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북한에서 20년 숨어살다 처형된 국군포로 있다”…첫 증언

유호윤 2023. 12. 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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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와 국방부는 지난달 21일 교도소에 수감 중인 60대 남성 탈북자 A씨를 방문 조사했습니다. A씨는 북한 내 6.25 전쟁 당시 국군과 미군, 튀르키예군 유해 대규모 매장지 등 한국 정부가 그동안 파악하지 못한 내용을 제보했습니다. 정부는 A씨 진술을 일정 부분 사실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KBS 통일외교부는 A씨 진술 내용을 단독을 입수해 보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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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악의 성분 모여살던 '조양탄광' …"국군포로 가득했다"

"북한에서 성분이 최악으로 나쁜 사람들만 사는 곳". 탈북자 A씨는 평안남도 개천시에 위치한 '조양탄광'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위성 사진 속 조양탄광의 모습은 산으로 둘러싸인 오지 중의 오지입니다.

A씨는 북한 당국이 1955년 이후부터 조양탄광 개척을 위해 '성분이 나쁜 사람들', 즉 납북자와 국군포로들을 모아 놓고 강제노역시켰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래서 조양탄광 노동지구는 동네마다 국군포로와 그 가족들로 가득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6·25전쟁 때 실종된 국군포로는 8만 2,000여 명으로 추산되며, 상당수는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들 대부분 북한 당국의 감시와 차별 속에 탄광·농장 등지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려 온 것으로 전해집니다.

성분 좋은 집안 출신인 A씨는 원래 평양에 살았지만, 고위급 친척이 숙청당한 사건을 계기로 일가족이 함께 196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조양탄광으로 추방됐다고 증언했습니다.


■ "긴 머리의 국군포로 고진만"… "북한에서 20년가량 숨어 살아"

A씨는 조양탄광 거주 시절, 지금도 잊지 못한다는 한 사건을 전했습니다. A씨가 조양탄광에 살던 1970년대, 북한 정부가 공개 처형을 한다며 마을 사람들을 집결시켰습니다. 그렇게 마을주민들 앞에 끌려 나온 사람이 '남조선 괴뢰', 국군포로고진만 씨였습니다.

A씨는 "고 씨가 교수대에 끌려 나올 때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며, "머리카락이 얼마나 긴 지 땅에 철철 끌리고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고 기억했습니다.

고 씨가 머리가 긴 이유가 있었습니다. A씨 진술 내용에 의하면 고 씨는 6.25 전쟁 때 두만강까지 올라갔다가 중공군 반격에 포로로 붙잡혔습니다. 이후 수용소에서 탈출해 남한으로 오려다 실패하자, 결국 평안남도 개천시 월봉산에 굴을 파고 무려 20년가량 숨어 살았다는 겁니다. 그의 기나긴 도피는 도토리를 주우러 산에 들어온 사람들에 발각돼 끝났다고 A씨는 전했습니다. 고 씨와 관련된 증언이 나온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국군포로들 앞에서 처형 …"진달래꽃 필 때 온다는 연합군 기다려"

고진만 씨의 처형 과정을 직접 눈앞에서 봤다는 A씨는 당시 상황을 상세히 묘사했습니다.

"교수형 당시 조양탄광 사람들(조양탄광은 90%가 국군포로임)을 모두 집결시켜놓고 죄명을 읽어내려갔습니다. 기억에 남는 것이 '전쟁에 동원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으며, 미국놈들이 후퇴하면서 다음 해 진달래꽃이 필 때면 다시 쳐들어 온다는 말을 믿고 동굴에 숨어 살면서 안일령 고개를 지나는 군인을 25명이나 살해한 놈'이라고 하였습니다."

<60대 탈북자 A씨 진술 내용>

당시 설명에 의하면 고 씨가 북한 땅에서 비정규군 게릴라, 즉 '빨치산' 활동을 했다는 겁니다. A씨는 북한 당국이 고 씨를 교수형에 처한 뒤 저녁까지 시신을 버려뒀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뒤늦게 시신을 내려 돌로 덮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전우들이 보던 앞에서 고 씨는 어렵게 이어가던 삶을 끝낸 겁니다.

고 씨는 산 속에서 진달래꽃이 필 때마다 기대와 실망을 반복했을 겁니다. 나라가 자신을 버렸다는 절망감도 느꼈을지 모릅니다. 전쟁이 불러온 비극은 비단 고 씨만의 일은 아니지만, 그 속에 깔린 개인에겐 감당 못 할 고통입니다.

■ 고진만은 실존 인물이 맞나? … 국방부 "추정되는 사람은 있어"

KBS는 고진만 씨가 실존한 국군포로가 맞는지 알아봤습니다. A씨를 조사한 국방부 관계자는 "병적시스템으로 조회해보니 1950년대 군생활을 했던 분 가운데 고진만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병적시스템 상에서 확인되는 고진만 씨가 A씨가 말한 사람과 동일인인지는 확정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A씨가 제공한 정보가 단지 '고진만'이란 이름 석 자 뿐이기 때문입니다.

A씨가 그동안 제공한 정보 중 일부는 사실로 확인된만큼 고 씨에 대한 진술도 신빙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유엔 인권사무소도 국군포로 관련 진술 확보를 위해 지난해 12월 A씨를 조사했고, 유엔군 유해 매장지에 대한 KBS 보도 이후 2차 조사를 검토 중입니다.

■ 북한 땅에 남겨진 국군포로들… "이들을 기억해야"

A 씨는 조양탄광에 살던 국군포로들이 열악한 상황이었다고 증언합니다. 3평 정도가 되는 작은 방에 4~5명이 살았고, 제대로 된 음식도 제공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는 같은 동네에 살았던 국군포로 이귀생, 김창현, 민병선, 박삼룡, 이형제, 구방구 등 이름도 거론했습니다.

60대 탈북자 A씨가 조양탄광에 대해 증언한 편지.


정부는 지난 6일 김선호 국방부 차관 주재로 제23차 '범정부 국군포로대책위원회'를 열었습니다. '범정부 국군포로대책위'는 국군포로 관련 사항을 심의하는 관계부처 국장급 회의체로 지난 2021년 11월 제22차 회의 이후 2년 만에 열렸습니다. 대책위는 이번 회의에서 앞으로도 주요 계기마다 북한을 상대로 국군포로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이고 성의 있는 조치"를 지속해서 요구하기로 했습니다.

북한 내 국군포로들의 실상은 1994년 10월 조창호 소위가 국군 포로 중 처음으로 자력으로 탈북하면서 알려졌습니다. 조창호 소위 뒤로도 약 20명의 국군포로가 탈북해 귀환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국군포로가 북한에 생존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국군포로. 그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건 지금이라도 해야만 하는 정부의 과제입니다.

인포그래픽 : 김홍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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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윤 기자 (liv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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