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구상나무, 씨앗부터 묘목까지 ‘애지중지’
한국 특산 크리스마스트리 복원
지구상 한반도 남부에서만 자생
유럽서 품종 개량해 성탄절 인기
기후위기로 한라산·지리산 고사
온실서 6년간 키워 다시 산으로
한국 특산종인 구상나무(학명 Abies koreana, 영어 이름 Korean fir)의 멸종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자생지인 한라산과 지리산에서 마주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올해도 계속해서 기후 스트레스로 죽어가는 구상나무를 보게 된다. 지리산은 천왕봉과 중봉에서 집단 고사의 양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서부권역인 반야봉에서도 고사 속도는 2020년 이후부터 빨라지고 있다. 특히 구상나무가 우월하게 점유하고 있거나 단순림에 가까운 군락지일수록 고사가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라산은 등산로에서도 집단 고사를 쉽게 관찰할 정도다. 한라산 정상으로 가는 대표적인 등산로인 성판악 코스의 진달래밭 대피소부터 백록담 사이의 해발 1700m 일대는 구상나무의 고사목 전시장으로 변한 지 오래다. 등산객들도 구상나무의 떼죽음 현장에서 “참혹하게 죽었네”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한두마디씩 던지기도 한다.
1907년 발견된 ‘1등 크리스마스트리’
구상나무는 지구상에서 한반도 남부에만 서식하는 소나무과의 전나무속에 해당하는 침엽수다. 한라산과 지리산이 집단서식지다. 덕유산이 그다음 군락을 이루며 가야산, 소백산, 광양 백운산, 경남 금원산 등은 잔존 개체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구상나무는 국제적인 멸종위기종으로 국제멸종위기 적색목록(레드리스트)에 ‘절멸 가능성이 매우 높은 종’인 ‘EN’(ENDANGERED) 등급으로 분류되어 있다. 침엽수는 지구에서 대표적으로 생물다양성 위기에 직면한 생물 중 하나다. 지구상의 침엽수종의 34%가 ‘멸종’ 또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구상나무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유명하다. 서구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로 소나무과의 전나무류와 가문비류를 주로 활용한다. 특히 전나무류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 중에서도 구상나무는 모양이나 크기가 절묘할 정도로 안성맞춤이다. 잎의 빛깔도 선명하고 잎끝이 살짝 벌어져 있어 만지기에도 좋다. 1907년 프랑스 식물학자 위르뱅 포리 신부가 한라산에서 처음 채집해 서구에 전해졌다. 이어 유럽에서 구상나무 종자를 개량해 크리스마스트리로 보급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지금도 조경수 시장에서 묘목을 쉽게 구할 수는 있지만 자생지의 유전자를 보존하고 있는 한국의 구상나무는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는 것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2021년부터 구상나무 복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광양 백운산, 소백산 등의 자생지에서 기후 스트레스를 덜 받고 상대적으로 건강한 구상나무의 열매를 수집·채취해 자생지가 아닌 곳에서도 종과 유전자를 지키려 하고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연구팀은 올해도 고도 1200m 이상 아고산대 높은 산지에서 모니터링을 이어갔다. 생존지에서 구상나무 한본 한본을 찾아서 키와 지름을 측정하고 활력 및 건강 상태를 파악해 위치 좌표를 기록한다. 이렇게 모인 정보는 다시 지리정보체계(GIS)로 입력·분석돼 구상나무의 기후위기 현황을 파악하는 1차 자료로 사용된다. 또한 겨울철과 봄철의 건조한 기후와 적설량 부족 등으로 인한 수분 스트레스 파악과 분석도 함께 진행한다. 이런 모니터링 정보를 분석해 구상나무의 종자를 채집하기 위한 열매 수집 작업이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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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실에 설치된 ‘노아의 방주’
열매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종자연구실로 옮겨와 정선(씨앗을 분리·추출해 종자를 얻어내는 일) 과정을 거친다. 이를 통해 얻어낸 씨앗은 다시 전용 양묘장(경북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 소재)으로 옮겨지고 온실에서 정성스럽게 키워진다. 어린 구상나무가 자생지의 생육 조건과 최대한 유사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인큐베이팅 하는 과정이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산림생태복원실의 이동준 박사는 “구상나무는 씨앗부터 묘목으로 키워서 새 출발 하기 전까지 6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아기를 돌보듯이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 온도와 습도, 태양광 등을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은 기본이고 비바람과 나쁜 기상에 노출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그렇게 돌보면 50㎝의 건강한 묘목이 되어 새로운 터전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말했다. 6년 동안 키를 키우는 이곳은 자생지에서 죽어가는 구상나무를 살리는 ‘노아의 방주’인 셈이다.
건강한 묘목으로 자란 구상나무는 본격적인 생존의 터전인 자생지 또는 자생지 이외 지역으로 이동한다. 자생지 이외에서 복원 터전이 되는 곳은 경남 금원산과 월봉산, 전북 민주지산 등이 있다. 2020년 이후 구상나무 복원 사업의 목적으로 현지 외 생육지로 선정된 곳이다. 이곳에서 어린 구상나무는 현재까지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자원연구부 임효인 박사는 “이제 우리도 나무를 심을 때 종과 유전자를 고려하고 복원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시대가 되었다. 구상나무는 기후위기에 적응하는 생물다양성 보전의 본격적인 프로젝트다. 앞으로 계속해서 구상나무의 생태계와 종 그리고 유전자에 관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생물다양성의 요건은 생태계-종-유전자로 구성된다. 구상나무를 제대로 살리려면 종은 물론 유전자까지도 계속 유지해야 한다. 구상나무를 조경수 시장에서 구해다 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이는 생물다양성 유지와 거리가 멀다. 구상나무 복원 경험과 정보는 앞으로 한반도에 다가올 생물다양성 위기 대응에 여러모로 소중한 참고가 될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기후위기 적응 대책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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