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극적인 콘텐츠에 지친다…“도파민 대신 힐링이 필요해”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OTT 시대가 도래하며 콘텐츠들은 독해졌다. 그간 소재와 표현 수위가 제한됐던 지상파 시대가 끝나면서, 봇물 터지듯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선을 잡아끌었지만, 그 피로감도 만만찮았다. 최근 순한 맛 콘텐츠들이 주목받는 이유다.
자극의 끝판왕이던 김순옥표 막장의 추락
10%도 어려운 요즘 같은 시절에 최고시청률 28.8%(닐슨코리아)를 찍은 《펜트하우스》로 막장에도 명품이 있다는 이야기까지 들었던 김순옥 작가가 《7인의 탈출》이라는 작품으로 돌아왔을 때 방송가는 온통 긴장했던 게 사실이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방영됐던 《연인》은 폭풍우 앞에 놓인 촛불 같은 위태로움을 예감했다. 심지어 《7인의 탈출》의 제작비는 무려 460억원이었다. 전 세계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제작비인 230억원의 두 배나 되는 액수다. 그러니 막강한 물량 공세에 김순옥 작가 특유의 끝까지 몰아치는 복수극이 만들어낼 파괴력 앞에 그 어떤 콘텐츠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그것이 섣부른 예단에 불과했다는 게 드러났다. 《7인의 탈출》은 예상대로 시작부터 독하게 밀어붙였다. 고등학생의 원조교제와 학교 교실에서의 출산, 자신의 욕망을 위해 딸의 목을 조르고 죽음을 방조하는 비정한 엄마, 자신이 한 출산을 친구가 했다고 누명을 씌워 가짜뉴스를 퍼트리고 그 가족까지 파탄 내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자신의 치부를 숨기기 위해 학생에게 누명까지 씌우는 걸 마다치 않는 선생까지, 줄줄이 막장 속 괴물 같은 캐릭터들이 전시장을 이루었다. 또 환각 파티가 벌어지고 그 안에서 유니콘이 날아다니며 크리처물에 등장할 법한 괴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기괴한 판타지도 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말도 안 되는 개연성 무시의 작품에서도 이른바 '순옥적 허용'이라고 이를 받아들이던 시청자들은 웬일인지 이번에는 등을 돌렸다. 최소한의 개연성도 무시한 완성도 부족에 어설픈 CG를 수용하기 어려운 시청자들은 도대체 460억원이라는 제작비가 어디에 들어갔는지를 묻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변화를 만든 걸까.
OTT 오리지널 드라마들이 자극성 강하면서도 동시에 완성도 높은 작품을 다수 선보인 점은 이러한 '막장'의 퇴조를 불러일으킨 첫 번째 이유였다. 그저 효능감만 높이려는 강강강강의 자극만으로는 이제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없게 된 거였다. 적어도 납득될 만한 개연성과 완성도를 요구했고, 결과적으로 《7인의 탈출》은 거기에 상응하지 못했다. 최고시청률 7.7%도 그랬지만, 방영 내내 《연인》의 화제성에 밀려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종영했던 건 더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김순옥표 막장의 추락이 단지 완성도 부족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려주는 또 다른 사건들이 등장했다. 넷플릭스가 올해 내놨던 시즌2 드라마들의 잇따른 실패가 그것이다. 《D.P.2》 《스위트홈2》가 그 사례들이다.
《D.P.》도 《스위트홈》도 모두 시즌1에서 대중의 호평을 받았던 작품들이다. 그런데 이 두 작품이 시즌2에서 모두 대중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비판받게 된 건, 시즌1이 가졌던 매력적인 서사와 세계관, 인물들이 시즌2에서는 좀 더 강도를 높인 자극적인 전개 속에서 빛을 잃게 됐다는 점이었다. 《D.P.2》는 시즌1에서 매력적인 캐릭터였던 한호열(구교환)의 분량이 상당 부분 줄어들고 대신 안준호(정해인)의 이야기가 전면에 부각됐다. 그러면서 시즌1이 갖고 있던 군대 내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 대신 거의 슈퍼히어로화된 안준호의 액션으로 채워졌다. 볼거리가 많아졌고 스펙터클해졌지만 시청자들은 오히려 아쉬움을 느꼈다. 시즌1의 빌드업된 세계관이 좀 더 자극적인 볼거리 속에 희석되었다고나 할까.
