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엔 진실만 말해요… “나의 행복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 [강동삼의 벅차오름]
“크리스마스에는 진실만을 말해야 해요.(christmas you tell the truth.)”
친구 결혼식에서 신부 줄리엣(키이라 나이틀리)만 비디오카메라에 담았던 마크(앤드류 링컨)가 스케치북으로 줄리엣에게 고백하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리처드 커티스 감독. 2003년作)의 장면은 크리스마스 사랑고백의 백미로 꼽힌다. ‘고요한 밤’ 캐롤송이 깔리면서 마크가 줄리엣에게 고백한다. “내게 당신은 완벽해요. 가슴 아파도 당신을 사랑할거예요. (미라 사진을 보여주면서) 당신이 이렇게 될 때까지(To me, you are perfect. and my wasted heart will love you. util you look like this... ”
뒤돌아서는 마크에게 달려가 그녀가 키스를 해주자 마크는 독백을 한다. “충분해. 지금은 이걸로 충분해(enough, enough now)”.
#소중한 것은 늘 우리 가까이, 우리 곁에 있다… 한라수목원처럼
크리스마스때만 되면 생각나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처럼 크리스마스때 가족과 함께 하면 어울릴만한 오름이 있다. 제주시내 한복판에 있는 한라수목원 앞에 있는 광이오름이다. 제주시민들은 시내에 한라수목원이 있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듯 하다. 아주 가까운 도심 속에 산책하기 편한 곳으로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스케치북 고백만큼 영국의 자부심이 묻어나오는 에피소드도 기억속에 있다. 영국 수상(휴 그랜트)이 미국대통령(빌리 밥 손튼)에게 이렇게 말한다.
“관계란 많은 것을 덮죠. 대통령께서 자국에 필요한 것만 취하려 들고 영국이 원하는 건 무시했어요. 영국은 작지만 위대한 나라입니다. 셰익스피어, 처칠, 비틀스, 숀 코너리, 해리포터, 데이비드 베컴의 오른발 아니 왼발도 있구요. 위협하는 자는 친구가 아닙니다. 힘에는 힘입니다. 이젠 영국도 강해질 겁니다. 미국은 대비해야 할 겁니다”라고.
이 영국인의 자존심이 잘 반영된 장면을 보며 우리 대한민국도 그런 자부심을 가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한국도 이젠 OECD 10위권에 드는 나라로 성장했고, 밖에 나가서 떳떳하게 한국인이라고 자신있게 말해도 꿀릴 게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도 있고, 이순신, BTS, 봉준호, 오징어게임, 손흥민의 양발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것은 내 가족처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한라수목원이 그렇다. 제주시 연동 1100도로변에 광이오름 기슭에 위치한 한라수목원은 도심의 허파 같은 역할을 한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누구에게도 차별하지 않는다. 몸이 불편한 사람도 휠체어 산책이 가능하다.
특히 제주의 자생나무와 아열대 식물 등 온갖 나무들 1371종이 식재 전시되고 있는 수목원이다. 목본류 526종, 초본류 782종, 양치류 63종이 있다. 보유나무만 12만 8343그루에 달한다. 제주자생식물 유전자원의 수집, 증식, 보존, 관리, 전시 및 자원화를 위한 학술적·산업적 연구를 하며 도민과 관광객들에게 휴식공간과 관광자원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5만 평에 달하는 삼림욕장은 1.7㎞의 산책코스로 거의 오름 정상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는 코스로 만들어져 있다.
#크리스마스 케이크 위 부드러운 초콜릿처럼… 동백꽃잎이 흩날리는 곳, 대나무숲이 사각거리는 곳
이 겨울 수목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바로 주차장 왼편 임업시험실 건물 뒤편에 있는 동백군락지다. 동백꽃이 분홍빛 양탄자처럼 깔려 있다. 핑크빛 꽃잎이 흩날린다. 마치 크리스마스 케이크 위에 깔린 분홍빛 데코레이션 꽃잎 같다. 넋을 빼놓을 정도다. 제주에서 동백꽃 하면 슬픈 이미지가 강하다. 동백꽃이 제주 4·3 사건의 상징 꽃이 됐기 때문이다. 4·3 사건 당시 제주 곳곳에서 소리없이 희생된 이들의 모습이 꽃송이채로 차가운 땅에 떨어진 동백꽃을 연상케 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사계절 동백꽃 배지를 옷에 달고 다닐 정도다. 그러나 수목원의 동백꽃은 핏빛 동백꽃이 아닌 핑크빛 동백이다. 크리스마스와 연말 훈훈한 핑크빛 사랑을 연상시킨다. 잠시 휴대전화 카메라로 동백을 전송한다.
