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라고 무시하더니…돌봄 인력으로만 우대하나
딸·아들과 돌봄
엄마 지인 “딸 많아서 좋겠다”
치매간병 인력 비중도 다수
돌봄 소홀해도 남동생은 ‘열외’
내 분노도 ‘워킹맘 여동생’ 향해
“너는 좋겠다. 딸이 많아서.”
몇 달 전, 엄마가 우리 집에 며칠 쉬러 왔을 때 일이다. 엄마의 무릎을 베고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을 보던 중이었다. 안부차 엄마한테 전화한 교회 권사님은 딸네 쉬러 왔다는 엄마의 말에 내심 부럽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역시 딸이 있어야 해. 너는 복받은 거야.” 딸의 존재 이유를 노년의 돌봄 인력으로 보는 것인가. 권사님의 말이 칭찬으로 들리지만은 않았다. 말뜻의 30%쯤은 앞으로 더 열심히 엄마를 돌보라는 무언의 압박 같기도 했다. 악의가 없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심사가 꼬였다.
‘딸딸딸아들 집’의 누나 마음
그도 그럴 것이 ‘딸딸딸아들’ 4남매 중에서 엄마를 돌보는 사람은 ‘딸딸딸’이다. 남동생은 바쁘다는 이유로 모든 돌봄에서 제외됐다. 업무 탓에 물리적으로 시간을 낼 수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휴무일에도 누나 셋은 남동생에게 쉬거나 애인과 만나라며 시간을 빼줬다. 엄마와 함께 사는 남동생이 퇴근해 엄마가 있는 집에서 잠을 자는 것만으로도 돌봄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나는 생각했다.
기저엔 ‘제까짓 게 엄마한테 밥을 차려줄 거야 뭐야’ 하는 마음 반, ‘시누가 셋이라 남동생의 애인이 결혼을 주저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반이었다. 남동생에게 “나중에도 엄마는 우리가 챙길 거니까, 네 애인한테 절대 엄마 신경 쓸 거 없다고 꼭 말해”라고 나는 몇 번이나 말했다.
하지만 가끔 딸 둘을 키우는 워킹맘 여동생이 약속한 요일에 엄마를 찾지 못한다거나, 엄마 집에서 몇 시간만 머물다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면 그렇게 화가 났다. ‘자기만 바쁜가’ ‘나도 힘들구만’ ‘무슨 회사가 연차도 못 내’ 같은 말을 수십번 삼켰다. 가족 분란으로 이어질라, “엄마 좀 신경 써줘”라고 건조하게 말했지만 마음속에서는 큰불이 일었다.
자괴감이 든 건 이 지점이다. 돌봄은 여성의 영역이 아니라고, 남녀가 같이 해야 하는 거라고 수차례 말하면서도, 분노의 화살은 돌봄에 전혀 기여하지 않는 남동생보다 ‘일+미취학 아동 2명 육아’를 하는 여동생한테 끊임없이 향했다. 남동생에게 “네 와이프가 엄마를 돌보게 될까 봐 걱정하지 말라”고 한 것 또한 사실상 “네 와이프도 돌봄에 동참해야 하지만, 누나들이 다 하겠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입만 산 페미니스트인가 봐.” 이런 마음을 털어놨더니, 남편은 위로한답시고 “처제가 장모님한테 소홀하긴 하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도 그도 알고 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엄마까지 돌보는 여동생의 휴식 시간은 남동생보다도 적을 거라는 걸. 그동안 여동생은 매주 평일 저녁에 하루, 주말에 하루 딸 둘을 데리고 엄마를 찾았다.
보건복지부의 노인실태조사를 보면, 노인을 돌보는 가족 구성원은 2011년 배우자-며느리-아들-딸 순서에서 2020년 배우자-딸-아들-며느리 순서로 바뀌었다. 가부장제하에서 시부모를 돌보는 며느리의 부담이 줄어든 것은 매우 다행스럽지만, 며느리의 줄어든 부담은 아들이 아닌 딸로 향했다는 점은 여전히 돌봄이 여성의 일임을 증명했다.
