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전문점 뜨아에 꽂혀있는 납작한 빨대? 막대?…근데 그거 뭐지? [그거사전]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3. 12. 23.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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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사전 - 7] 카페에 있는 좁고 작은 빨대인지 뭔지 ‘그거’

“그거 있잖아, 그거.” 일상에서 흔히 접하지만 이름을 몰라 ‘그거’라고 부르는 사물의 이름과 역사를 소개합니다. 가장 하찮은 물건도 꽤나 떠들썩한 등장과, 야심찬 발명과, 당대를 풍미한 문화적 코드와, 간절한 필요에 의해 태어납니다. [그거사전]은 그 흔적을 따라가는 대체로 즐겁고, 가끔은 지적이고, 때론 유머러스한 여정을 지향합니다.
[사진 출처=(주)동일프라텍 오픈마켓 상세 페이지]
명사. 1. 십스틱(sip stick),십 스터러 스틱(sip stirrer stick), 스터 스트로(stir straw) 2. 커피스틱, 스터러【예문】썸남이 커피를 받아올 때 십스틱과 냅킨을 넉넉히 챙겨왔다. 녀석, 센스가 있다.

‘십스틱(sip stick)’이다. 발음에 유의할 것. 국내에서는 흔히 커피스틱으로 부른다. 북미 지역에서는 십 스터러(sip stirrer), 커피 스터러(coffee stirrer), 스터 스트로(stir straw) 등의 명칭이 혼용된다. 단, 커피스틱은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단어다. 일본과 미국에서는 해당 단어가 인스턴트 커피믹스를 지칭하는지라 혼동의 여지가 있다.

‘홀짝거리다/조금씩 마시다’(sip)라는 영어 단어에 막대, 지팡이 등 길쭉한 물체를 뜻하는 스틱을 덧붙였다. 빨대처럼 관 모양으로 뚫려 있지만, 가로의 중앙 부분을 눌러 맞닿게 해 ∞ 모양으로 납작하게 만든 것이 특징.

십스틱이 입에 착 붙기는 하지만, 명확한 출처는 불분명하다. 2016년 이후 언론 기사 등을 통해 몇 차례 소개되기도 했고 포털 사이트에 등재된 신어 사전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북미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명칭과 맞아떨어지지는 않기 때문.

포털 사이트를 통해 십스틱이란 단어의 최초 등장 시점을 추적해본 결과 2004년 12월 16일경 ‘네이버 지식iN’에 올라온 질문에 이르렀다. 닉네임 휘뚜루가 올린 ‘커피 테이크 아웃할때 빨간 막대의 용도’란 질문 글에 다음날 sy****이란 이용자가 답글에 십스틱을 언급하며 “조금씩 홀짝홀짝 마시는 막대기”라고 정확한 용도까지 정의 내려준다. 해당 답글을 남긴 이용자에게 출처 등을 문의했으나 아직 답변을 받지는 못했다.

십스틱은 20년 전에도 ‘그거’였다. “윗 입술에 묻은 크림을 살짝 핥아 먹으면 귀엽다”는 sy****님의 답변이 인상적이다. [사진 출처=네이버 지식iN]
혼란스러운 이름만큼 정체성도 위태롭다. 빨대인지 젓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양쪽의 주장을 모두 들어보자.

① 젓개다.

재료를 잘 뒤섞기 위하여 휘젓는 교반기(攪拌機)의 역할을 한다. 빨대처럼 음료를 빨아 마시기 위한 용도로 쓰기에는 그 구멍이 너무 좁다. 그렇다면 왜 빨대로 오해하게 봉(棒)이 아닌 관(管·대롱) 모양으로 뚫려 있느냐 -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정해져 있다. 그편이 경제적이고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뚫려 있는 만큼 원재료인 플라스틱을 아낄 수 있다. 구조적으로도 속이 찬 원통 형태보다 비어있는 관 형태가 동일 중량 대비 높은 강도를 자랑한다. 또한 원재료인 폴리에틸렌의 비중(0.92~0.96g/mL)은 물(1.0g/mL)보다 낮아 구멍이 없다면 물 위에 뜨게 된다. ∞ 모양으로 납작하게 눌려 있는 형태도 원형보다 휘젓기에 적합하다.

하늘은 왜 나무 스터러를 낳으시고 플라스틱 스터러를 낳으셨나이까. 최근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자는 차원에서 플라스틱 십스틱은 플라스틱 빨대와 함께 매장에서 사라지는 추세다. 사진은 북미 지역 온라인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나무 소재 스터러. 제품명은 ‘우든 커피 스터 스틱’이다. [사진 출처=아마존]
② 빨대다.

이름부터가 ‘홀짝거리며 마시는’ 상황을 상정한 작명이다. 단순히 휘젓는 용도라면 종이나 나무 등으로 만든 납작한 스터러 혹은 머들러가 이미 존재한다. 뜨거운 음료에 바로 입을 대고 마실 경우 입술이나 혀를 델 수 있다. 반면 십스틱의 경우 빨아올리는 과정에서 뜨거운 음료가 납작한 통로를 지나며 빠르게 식을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구멍이 좁은 이유도 뜨거운 음료를 한꺼번에 마시거나 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한 것이다.

제조사의 고심이 느껴지는 안내문. 제조사가 의도하지 않은 사용법에 따라 발생하는 손실이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꼭 설명서를 읽어보는 습관을 지니자. [사진 출처=매경DB]
십스틱으로 커피를 마셔본 사람은 ‘빨대론’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주장인지 안다. 통상적으로 커피전문점의 뜨거운 음료는 정말 미친 듯이 뜨거운 상태로 서빙 되기 때문. 십스틱으로 무턱대고 빨아먹다간 입천장이 사라지는 마술적 경험을 하게 된다. 국내에서 판매되는 제품 중에는 “커피스틱은 빨대가 아닙니다. 스틱으로만 쓰시고 버려주세요. 커피스틱으로 드시다가 입안을 데일 수 있으니 주의하세요”라는 문구가 아예 표기된 제품이 있을 정도다.
뜨아에게 자비란 없다. 입천장이 사라지고 싶다면 벌컥 마셔도 좋다. [사진 출처=인터넷 커뮤니티]
많은 전문가가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기기에 가장 적절한 온도는 55℃ 전후라고 조언한다. 커피 본연의 향을 즐기면서 십스틱을 안전하게 이용하고 싶다면 음료를 식혀서 먹는 버릇을 기르자. 이 밖에 음료에 조각 얼음 한두 개 띄워 달라고 요청하는 방법도 있다. 스타벅스의 경우, 주문할 때 ‘어린이용 온도’를 요청하면 음료의 온도를 57℃로 맞춰준다.

젓개론자의 승리가 눈앞이다. 하지만 이미 십스틱을 애용하고 있는 수많은 빨대론자들을 전부 이단이라고 배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굳이 안 해도 될 조언을 하는 사람을 우리는 꼰대라고 부른다. 적당히 타협해 ‘마시는 용도로도 쓸 수 있는 빨대 겸 젓개’ 십+스틱이라고 해두자.

십스틱으로 커피를 빨아먹든, 마요네즈에 밥을 비벼 먹든 남이 먹는 방식에 대해 참견하지 말자. [사진 출처=먹짱! 喰いしん坊!]
  • 다음 편 예고 : 중화요리 식당에 돌아가는 식탁 그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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