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오류 있다” 인정해야…‘진짜 신앙’ 첫발 뗄 수 있다 [Books]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3. 12. 23.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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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역사 / 존 바턴 지음 / 박규태 옮김 / 비아토르 펴냄
유대교, 구약의 일부 없었던
기원전에 이미 종교로 존재
그리스도교도 이와 비슷해
예수 시절엔 성서 자체가 없어
뉴욕 공립 도서관에 전시된 구텐베르크 성경. [사진 = Joshua Keller·wikimedia commons]
성서는 신앙의 존재 이유다. 성서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초(超)대규모 스테디셀러는 없다. 그 결과 현대 그리스도교는 ‘모든 건 절대적 경전인 성서에서 시작됐다’고 믿는다.

그러나 성탄절을 앞두고 한국에 출간된 존 바턴 옥스포드대 석좌교수의 신간 ‘성서의 역사’는 저 확신에 미세한 균열을 낸다. ‘신앙=성서’란 거룩한 도식을 박살내기 때문이다. 성(聖)스러운 제목을 보고 이 책을 펼친 독자는 서문도 다 읽기 전에 눈빛이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구약학 최고 권위자인 저자 주장은 짧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성서와 신앙은 완전히 일치하는가? ‘그렇다’는 것이 유대인과 그리스도인의 답이다. 그러나 나는 둘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왜 그런가. 신앙인은 거룩한 성서가 무오(無誤·오류가 없음)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저자 판단은 좀 다르다. 유대교는 히브리 성서(구약) 가운데 일부가 존재하지 않았던 기원전 몇 세기에 이미 종교로서 존재했다. 그리스도교의 경우도 비슷한데, 예수의 시절엔 성서 자체가 없었다. 성서 없이도 신앙이 가능했지만 이제 성서만이 신앙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성서가 권위를 확보한 건 사람들이 성서를 성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십계명은 저자의 논리 내에서 조각난다. 십계명은 정착민 사회를 암시한다. 안식일을 지키고(제4계명),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하였으니(제10계명) 이는 정착민의 규율이다. 적어도 유목민의 생활방식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유목의 방황이 길었던 모세 때 십계명이 유래했다는 건 모순이다. 이스라엘 지파가 약속의 땅에 들어간 뒤 그런 율법이 필요하다고 봤을 순 있다. 따라서 모세 십계명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사후에 변경됐다고 보는 추론이 합리적이다.

신약의 사복음서도 논쟁의 탁자에 오른다. 흔히 복음서를 독립된 4개의 저술로 생각하지만, 성서학자들은 마태·마가·누가복음을 한 그룹에, 요한복음은 다른 그룹에 둔다. 앞선 세 그룹에선 예수가 어른이 된 생애 끝무렵에 예루살렘에 ‘단 한 번’ 갔다고 서술하는 반면, 요한복음은 예수가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 오래 사역한 부분을 다룬다. 요한복음이 제시하는 날과 세 복음서가 제시한 날이 다르다는 얘기다.

외경(外經)의 문제도 거론된다. 교회가 신약의 성서를 결정한 건 ‘기원후 4세기’였다. 고대만 해도 그리스도인들이 권위를 인정했지만 종교개혁 시대 교회들은 성서의 주요 정경에서 이제 ‘외경’이라 불리는 성서를 배제했다. 개혁파 그리스도인(개신교)는 외경을 전부 거절한다. 유다복음, 마리아복음, 바룩묵시록, 솔로몬의 지혜 등이 그것이다.

대중적으로도 알려진 대표적인 외경 ‘도마복음’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콥트어로 발견된 문서 중 하나가 도마복음이다. 도마복음 구절은 참 오묘하다. ‘사람이 먹을 사자는 복이 있나니, 그 사자는 사람이 될 터이기 때문이요, 사자가 먹을 사람은 저주를 받았나니, 그 사자가 사람이 되리라’(도마복음 제7장), ‘너희가 너희 자신을 모르면, 너희는 가난하되 너희 자신이 가난이니라’(제3장).

신약성경 외경인 ‘도마복음’ 모습.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됐다. [사진 = Manuscritos en eltiempo]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책인 성서에 관한 이 도발적인 주장의 결론은 뭘까. 성서가 그릇되었으니 신앙 자체도 허위라고 주장하고 싶은 걸까. 그러나 저자는 이 지점에서 고개를 젓는다. 존 바턴의 성서 연구는 신앙의 배격이 목적이 아니다. ‘성서를 만든 인간의 불완전성을 인정함으로써 오히려 더 완전성으로 도약하는 참신앙’을 목표 삼는다.

교차하는 두 원(圓)이 있다. 하나는 성서, 하나는 신앙이다. 겹치는 부분은 신앙의 중심(본질)이고, 서로 겹치지 않는 부분은 신앙의 주변부다. 저자는 겹치지 않는 부분을 헬라어로 주변부를 뜻하는 ‘아디아포라(Adiaphora)’로 부르는데, 아디아포라가 존재한다는 걸 인정할 길을 열어둬야 한다는 게 저자 주장의 골자다.

원저 ‘A History of the Bible’
하나님(신)이 그리스도 안에 계셨다는 믿음은 본질이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주변부 규율은 아디아포라다. 성서는 인간을 ‘위해’ 쓰여졌지만, 지금의 인간‘에게’ 쓰여진 건 아니기 때문이다. 아디아포라를 인정해야 말씀은 더 많은 인류의 내면에 거할 수 있다.

책은 이 한 마디로 응축된다. “본질인 것들은 존재하지만 모든 것을 본질로 여기는 건 곤란하다. 모든 것이 필수불가결한 본질이란 생각은 전체주의의 망상이다.”

책의 두께는 5.6cm. 총 페이지가 1000쪽에 달하니 결코 읽기 쉽지 않다. 그러나 한 번 펼치면 밤을 새워 읽게 될 만큼 흥미롭고 진귀한 주장이 가득하다. 신앙의 부정이 아닌 더 깊은 신앙으로의 초대장 같은 책, 갈수록 보수화되는 세계 그리스도교를 겨냥한 묵직한 무게의 질의서 같은 책이다.

축일을 앞두고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를 고민하게 만드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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