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주취전쟁] ②책임 떠안은 경찰만 몸살…"관계기관 공동대응 필요"(끝)
주취보호센터 설립 현재 미지수…"국회 계류 중인 '주취자 보호법' 서둘러야"
(수원=연합뉴스) 강영훈 권준우 김솔 기자 = 송년회와 신년회 등 각종 술자리가 늘어나는 연말연시에 접어든 가운데 일선 지구대·파출소 경찰관들이 주취 신고로 몸살을 앓고 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된 이들 중에는 경찰관에게 욕설이나 폭력을 쓰며 저항하거나 가족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즉시 귀가 조처가 불가능한 사례가 많다.
전문가들은 주취 신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경찰에 지울 것이 아니라 국회에 계류 중인 주취자 보호법을 추진하는 등 적절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기남부 주취 신고 한해 7만 건 넘어
경기남부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주취자 신고 건수는 2018년 6만2천848건, 2019년 5만9천383건, 2020년 6만213건, 2021년 5만1천724건, 지난해 7만724건이다. 지난해의 경우 하루 평균 193건꼴이다.
올해는 집계가 끝나야 알 수 있지만, 정부가 지난 5월 코로나19의 방역 조치를 대부분 해제해 사실상의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을 선언하면서 야외 활동이 크게 늘어 주취 신고 역시 더욱 증가했으리란 분석이다.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기준 5대 범죄 검거 인원은 살인 124명, 강도 142명, 강간추행 3천893명, 절도 1만8천700명, 폭력 5만5천269명이다.
이 중 피의자가 주취 상태인 경우는 살인 28명(전체의 22.6%), 강도 11명(7.8%), 강간추행 1천215명(31.2%), 절도 1천167명(6.3%), 폭력 1만4천778명(26.8%)으로 집계됐다.
어느 정도 계획하에 실행하는 강·절도 범죄를 제외하고, 비교적 우발성이 높은 다른 강력범죄의 피의자 4명 중 1명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범행한 셈이다.
신고 대응 최일선에 있는 경찰관들은 술로 인한 사건·사고가 워낙 잦다 보니 주취와 관련한 신고만 덜어내더라도 업무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박기성 경기남부경찰청 112 관리팀장은 "주취 상태에서 벌어지는 각종 폭행·시비·소란·가정폭력·공무집행방해·위험방지·보호조치 등 수많은 신고는 '주취자 신고 통계'에 포함되지 않고, 해당 범죄 통계로 잡힌다"며 "우리 사회에서 술로 인한 사건·사고와 이를 예방·조치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드는지 가늠조차 어려운 실정"이라고 했다.
이처럼 주취 신고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보니 신고 처리에 대한 책임을 경찰에 일임하는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주취자 보호 전문시설 설립 가능할까
부산시·부산경찰청·부산소방본부·부산의료원은 지난 4월 부산의료원에 주취해소센터를 설립했다.
경찰은 술에 취한 사람을 보호자에게 인계하지 못하면 의료 기관 등에 데려가야 한다. 그러나 부상을 동반하지 않은 단순 음주일 경우 병원 측이 대개 입원을 거부하기 때문에 경찰관이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처하기 위해 부산지역 관계 기관은 경찰관과 소방관이 24시간 근무하는 주취해소센터 운영을 시작한 것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은 한때 부산시 주취해소센터를 벤치 마킹하는 것을 검토했으나, 현재로선 설립이 어렵다는 결론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주취자의 주소나 보호자를 찾을 수 없는 경우 경찰관이 보호실에서 주취자를 보호하다가 술이 깨면 귀가시켰으나, 이럴 경우 '불법 감금'의 소지가 있어 지금은 사라진 조치"라며 "경찰관이 상주하는 주취보호센터 역시 현재로선 법적으로 검토할 부분이 많아 당장 설립을 추진하기는 어렵고, '주취자 보호법'의 국회 통과 등 법적 근거부터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이 주취 신고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사이 공권력 무시 행태는 도를 넘고 있다.
공무집행방해 사범은 지난 한 해 1천202명이 검거됐다. 무기류 등을 사용한 특수공무집행방해 사범도 88명에 달했다. 공무집행방해 관련 주취 통계가 별도로 나오지는 않으나, 상당수가 술에 취해 경찰관에게 폭행이나 욕설하는 경우라는 게 경찰 설명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은 피신고인이 경찰관에게 공격성을 표출하는 사건에 대응키 위해 지난 6월 물리력 대응 훈련 강화 방안인 '동료안전 수호천사'를 출범, 일선 경찰관들에게 체포술·테이저건·권총 사격 등에 대한 교육을 집중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주취 범죄인 음주운전 역시 지난해 단속 건수가 2만9천893건에 이를 정도로 끊이지 않고 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연말연시를 맞아 음주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고 지난 1일부터 내달 31일까지 매주 목~토요일 3일간 일제 단속을 펼치는 중이다.
주취 사건 처리를 위한 이 같은 훈련과 단속에는 모두 상당한 비용이 투입된다.
"국회 계류 중인 '주취자 보호법' 추진해야"
이 세상에서 술이 사라지거나 판매·음용을 금지하지 않는 한 주취 사건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주취 사건을 사전에 방비하고, 안전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경찰을 비롯한 관계당국이 공동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를 위해서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하는데,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주취자 보호 관련 법안의 신속한 통과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05년 이후 주취자 보호에 관한 내용을 담은 법안이 발의된 것은 '주취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더불어민주당 임호선 의원 등 11명·2023년 6월) 등 총 4건이다.
이들 법안은 경찰관 또는 구조·구급대원이 주취자를 일시 보호시설에 인계하거나, 주취자 응급의료센터를 지정해 예산을 지원할 수 있게 하는 방안 등을 담고 있다. 현재 3건이 국회 계류 중이다.
다른 1건은 경찰뿐만 아니라 국가와 지자체가 주취자 보호 업무를 분담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으로 2005년 9월 발의됐으나,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주취자 보호법 발의자인 임호선 의원은 "경찰관의 귀가 조처를 받은 주취자가 숨진 채 발견되는 등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아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며 "그러나 지자체 및 의료기관 등 여러 주체가 얽혀 있는 사안이어서 법안이 속도감 있게 통과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이어 "심신 미약 상태의 주취자를 보호 시설에 인계하는 것과 관련, 인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나올 수 있다"면서도 "시민의 안전을 위해서는 제도 정비가 필수적이어서, 장기적으로 사회적 공감대를 얻으며 법안 도입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교수는 "지금의 경찰은 주취 신고 대응과 관련해 이렇다 할 권한이 없는데도, 처리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서는 1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 놓여 있다"며 "이런 상황은 경찰은 물론 주취자의 안전을 지키는 데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이 주취자 보호 과정에서 지자체 및 의료기관 등 관계기관과 협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주취자를 전담하는 보호소나 치료 시설을 확대하는 등 제도를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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