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대표 직행한 법무장관, 야당 출마 노리는 현직 검사장 [취재파일]

원종진 기자 2023. 12. 2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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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장관·친야 검사들의 정치 직행, 그리고 객관(客觀)의 몰락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실체적 진실에 입각한 국가 형벌권의 실현을 위하여 공소제기와 유지를 할 의무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피고인의 정당한 이익을 옹호하여야 할 의무를 진다.
-대법원 2001다23447 판결 中

지난 2002년, 대법원은 강도ㆍ강간 혐의로 구속 기소 됐으나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피고인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일부 인용했다. 대법원은 형사 사건의 1심 공판에서 검사가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를 법원에 제출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사건을 기소하고 유죄를 받기 위해 재판 업무를 맡은 검사는, 비록 '승소'에 불리하더라도 수사 과정에서 알게 된 피고인의 유리한 사정을 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제처장을 맡고 있는 이완규 변호사는 대검찰청 연구관 재직 시절 이 판결을 이렇게 평가․해석했다. 그는 학술지 기고문에서 "이 판결은 민사판결이지만 검사의 지위와 객관의무에 관한 판결로서 형사소송에 있어 중요한 논점에 관한 판결"이라고 썼다. 그러면서 "검사의 객관의무는 수사절차의 '주재자'로서 당연히 전제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검사는 단순히 행정부에 소속된 집행자가 아닌, 사법 절차의 한 축으로서 '객관'적 사법 작용을 주재하는 주체적 기관이라는 것이다.

'검사의 객관의무'를 규정한 것으로 평가받는 이 판결은 우리 사회가 '검사'라는 엘리트들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보여준다. 자존심이 걸린 업무 수행에 불리할 수 있을지언정, 피고인의 사정까지 살피며 수사와 재판 업무에 봉직하는 자. 우리 사회는 '검사'들에게 이처럼 보통 사람이 쉽사리 수행하기 어려운 역할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 직행한 한동훈, 총선 출마 노리는 이성윤과 신성식

비대위원장 취임을 앞둔 한동훈 전 장관

진영이 갈라지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보고 듣는 게 익숙해진 세상에서 '객관'을 '의무'로 수행해 내는 존재란 어떤 것일까. 비록 그것이 직무 수행 과정에 한정된 것이라 할지라도, 지금의 세상 속에서 '객관 의무'를 담지한 인간은 어쩌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엘리트의 권위는 그 불가능해 보이는 규범을 실행하기 위한 분투를 통해 확립된다. 투쟁 없이 주어진 모든 것들이 쉽게 사그라지듯, 엘리트 집단의 지난한 분투만이 뭇사람들로부터의 존경과 경외를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객관'을 향한 투쟁을 점점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것은 '객관'의 의무를 떠받친 고관대작들의 '말'에서 시작되었다. 2021년, 문재인 정부의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자신의 지역구가 있는 대전을 방문해 "저는 법무장관이기에 앞서 기본적으로 여당 국회의원"이라고 발언했다. Ministry of Justice, 균형의 저울로 표상되는 '정의'의 소관부서장이자, '객관 의무'를 지는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가 스스럼없이 자신의 직분보다 당파성을 앞세운 것이다.

행정부 내 '정의' 업무를 책임지는 수장의 발언은 일종의 신호탄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의 윤석열 검찰총장 때리기는 극에 다다랐고, 편 가르기와 당파싸움에 지친 국민들은 정권의 전방위 포화를 맞던 검찰총장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이제는 그렇게 선출된 대통령이 지명한 법무장관마저 정치권으로 직행하게 되었다. 여당의 비대위원장 취임을 앞둔 한 전 장관은 현재 상황을 "9회말 2아웃"에 비유하며 비상식적인 정치 환경을 끝내기 위한 결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정의'의 소관 장관이 단 하루의 휴지 기간도 없이 한쪽 당파의 수장이 되는 역설적 상황을 지켜보게 되었다.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 (사진=연합뉴스)

