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실리 없는 재건축 안전진단, 이럴거면 폐지하라 [부동산 산책]
[파이낸셜뉴스] ‘부동산 산책’은 전문가들이 부동산 이슈와 투자 정보를 엄선해 독자들에게 전달할 예정입니다. <편집자주>
지난 21일 윤 대통령은 서울의 한 소규모주택정비 관리지역을 방문해 "앞으로는 재개발·재건축의 착수 기준을 노후성으로 완전히 바꿔야 될 것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재개발은 원래 노후도·호수밀도·과소필지·접도율을 보고 판단합니다. 재건축의 안전진단을 두고 한 발언으로 생각됩니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시점에서 전부터 제가 생각하던 부분을 이번 기회에 정리해 봅니다.
'재건축 안전진단 절차를 폐지하라'
이렇게 말하면 또 "너는 정비사업 전문가니까 재건축을 활성화를 시키려고 그런 말을 한다"고 흥분하실 수 있겠지만, 한번 천천히 이 글을 읽어보시고 판단해보시길 바랍니다.
안전진단은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제12조에 규정돼 있습니다. 엄밀하게 법을 보면 안전진단은 예비 안전진단과 정밀안전진단이라고 되어있지요.
그러면 1차 안전진단, 2차 안전진단이라고 부르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동법 제13조(안전진단 결과의 적정성 검토)입니다. 안전진단을 적절하게 했는지 한 번 더 검토하겠다는 것입니다. 해당 검토는 의무가 아니나 사실상 의무로 적용되다 보니 일명 ‘2차 안전진단’으로 불려왔습니다.
안전진단이 이슈가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인 2018년부터입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주택 재건축 판정을 위한 안전진단 기준(안전진단 가중치)’을 개정하면서 구조 안정성을 20%로 대폭 낮추자 안전진단을 쉽게 통과하게 됐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에는 재건축 규제의 일환으로 구조안정성을 50%로 다시 상향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법조문까지 신설했는데요.
바로 앞서 언급했던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제13조는 원래 해당 조문이 아니었으나 2018년 조문 신설을 하면서 ‘안전진단 결과의 적정성 검토’를 받도록 했습니다. 이유는 안전진단 가중치를 높여도 재건축 시행 조건인 D등급이 자주 나오다 보니, 이것조차 막고 싶다는 의지인 것입니다. 2차 안전진단으로 불리는 적정성 검토를 할 수 있는 기관을 ‘국토안전관리원’과 ‘한국건설기술연구원’ 단 두 곳만 지정했습니다. 이후 안전진단은 1차에서 D를 받아도 2차만 가면 줄줄이 낙방을 하는 현상이 반복됐습니다.
윤 대통령의 공약으로도 등장했던 안전진단 규정은 2022년 12월 8일 국토교통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 발표로 달라졌습니다. 구조안전성 비중은 30%로 낮추고, 가장 문제이던 2차 안전진단은 시·도지사가 필요한 경우 의뢰할 수 있도록 개정됐습니다.
그러자 줄줄이 2차 안전진단을 생략하고 모두 통과되는 상황이 온 것이죠. 한발 더 나아가 2023년 12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후계획도시 특별법’을 보면 해당 노후계획도시에서 일정 요건을 맞춘 지역은 안전진단 요건을 더 완화 하거나, 아예 면제를 해줄 수도 있게 되어있습니다.
저는 안전진단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이 언급한 것과 같이 단순하게 노후도를 맞추면 진행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의지입니다.
건축물이 노후화 되어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라 재건축을 한다는 게 아닙니다. 오래되면 엘리베이터부터, 배관 등 각종 수선비가 증가하는 것은 물론, 생활환경과 기술이 달라지면서 지하 주차장이나 커뮤니티시설 등 근본적으로 개선하기 어려운 부분에 대한 주민들의 니즈도 달라져서 재건축을 원한다고 했을 때 정부가 이를 막아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정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기준 보다는 차라리 30년 이상 단지는 ‘재건축 가능’과 같이 명확하게 바꾸는 게 낫습니다. 이유는 현 안전진단 기준이 바뀌어서 안전진단 신청만 하면 다 통과되는 수준으로 사실상 요식행위로 전락했습니다. 주민들은 안전진단 통과가 쉽게 된다며 좋아하는데, 근본적으로 애초에 안전진단을 왜 받아야 할까에 대한 의문을 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차피 주민들은 재건축을 원하고 이미 재수·삼수까지 하면서 안전진단이 통과할 때까지 넣는 단지도 있습니다. 그런데 안전진단 한번 할 때마다 비용이 단지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1~2억원씩 나옵니다. 이 비용은 주민들의 부담이고요. 재건축은 안전진단이 통과되도 끝이 아니라 안전진단 통과 이후가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한 예로 공사비가 크게 오르면서 재건축이 진행될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지역들이 수두룩 합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안전진단에 억 단위의 돈을 써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안전진단 업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면 명분도 실리도 없는 안전진단입니다.
‘축! 안전진단 통과 환영'. 안전하다는 판정이 아니라 안전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고 환호하는 주민들, 이를 축하한다는 현수막은 어찌 보면 기괴하기까지 합니다. 안전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기 위해 비용을 들여야 한다. 애초에 출발이 잘못되었습니다.
안전진단은 진짜 철거를 해야 하는지, 수명 연장을 해야 하는지 판단해야 하는 공공 시설물들에 필요한 것입니다. 민간 건축물에서도 리모델링과 같이 기존 골조를 활용해야 하는 것은 일정 안전등급이 나와야 하니 그런 상황에서만 안전진단을 시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재건축의 경우는 예를 들어 ‘30년이 넘어가면 재건축 가능’, ‘30년 미만 시 안전진단을 해서 구조적 위험성이 있을 때 재건축 가능’과 같이 조건부로만 안전진단을 시행해야 진정한 안전진단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안전진단은 진짜 안전을 판단하는 절차가 아니라 재건축을 가로 막는 도구로 작동했습니다. 도심 공급을 활성화하고 싶다면, 잘못된 정책들을 하나씩 바로 잡아야 합니다. 아무도 관심 없던 안전진단의 모순을 바로잡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
※이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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