치매 노인을 간병하는 인력으로 딸이 가장 많다는 보고(한양대 임상간호대학원 김다미 석사 논문)도 있다. 논문을 보면, 치매 노인을 돌보는 가족은 딸이 43.4%였고 이어 며느리(16.8%), 아들(15.2%), 배우자(12%) 차례였다. 이런 내용을 다룬 기사 제목은 “여아 선호 이유 있다” “이러니 아들보다 딸” 같은 것들이었다. 딸은 돌봄 인력으로서만 존재 의미가 있다는 것 같아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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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밥 먹으며 아들 밥 챙기는 엄마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의 태도도 나를 서글프게 했다. 암에 걸려 골수이식을 앞두고 입원 중인 상태에서도 병원 밖에 있는 남동생 식사를 걱정했다. 엄마는 여동생과 통화할 때마다 “가끔 엄마 집에 들러서 ○○이(아들) 먹을 반찬 좀 냉장고에 넣어줘”라고 말했다. “무슨 암 환자가 아들 밥까지 신경 써. 걔가 애야?” 딸 밥 얻어먹으면서 아들 밥 챙기는 엄마를 보니 내가 뭐 하고 있는 건가 싶었다. 남동생의 나이는 서른셋이다.
내리 딸 셋을 낳고 마지막에 아들을 낳은 엄마에겐 비밀이 있다. 셋째와 넷째 사이에 또 다른 딸이 있었으나 낳지 않았다. 더는 딸을 낳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둘만 낳아야지 생각했던 엄마는 대를 이어야 한다는 시가의 압박 속에 셋째·넷째를 낳았지만, 세번째마저 딸인 것을 확인하고는, 산부인과에서 대성통곡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여동생 두명의 어린 시절 사진은 커트 머리다. 딸을 아들처럼 키워야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 때문이었다. 마침내 기대했던 아들이 태어난 뒤, 할머니 댁이 있는 시골에 가면 동네 어르신들은 셋째 여동생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네가 아들 데리고 나온 애냐?”
“아들 낳으면 버스 타고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는 말처럼 엄마는 지금 ‘비행기를 타는’ 상황이 됐다. 딸 낳은 설움을 30여년이 지나 돌봄받는 걸로 덜어낼 수 있을까. 병실 안 아들만 둘인 목사님, 아들 둘에 딸 하나인 음식점 사장님, 아들 하나 딸 하나 있는 영미(가명)씨 중에 가장 부자는 엄마인 것처럼 보였다. 지금 이렇게 일기를 쓰다 보니 딸이라고 무시하며 키웠던 사회가, 돌봄 인력을 구할 때는 우대해주는구나 싶어 갑자기 억울해진다.
엄마와 단둘이 걷는 중이었다. 30m쯤 앞에서 무엇인가 ‘퍽’ 하고 터진 뒤 희뿌연 연기가 일기 시작했다. 연기는 점점 우리 쪽으로 번져왔다. 나는 오른팔로 엄마의 어깨를 감싸고, 왼손으로는 엄마의 코와 입을 막은 채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뛰어.” 꿈이었다. 엄마는 병실 침대에서 잘 자고 있었다. 이날 엄마는 골수이식을 받으러 무균실에 들어갔다.
“무서워.” “괜찮아.” “엄마가 잘할 수 있을까.” “몇 주만 참으면 건강해질 수 있어.” 엄마가 한 말은 나의 속내, 내가 한 말은 엄마의 기원이었을 것이다. 무균실 문 앞 복도에서 엄마와 나는 암 진단 5개월 만에 서로의 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병원 복도에서 엄마를 부둥켜안고 내가 하도 우니, 엄마와 같은 병실에 있는 환자들이 “종종 무균실에 있는 엄마를 찾아가 안부를 묻겠다”며 위로했다. 무균실에 엄마를 들여보내고, 유리창 너머로 무균실 내부를 살폈다. 눈이 벌게진 엄마가 어서 가라는 듯 손짓했다. 병원 밖을 빠져나오면서 딸의 간병 부담이니 뭐니 괜한 생각을 했다고 또 자책했다.
소소
갑작스레 ‘엄마 돌봄’을 하게 된 케이(K)-장녀가 고령화사회에서 청년이 겪는 부모 돌봄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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