《스위트홈2》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주면서 대중의 비판을 받았다. 그린홈 맨션이라는 공간에서 벌어지던 인간군상과 욕망의 서사를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통해 보여줬던 시즌1의 세계관은, 맨션이 무너지고 세상 밖으로 나온 인물들이 뿔뿔이 갈라지면서 서사도 지리멸렬해졌다. 시즌1의 매력적인 캐릭터이자 주인공이었던 차현수(송강)와 편상욱(이진욱)의 분량이 줄어들었고 서이경(이시영) 캐릭터는 모성애 서사를 강조하면서 매력이 사라졌다. 군인들이 등장하면서 시즌1이 갖고 있는 크리처물의 장르적 재미보다 밀리터리 장르의 색깔을 더 띠게 됐다. 이응복 감독은 시즌3를 위한 빌드업이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시즌2의 지리멸렬이 수긍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여기에는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이 가진 높은 수위와 자극의 허용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 결과로 보인다. 전편보다는 세져야 한다는 우리네 왜곡된 시즌제에 대한 강박이 작용했고, 그래서 이 강박은 높은 수위와 자극이 가능한 넷플릭스와 만나면서 독성만 강해진 안타까운 결과물을 냈던 거였다. 마침 자극적인 장르물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생겨난 피로감은 이 매력적인 세계관을 가진 작품들조차 외면하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으로 작용했다.
편하게 볼 콘텐츠도 있어야
그래서 자극에 지친 시청자들은 이제 다소 순한 맛, 심지어 멍하게 바라볼 수 있는 콘텐츠 또한 찾기 시작했다. JTBC 《웰컴투 삼달리》 같은 작품이 단적인 사례다. 경쟁적인 삶 속에서 성공을 거머쥐었다고 여겼던 조삼달(신혜선)이 후배의 거짓 폭로로 갑질 상사가 되어 모든 걸 잃고는 고향 제주로 내려와 그곳을 지키고 있는 조용필(지창욱) 및 그 친구들과 교감하며 삶의 활력을 회복해 가는 스토리다. 이미 《갯마을 차차차》나 《동백꽃 필 무렵》 같은 작품에서 익숙하게 봐왔던 설정이지만, 시청자들은 반색하고 있다. 그저 편안하게 바라볼 수 있고, 무엇보다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세상(심지어 콘텐츠들마저도) 속에서 잠시 빠져나와 숨을 쉬게 해주는 효능감이 만만찮아서다.
이처럼 순한 맛을 가진 멜로, 휴먼 기반의 드라마들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같은 힐링과 위로를 주는 작품이 그렇고, 조선시대판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를 보는 듯한 KBS 《혼례대첩》이나 잔잔한 감동을 전하는 힐링 멜로물인 ENA 《사랑한다고 말해줘》 같은 작품들이 그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이런 경향들이 나오고 있는데,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솔로지옥3》가 지난 시즌보다 독한 설정으로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고 있는 반면, 한껏 힘을 뺀 나영석 사단의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가 불멍, 물멍 하듯 예능멍을 하게 해주는 방식으로 좋은 반응을 얻은 것이 그 사례다.
이처럼 작용-반작용은 콘텐츠에서도 순환된다. 한때는 너무 밍밍해서 좀 더 자극적인 OTT 콘텐츠들을 주목하던 시선은, 이제 피곤할 정도로 쏟아져 나온 도파민 과다의 콘텐츠들 속에서 거꾸로 순한 맛을 찾게 됐다. 물론 이것이 하나의 트렌드로만 이어지진 않을 전망이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정반대의 맛을 희구하게 되는 또 다른 역작용이 생겨나는 게 건강한 흐름이기 때문이다. 결국 자극적인 맛과 순한 맛은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며 그 소비에 균형을 맞춰갈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콘텐츠도, 그걸 소비하는 시청자층의 취향도 다양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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