죽림원의 대나무 숲길도 명물로 꼽힌다. 대나무숲 안에 들어서면 세상과도 단절된 느낌이 들 정도다. 숲속에서 대나무들이 바람에 사각거리는 소리는 마음이 편해지는 소리 ‘ASMR’이다. 운 좋으면 크리스마스 선물로 노루들이 노니는 모습도 만나볼 수 있다. 유유자적 풀을 뜯으며 사람이 지나가도 도망가지 않는 노루가 신기해 한동안 쳐다보게 된다. 이곳에서는 햇볕이 마치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로 시작되는 유명한 시를 남긴 ‘우울한 샹송’의 시인 이수익이 표현해냈듯 ‘햇빛은 신문지의 행간을 교묘히 빠져나오는 냄새처럼 잎사귀의 저 멀리서 스며’(사랑이 주고간 대화 詩 중에서)들었다.
광이오름을 오르고 싶다면 왼쪽 체력단련시설 쪽으로 올라가는게 가장 편하고 빠르다. 해발 266m. 오름 지형이 광이(괭이) 모양으로 생겼다하여 지어졌다. 한자명은 간장의 두 간엽 같은 형상이라 하여 간열악(肝列岳), 광렬악(光列岳, 廣列岳)으로 표기돼곤 한다. 남동쪽으로 우묵하게 굼부리가 벌어져 있고 남서쪽 기슭에 거슨세미라는 샘물이 솟으며 논농사를 짓기도 했단다. 샘이 한라산 쪽으로 거슬러 있다하여 ‘거슨세미’라고도 불렸다. 광이오름 남서쪽에는 염통뫼라는 자그마한 상여오름이 있다. 상여형국의 지세라 하여 생이오름(생이=상여)이라고도 부른다.
#한라산 설경이 시리게 머무는 곳… 광이오름의 정상에서 만나는 소나무숲
아무튼 광이오름 정상에는 멋드러지게 하늘로 향한 소나무 숲이 장관을 이룬다. 남쪽 비탈길 소나무 숲 사이로 한라산이 눈에 밟힌다. 주말내내 눈이 내려 한라산 중턱이 하얗다. 한라산이 없었다면 제주라는 섬은 밋밋했을 수도 있다. 한라산이 있어 어디를 가든 길을 잃지 않는다. 헤매지 않아도 된다. 아침에 출근할 때 한라산 정상이 보이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한라산이 흐리게 찌푸려 있으면 덩달아 마음도 찌푸리게 된다. 한라산이 하얀 세상이 되면 동화같은 세상을 선물 받는 느낌이다. 호젓한 소나무 숲 광이오름 정자에 앉아 한참을 물끄러미 감상하는 한라산 설경은 백미다.
정상 남쪽으론 제주시내가 나무들에 가려 속시원하게 보이진 않지만 노형동 드림타워와 도두봉, 외도 등 북쪽 바다가 시리게 가슴에 박힌다. 제주의 겨울바다는 수십킬로미터 멀리 떨어져 있어도 발정난 하얀 말이 히이잉~ 거리며 달려드는 듯, 성난 파도소리가 보인다.
솔밭에서 아른거리는 제주의 바다를 바라보다가 불현듯 제주의 ‘자존심’이라 부르고 ‘한라산, 오름, 바다, 돌담, 사투리, 해녀…’라고 쓰는, 그 이미지들이 ‘Love, Love, Love…’하게 다가왔다.
#잠깐, 여기서 쉬었다 갈래… 크리스마스 분위기 물씬 풍기는 한라수목원 야시장
한라수목원 가는 길에는 날마다 열리는 야시장이 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끼고 싶으면 이 야시장에 한번쯤 둘러볼 만하다. 4000평 규모에 30여개 셀러들이 먹거리와 볼거리를 제공한다. 특히 햄버거와 소시지, 케밥 등 세계 각국의 음식을 나름 인기리에 팔리는 푸드트럭과 보석류, 제주토산품 등 소품을 파는 플리마켓이 동시에 열리는 곳이다. 혹시 아는가. 거기서 풍선을 터뜨려 아이가 좋아하는 곰인형을 건질 수 있을 지, 아니면 타로 점집에서 내년 운수가 대박난다는 점괘를 받을 지,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오른다.
물론, 크리스마스가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외로운 사람들도 있다. ‘러브 액추얼리’의 안타까운 커플인 칼(로드리고 산토로)과 사라(로라 리니)같은 커플이다. 사내 연애를 막 시작하려고 칼을 집으로 초대한 사라는 데이트를 하다가 오빠의 전화에 분위기가 깨진다. 노처녀 사라는 정신질환을 앓는 오빠 때문에 결국 데이트를 망치지만 사라는 오빠를 포기할 수 없다. 사라는 결국 크리스마스를 병원에서 오빠와 함께 보낸다. “괜찮아, 정말 괜찮아.”라는 위로의 말이 입안에서 맴돌기는 처음이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비틀스의 원곡을 린든 데이비드홀이 리메이크한 곡 Love, Love, Love가 계속 흘러나오는 ‘All you need is love’(당신이 필요한 건 사랑이에요)의 배경음악처럼 사랑을 속삭여보자. 사랑하는 사람에게 스케치북 고백만큼 거창하지 않지만, 오글거리지만, 한번쯤 하트와 함께 문자를 전송해보자.
‘내 가장 큰 불행은 당신을 잃는 것이고, 내 가장 큰 행복은 당신과 평생 함께 하는 것’이라고.
글 사진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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