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엄근진'에서 '급발진'으로 왜?…그래도 이재명 몫 [와이즈픽]
이낙연 전 대표의 '1일 1반명' 행보
대선 이후 1년 동안의 미국 생활을 마친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에게 여론의 시선이 잠깐 쏠린 적이 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기대했던 일부 민주당 지지자들의 희망 사항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정치 영역에선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 중심으로 여론 지형이 형성됐기 때문입니다. 이 전 대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습니다. 본인은 많이 억울해 하지만 '이낙연은 역시 엄근진(엄숙+근엄+진지)'이란 비아냥까지 다시 흘러 나왔습니다.
이러다 한 달 전쯤부터 이 전 대표의 화살이 이재명 현 대표를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1일 1반명(反明)'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하루에 한 번씩 이재명 대표와 각을 세운 결과입니다. 현역 의원 4명이 속한 '원칙과 상식' 활동과 맞물리면서 이 전 대표 관련 기사가 거의 매일 쏟아졌습니다. 지난해 대선 이후 이 전 대표는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즈음 이 전 대표는 한겨레와 아주 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인터뷰] 이낙연 "국가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다, 두렵다" / 11월 18일) 윤석열 정부, 이재명, 정치 팬덤, 엄근진, 북한이 인터뷰의 주요 키워드였습니다. 누구보다 윤석열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는데도 인용 보도의 관심은 역시 이재명이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이 전 대표는 민주당 지도부 구성이 지나치게 획일적이라고 지적하면서 이렇게 비판했습니다. "(이재명 대표) 본인의 사법 문제가 민주당을 옥죄고 그 여파로 당 내부의 도덕적 감수성이 퇴화했다. 당내 민주주의와 다양성이 억압되고 정책이나 비전을 위한 노력이 빛을 잃게 됐다. 이런 현상이 전방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중간 없고 갑자기 튀어 나온 '신당론'
이러다 신당 창당 가능성이 공식적으로 언급됐습니다. 이 전 대표는 지난 13일 SBS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가 "신당 창당 진짜로 하실 겁니까?"라고 묻자 "예"라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이전 '엄근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 다음 답변은 좀 달랐습니다. 진행자가 신당 창당 작업 정도를 묻자 "아주 실무 작업의 초기 단계일 겁니다. 종이로 하는 작업이 있고 발품을 팔아야 하는 작업이 있고 여러 가지가 있어요. 제가 자세히는 모르겠습니다마는 많이 애를 쓰고 계실 거고요"라고 답했습니다. 누가 애를 쓰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신당 창당 시기를 내년 초로 구체화 했습니다.
이때 '이낙연=신당'이란 공식이 만들어졌습니다.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도 관심이었습니다. 정세균-김부겸-이낙연 3총리 연대설이 잠시 거론되기도 했고 새로운선택을 창당한 금태섭 전 의원과 또 다른 신당 창당을 준비하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까지 언급됐습니다. 이 전 대표가 직접 언급하기보다는 언론에서 질문 형식을 던진게 기사로 이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거론되는 대상 모두를 포함하지 않지만 교집합을 굳이 찾자면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으로 보입니다.
정작 이 전 대표가 뿌리를 둔 민주당 안에선 반향보단 반대 여론이 확산합니다. 단 사흘 만에 계파와 선수를 불문하고 100명이 넘는 현역 의원이 이 전 대표 창당을 만류하는 연서명에 참여했습니다. 심지어 이재명 대표와 각을 세우는 '원칙과 상식' 소속 의원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이낙연 전 대표께서 숨 고르기가 좀 필요한데 숨 고르기 없이 갑자기 링에 뛰어들어서 막 100m를 질주하고 계시는 것 같아서요. 많이 당황스럽습니다."(이원욱 민주당 의원 /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 인터뷰)
그래도 왜 갑자기 신당 창당?
궁금점이 가시질 않습니다. 이 전 대표가 민주당 안에서조차 반대 여론이 확산하는 신당 창당까지 급발진하게 된 이유는 뭘까? 이 전 대표의 가장 최근 인터뷰를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제가 이제까지 구체적으로 조건을 제시한 적은 없습니다. 민주당의 혁신은 저와의 협상 대상이 아닙니다. 단지 당내에서 현역 의원들 사이에서 비대위 구성 얘기가 나왔는데요. 그분들의 문제의식과 충정에 공감합니다." "민주당이 획기적인 변화를 통해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는 것이 확인된다면 대화할 용의가 있다 이 말씀을 드렸는데 지금도 그 말씀은 유효합니다." (17일, 채널A '뉴스A')
'1일 1반명'을 시작하면서 밝힌 인터뷰 내용을 포함해 이 전 대표의 입장을 정리해보면 '국가 위기 상황인데 앞장서서 위기 극복을 해야 할 민주당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 이건 이재명 대표 때문이다. 그런데 이 대표가 꿈쩍하지 않는다. 그래서 신당 창당하려 한다. 다만 이 대표가 물러나고 비대위 구성하면 안 할 수도 있다' 이 정도 논리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국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 '급발진'의 명분이 이재명 대표 때문이란 말로 들립니다. 앞서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CBS 김현정 뉴스쇼에 출연해 "이 전 대표를 직접 만났을 때 '한판 뜨냐' 물었더니 '몰아넣는다" 하더라"고 전했습니다.
이쯤되면 이 전 대표에겐 내년 총선에 대한 지분까지도 아닌 정치 생존의 영역처럼 보입니다. 현재까지 이 전 대표와 함께 신당 창당하겠다고 나선 민주당 현역 의원들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 전 대표의 지역 기반인 호남에서도 그렇습니다. "호남 지역에 계신 의원들 중에 '같이 따라 나가겠다'라고 얘기하는 분이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한 분도 없는 상황이고요." (김한규 민주당 의원 언론 인터뷰)
결국은 이재명 민주당 현 대표의 몫
민주당 핵심 지지자들 사이에선 이낙연 전 대표를 향해 '그냥 나가라'는 여론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나가도 이재명 중심 총선 체제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으로 보입니다. 이 전 대표의 영향력이 그정도라고 보면 정치 기술적으로는 그런 결론을 낼 수도 있습니다. 이 전 대표가 나가고 이재명 대표 중심의 민주당을 더 확실히 만드는 건 현재로선 어렵지 않아 보입니다. 이미 어느 정도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이재명 대표 영향력이 커졌다기 보단 이낙연 전 대표의 영향력이 확실히 줄어든 결과입니다.
민주당 비주류이자 두 전·현직 대표와 함께 대권 도전에 나섰던 박용진 의원이 최근 SNS에 이렇게 밝혔습니다. "분열의 상징이 될 신당 추진을 비판하지만 분열의 과정을 손 놓고 지켜만 보는 지도부의 수수방관 태도도 동의할 수 없다."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 한 명이라도 더 붙잡아달라."
결국 이재명 현 대표의 몫이라는 의미입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내 장악력을 확실히 키울지, 아니면 '상징적인 분열'을 막고 대권을 향해 길게 볼지에 따라 이 전 대표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적어도 당에서 분열의 소리가 들리면 가뜩이나 국민의힘과의 초반 혁신 경쟁에서 밀린다는 평가를 받는 민주당 지도부에는 마이너스일 수 있습니다.
국민의힘이든 민주당이든 내년 총선 승리의 키워드를 뽑으라면 통합과 혁신입니다. '똘똘 뭉쳐 확 바꾼다'면 승리이고 그렇지 못하면 패배입니다. 민심이 정말 귀신같이 압니다. 누가 더 잘 하는지.
YTN 이대건 (dglee@ytn.co.kr)
YTN 배인수 (insu@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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