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sing My 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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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HOW THAT NEVER WAS
그다음엔 커다란 리본을 장식한 홀터넥 톱을 입은 첫 번째 모델이 등장했다. 늘 그렇듯, 과격하고 신경질적인 걸음걸이로. 차례로 걸어 나오는 모델들이 입은 룩 중 뷔스티에나 오프숄더같이 어깨를 훤히 드러낸 상의에 커다란 리본을 장식한 룩들의 존재감이 압도적이었다. 뷔스티에와 새틴 리본은 17세기 프랑스 궁정과 예식 때 쓰인 초상화를 모티브로 한 것으로, 그중에서도 피에르 미냐르의 왕실 초상화 작품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남성 복식이 여성만큼 장식적이고 화려했으니 이처럼 과감한 태도는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거의 여성복에서만 볼 법한 디자인을 대담하게 이식하고, 시대를 역행함으로써 오히려 미래로 나아가려는 의도를 담은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도 더해본다.
여성복의 요소를 애매하게 추출하고 소심하게 변형한 후, 젠더리스 콘셉트라고 둘러대는 일은 이제 구식이 돼버렸으니까. 이와 대조적으로 에디 슬리먼이 과거 디올 옴므에서 선보였던 스니키한 수트를 재해석한 날렵한 테일러링도 만날 수 있었다. 가죽, 새틴 등 예민하고 긴장감 있는 소재나 반짝이는 장식을 더한 모습으로.
런웨이 속 모델들이 워킹하는 장면과 함께 편집된 우아한 발레 영상은 뮤지션 LCD 사운드시스템의 ‘Losing My Edge’ 사운드트랙에 맞춰 펼쳐졌다. 음악광이라고 불릴 정도로 뮤지션과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에디 슬리먼은 특히 언더그라운드와 인디 문화에 애정이 깊다. 그런 그는 지난 셀린느 2024 여성 여름 컬렉션에 이어 일렉트로닉 음악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로 손꼽히는 LCD 사운드시스템의 디스코그래피를 다시금 파고들었다. 2005년에 선보인 ‘Losing My Edge’는 박진감 있는 비트 위에 일종의 자조가 섞인 고백 같기도, 격렬한 변명 같기도 한 독백을 얹어서 완성한 것이 특징이다. 10분에 가까운 음악인데 요동치는 리듬과 쏟아내듯 내뱉는 가사가 조화로워 지루할 틈이 없었다. 가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며 에디 슬리먼이 무슨 마음으로 이 음악을 골랐을지, 어떤 가사에 자신을 투영했을지 상상하고 유추하다 관두고 말았다. 그의 심정은 감히 예측할 수 없겠지만 음악이 이번 컬렉션의 룩과 완벽하게 어울린다는 점은 모두가 동의할 수밖에 없을 거다. 20년 전 음악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젊고 세련된 트랙은 방탕하고 분방한 셀린느의 쇼에 또 다른 서사를 부여했으니까.
LE TAILLEUR
DELUSIONAL DAYDREAM
여러 가지 힌트가 숨어 있는 쇼 노트를 살피다 보니 컬렉션의 영감은 모두 그가 일궈낸 과거의 파편에서 출발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과 문화에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에디 슬리먼은 지난 2007년 베를린에서 열린 전시의 큐레이션을 맡았다. 또한 2000년대 초 뉴욕 미술계에서 주목받은 아티스트들의 초상을 촬영하고 전시해 동시대 아티스트에게 찬사를 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는 모두 뉴욕 아티스트 대시 스노가 포함돼 있었고, 그때의 인연을 이어 대시 스노의 콜라주가 돋보이는 아카이브 작품을 선별해 컬렉션에 녹여낸 룩도 선보였다.
Editor : 이다솔 | Photography : 에디 슬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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