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서 해방 된 1946년 조선을 무대로 펼쳐지는 SF 환타지 ‘압주의 아이’

손봉석 기자 2023. 12. 23. 12:5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시네미툰 제공



한송이 들꽃 같은 신선한 관점이 담긴 환타지 SF소설 ‘압주의 아이’(지은이 백승제 펴낸곳 사네마툰)가 출간이 됐다. 책에서 민들레, 개망초, 엉겅퀴 같이 길을 걷다 우연히 강한 생명력을 지닌 들꽃을 만날 때의 반가움이 느껴지는 것은 이 시대에 잊혀져가는 강렬한 서사를 지녔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든 가능했던 시기’인 1946년 초 해방 공간 여름에 시작하는 이 소설은 해방된 조선에서 독립운동가들이 경찰에 검거되거나 테러 표적이 되며 식민지 시절로 빠르게 회귀 중인 순간에 일어난 일들을 그린 일종의 대체 역사 SF물이다.

우리 현대사의 아픈 상처 중 하나는 단연코 1949년 6월 6일에 일어난 ‘반민특위 습격 사건’이다. 그 날 이후로 반민특위는 해체가 되었고 ‘친일청산’이라는 반역자들에 대한 단죄와 복수라는 민족적이고 국가적인 과업은 그대로 중지가 된 상태로 70년 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친일파들의 부와 권력은 계속 대물림되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대한민국 기득권’의 한 축이 되었다. 이는 실로 안타까운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여태껏 그들이 기회와 특혜를 선점하며 폭력적인 착쥐를 일삼아 왔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러하다.

‘압주의 아이’는 그런 어두운 시대상을 여과지 없이 진액 그대로 담아내고 있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방식은 환타지와 대체 역사를 통해 증폭하고 있다. 결론과 주제도 대체 역사물이 흔하게 취하는 결과론적 비관이 아니다. 오히려 작가는 주인공인 도기준과 모개, 박동선과 차인숙 등의 여정에서 희망의 끈은 놓치지 않고 있다. 부패한 권력에 거침없이 돌진하는 주인공들 모습은 엄혹한 어둠의 시기를 배경으로 더욱 눈부시게 빛을 뿜어낸다.

책 속에서 일제 군부는 인간을 대상으로 인간개조실험을 자행하며 이를 압주 프로젝트라 명명했다. 그들은 패망한 후에도 이 땅에 남아 지배를 영속하기 위한 야욕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하여 압주의 실험체를 소환하기 시작했고 해방이 된 조선 땅 경성에는 기이한 사건들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공고의 적’ 등 스릴러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충무로에서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스릴러 장르 영화나 드라마 처럼 이야기를 미스테리 구조를 구축한 후 풀어내는 방식으로 풀어나가고 있다. 이는 압주 이야기 속 도특한 세계관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탄탄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소설 속 압주의 실험체들의 활약을 중심으로 판타지 소설로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한편, 해방 전후의 탄탄한 시대고을 바탕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 시대 서울 거리에 서서 책 속의 사건들을 목격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이런 간접 경험들은 치밀한 이야기 구조에 따라 결국 악에 대한 ‘저항’과 ‘연대’라는 책의 주제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다.

시대의 역경에 굴하지 않고 뚜벅뚜벅 나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더 나은 미래까지 꿈꾸게 유도한다. 이런 책 속 서사적인 관점은 역사와 개인을 바라보며 절대선과 정의에 대한 신념과 인간에 대한 연민이어 우러진 작가의 따스한 시선을 대변하고 있다.

백승재작가는 ‘압주의 아이’에 대해 “정의로운 청년들이 (잘못된)체제에 대항해 나가는 뜨거운 드라마”라며 “(이 소설이)상식적인 사회를 만들어가는 모든 분들께 응원과 격려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책 제목과 내용 속에 등장하는 압주(abzu)는 고대 수메르의 인간창조 신화다. 신이 인간의 노동력을 얻기 위해 압주라는 심해의 진흙으로 인간을 빚어냈다고 한다.

손봉석 기자 paulsohn@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