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의 감성, 골프美학] 90년 전엔 전동차 타고 골프치러 갔다
"2000년도가 되면 버스와 지하철과 전철을 타고 골프를 치러 다니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1990년대 국내는 골프장 개장이 러시를 이루면서 함께 따라다닌 구호가 바로 '골프 대중화'였다. 이 일환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골프장을 가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면 누구나 쉽게 골프를 칠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골프의 대중화라고.
하지만 2023년이 된 지금 오히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골프를 치러 가는 것은 더욱 힘들어졌다. 자동차가 일상의 이동수단이 됐고 골프장들은 점점 더 멀리 외곽과 산속에 지어졌기 때문에 대중 교통수단으로 갈 수 있는 일은 더 희박해진 것이다.
그런데 1990년대 그토록 주창하던 버스와 전철을 타고 골프장을 다니자던 그 내용이 이미 90년 전인 1930년 대에 실현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의 버스와 지하철, 전철은 아니지만 대중교통 수단인 내연기관으로 운영된 기동차를 타고 많은 골퍼들이 골프를 타고 다녔다.
이 기동차는 1930년부터 지금의 동대문 옆 이스턴호텔에서 출발해 행당(杏堂), 모진(毛陳)역을 경유해 뚝섬을 종점으로 하고 있었다. 외형은 노면전차와 닮은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골퍼들은 모진(현 건국대 입구)역에서 내려 지금의 어린이 대공원 자리에 있는 군자리 코스를 이용했다. 골프를 치는 골퍼 대부분이 서울 사대문 안에 있어 사실 군자리 코스는 서울서는 꽤나 먼 거리이었고 이때 자동차로 이동한다는 것은 웬만한 부자나 계층이 아니면 불가능했다.
그 당시 기동차를 타고 모진역까지 이용했던 신용남(전 국회의원)씨는 기동차타고 골프장 가던 길을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클럽은 락카에 맡겨놓고 골프웨어는 아예 집에서부터 입고 다녔다. 동대문에서 기동차를 갈아타고 모진역에서 내려 옆문으로 들어가 골프채를 찾아 플레이 했다. 마장동은 외곽지대라 판자촌이 많았고 강남 쪽 들녘엔 배추밭이 많아 인분을 비료로 사용해서 여름철엔 커다란 파리 떼들이 기동차 유리창에 까맣게 붙어 있었다"고 했다.
기동차에는 학생, 노동자, 새우젓장사, 지게꾼, 골퍼들이 함께 뒤 섞여서 이용했다. 대부분 골프채를 군자리 골프장에 맡기고 이용했지만 골프클럽을 직접 메고 기동차를 이용한 골퍼들도 많았다고 한다. 오히려 지금 생각하면 90년 전인 1930년도에 이미 2000년이 지난 후에 꿈꿨던 대중교통을 이용한 골프가 있었다니 참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은 반복된다.
5년 전의 일이다. A리조트에 놀러갔다가 차가 반파되는 바람에 아내 차를 타고 골프장을 다닌 적이 있다. 1300CC의 소형 국산차 때문인지 가는 골프장마다 제지를 당했다. 어떻게 왔느냐며 평소 인사도 잘하던 골프장 입구에서는 아예 잡상인 취급을 했다. 심지어는 국내 최고의 한 골프장은 아예 차량 앞을 막고 예약 시간과 이름을 하나 하나 확인한 후에 들여보내 화를 낸 적이 있다. 10년 전에는 회사 작업 차를 타고 골프장에 갔는데 골프치러 왔다고 해도 들여보내주지 않아 한참 실랑이를 벌인 적도 있다.
아직도 골프장과 호텔에 갈 때 좋은 차를 가져 가지 않으면 불이익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이 열에 여덟 명은 된다는 통계를 본적이 있다. 이미 90년 전에 지금의 대중교통 수단인 기동차를 타고 골프를 치러 다녔다고 하니 새삼 허영과 허세 그리고 보여주기식 우리의 골프문화를 되돌아보게 된다.
존 드라이든은 "처음에는 우리가 습관을 만들지만, 그다음에는 습관이 우리를 만든다"고 했다. 습관을 달리 해석하면 우리의 인식일 수 있다. 지나치게 침잠하면 결국 90년이 지난 지금의 2023년도에도 이미 1930년 전에 실천한 것들을 망각하고 잘못 행동하게 된다.
적어도 우리 선배 골퍼들은 1930년 전에 전동차를 타고 다녔으므로 지금에 와서 버스와 전철을 타고 다니는 골프대중화 인식은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판은, 국민은 골프장에서나 골프와 관련된 작은 일에도 침소봉대하며 이를 이용하려하고 있다.
자꾸만 나쁜 습관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습관이 또 골프를 공격해오고 이를 악용하려고 하니 골프를 그냥 그대로의 순수로 받아 주길 바란다. 적어도 다양한 사람들 속에 끼어서 골프장을 가던 1930년대 흑백의 순수처럼.
글, 이종현 시인.
Copyright © MHN스포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