기업에서 한국인과 그 전쟁 당사자인 그 나라 사람이 매일 얼굴을 맞대면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상황을 생각하면 되겠다.
사실 회사 입장에서도 이런걸 다 알기 때문에 비행중에 승무원들간 정치나 종교 얘기를 하는 것을 금지한다. 비행 스케줄도 따로잡아서 가능하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승무원이 같은 비행기를 못타게도 한다.
하지만 승무원들 입장에서 길게는 10시간 넘게 비행하는데 10시간동안 디저트 맛집 얘기만 할수도 없는 것이고, 같은 비행기를 못탄다 해도 브리핑룸이나 회사 안에서도 얼마든지 마주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 사는 얘기 하다보면 결국엔 ‘너희 가족은 괜찮냐’ ‘너는 괜찮냐‘는 식의 대화가 결국엔 나오기 마련이다. 이렇게 전쟁 관련해서 필자가 직간접적으로 대화해보면서 경험해본 승무원들의 유형은 크게 네가지로 나뉘었다.
어느날 필자와 같이 비행을 했던 한 러시아 국적의 기장은 “이유를 막론하고 전쟁은 옳지 못한것”이라면서 “사실 (러시아가)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나도 내 동생의 부인이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다행히 전쟁에 휘말리지는 않았는데, 너무 장기화되면서 동생의 안위에도 문제가 생기고 있다. 어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면서 한숨을 푹 쉬었다.
이어 “이렇게 옳지 못한 것을 보면서도 도망쳐서 편하게 여기서 돈이나 편하게 벌고 있는 나도 비겁한 사람”이라면서 “특히 예전에 징집령이 내려졌을 때 괜히 들어갔다가 끌려갈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기간동안에 절대로 러시아 땅에 안 들어가게 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게 부끄러운 행동들이었다”고 말했다.
외국에서 돈을 벌어서 러시아로 갖고 들어가는 것도 예전보다 상당히 귀찮아졌고, 우크라이나 점령을 하든 안하든 자신의 일상에 아무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유럽이나 미국여행만 더 까다로워졌다는 현실적인 이유다.
이건 필자도 동감하는 것이, 작은 예로 현재 비자와 마스터카드 같은 미국 신용카드 회사들이 러시아에서 철수를 하면서 현재 러시아 안에서는 비자나 마스터카드 국제 신용카드를 못쓰는 상황이다. 때문에 가끔 러시아에 레이오버를 하게 되면 그때마다 꼭 달러를 챙겨서 현지 은행에서 러시아 루블 현금으로 환전해야 하니 너무나 귀찮은 상황이다. 외국 카드를 못쓰기 때문이다. 이런건 사실 아주 작은 예고, 현지에서 보면 이런 것들이 한 두개가 아닐 것이다.
원래부터 정치 사회 이슈에 관심 없었고, 그냥 나는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되고 사람들이 이런 것에 궁금해하는 것도 싫고,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서 우리 가족이 연관된것도 아니고, 오래전부터 외국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감흥도 없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났다고 해서 나에게 딱히 피해를 주거나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니기에 별 관심도 없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뉴스를 보고 읽은 타 외국인 승무원이 오히려 더 전쟁 진행상황이나 최근 푸틴이나 젤런스키 발언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는 경우가 생긴다. 어느날 같이 비행했던 우크라이나 출신 승무원이 이런 말을 했던 것이 기억난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전쟁이 나쁜건 알겠고 당연히 싫죠. 그런데 저희 가족은 이미 우크라이나 밖에서 산지 오래되어서 피해 받은것도 없고 해서 별로 막 엄청 피부로 와닿는것 같지는 않아요. 그리고 뭐 제가 뭘 할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저도 하루하루 비행하면서 사는 작은 크루에 불과한데 제가 뭐 어떻게 할까요?”
이 얘기를 듣고 “어떻게 너희 나라에서 벌어진 비극을 모른척 할 수 있어?”라며 그를 비난할 수 있을까. 솔직히 필자는 잘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99.9%의 개인은 무기력할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일제강점기때에도 모두가 다 독립투사가 되었던 것은 아니다. 대다수는 현실에 순응하면서 하루하루 여느때처럼 살았을 것이다.
어느날 같이 비행했던 인도 출신 승무원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 승무원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덕분에 인도 경제는 현재 엄청나게 더 성장하고 있다. 러시아의 원유를 헐값으로 수입해서 이를 경제에 보태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많은 인도인들 역시 러시아와 가까워지면서 이를 기회로 보고, 서방이 빠져나간 틈을 이용해서 진출하고 그들에게서 이익을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실 그 인도 출신 승무원이 진심으로 전쟁이 일어나서 좋다는 식으로 말했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도 어느정도는 자조적으로 말하면서 냉혹한 현실세계에 대해 설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히 이런 전쟁을 기회로 삼아서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사람이나 단체가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니 판단은 독자 몫으로.
실제로 2022년 인도의 대러시아 수입은 전년 대비 4.4배 증가하며 전년대비 21위에서 6위 수입대상국으로 급부상했다. 물론 서방 국가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대응으로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도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앞으로도 러시아와의 협력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다.
[원요환 UAE항공사 파일럿 (前매일경제 기자)]
john.won3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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