민주당은 소리 높여 한 장관의 정치권 직행을 비난하고 있다. '한나땡 (한동훈 나오면 땡큐)' 등의 말들을 내뱉으며 지금의 역사적 국면을 희화화된 게임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하지만 똑같은 일은 자신들의 진영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윤석열 총장의 대척점에 섰던 이성윤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꽃은 무죄다>라는 책을 내고 공개 행보를 시작했는데, 현직 검사 신분인 그는 신당 창당을 시사 중인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북콘서트에도 참석해 "강철 같은 의지의 소유자"라고 치켜세웠다. 지난 20일에는 '추미애 사단'으로 분류되는 신성식 전 서울중앙지검 차장이 <진짜 검사>라는 책을 내고 행사를 열었다. 사표를 냈지만 여전히 현직 검사인 그는 책에서 '이재명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 사건, 아무리 털어도 티끌조차 발견할 수 없었다', '수사에서 더 진전할 게 없다면 뒤로 물러나야 한다', '범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무죄 가능성도 무척 높다' 등의 문장을 쏟아냈다. 정치계와 법조계에서는 또 다른 검사들의 출마 준비가 시작됐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객관(客觀)의 몰락, 관객(觀客)의 동원


'객관 의무'를 직업적 임무로 삼아 고위직에 오른 이들은 이처럼 '객관'과는 한참 거리가 먼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객관 의무는 수사와 공소 유지 과정에서의 직업적 의무일 뿐이라고 항변할 수도 있겠지만, 일반 국민들에게 이 말은 공허한 말장난으로 느껴질 것이다. SNS에서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가감 없이 드러낸 판사가 '직업적으로는 공정하게 재판했다'고 한들 당사자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객관'의 직분에서 곧바로 '당파'의 영역으로 건너간 이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다는 점은, 우리 사회의 '객관'은 이제 완전한 몰락의 초입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새로운선택 조성주·금태섭 대표 (사진=연합뉴스)

보수 진영 내에서도 경계의 목소리가 나왔다. 순천지청장 출신으로 여당 추천 몫 KBS 이사를 지내기도 한 김종민 변호사는 SNS에 "대통령으로 직행한 검찰총장에 이어 집권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직행한 법무부장관을 지켜보는 마음은 가볍지 않다"며 "나름대로 사정은 있겠지만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공정성을 상징하고 검사의 인사권을 책임진 검찰총장과 법무부장관의 정치 직행은 매우 부적절한 선례가 아닐 수 없다."고 적었다. 금태섭 전 민주당 의원 중심으로 출범한 '새로운선택'은 아예 법무부 장관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새로운선택은 22일 "법무부 장관은 행정부 내에서 사법부 역할을 하는 부처이기 때문에 내각의 다른 장관들과 성격이 다소 다르다"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법무부 장관은 어떤 당이 집권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무색무취한 사람을 임명한다"고 덧붙였다.

더 큰 문제는 '객관'의 상징자본이 '별 것 아닌 것'이 되면서, 정치인들이 편파적이고 분절적인 방식으로 관객들을 동원하는 현상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모두를 고려한 균형점을 찾으려는 '객관'의 지난한 노력 대신, 관객들을 '나의 편'으로 동원해 정치적 자산으로 삼는 일들은 지금보다도 더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정치적 의사결정을 대의자(代議者)에게 맡기고 관객으로 머물던 시민들이 동원되는 방식은 다양하겠으나, 그것이 '팬덤 정치'라는 이름의 대중추수주의에 머무를 때, '시민'들은 서로 다른 집단의 '부족민'으로 동원되곤 한다.

한동훈 장관은 퇴임사에서 "동료 시민들의 삶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게 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 장관이 언급한 '동료 시민'의 범위는 비단 같은 당파의 생각을 공유하는 이들로 한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광의의 '동료 시민'은 지금의 정치 현실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피를 섞은 가족이라 할지라도 밥상머리에서는 정치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이 상례가 되었고, 당파가 다른 시민은 동료보다는 적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점차 사라져 가는 '동료 시민'을 복원해 내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누군가는,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객관'을 복원하기 위한 지난한 분투를 시작해야 한다.

**참고문헌
檢事의 地位와 客觀義務 - 대법원 2002. 2. 22. 선고 2001다23447 판결, 이완규, 저스티스 통권 제73호

원종진 기자 be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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