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N수학] 공정하다는 착각! 동전 던지기
앞면이냐 뒷면이냐! 온전히 운에 맡긴 결정을 하고 싶을 때 우린 ‘동전 던지기’를 한다. 어떠한 편견도 실력도 꼼수도 통하지 않는 공정한 의사 결정 방식이란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10월 전 세계 48명이 무려 35만 757번이나 동전을 던져 이 믿음을 깨버리는 연구 결과를 논문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에 발표했다. 연구팀이 수많은 의사 결정 방식 중 동전 던지기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 단순하고 편리해
동전 던지기가 오래 사용된 이유는 일단 단순하고 편리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엄지손가락으로 동전을 위로 튕기기만 하면 둘 중 하나를 결정할 수 있어 간단하다. 또 빠르다. 게다가 동전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할 수 있다.
특히 승패와 선공을 가려야 하는 스포츠에서 예부터 동전 던지기를 활발히 이용해오고 있다. 1968년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 준결승전에서 이탈리아와 소련이 전후반은 물론 연장전까지 경기를 했음에도 승부를 가리지 못하자 동전 던지기로 승자를 결정해 이탈리아가 결승에 진출했다. 우리나라 국가대표팀은 2000년 CONCACAF 골드컵 조별리그에서 캐나다와 득점과 골득실이 같아 동전 던지기로 순위를 결정하는 바람에 8강 진출에 실패했다.
심지어 동전 던지기는 정치에서도 사용하는데 2013년 필리핀 지방선거에선 두 후보자의 득표수가 똑같게 나오자 동전 던지기로 당선자를 결정했다.
● 무작위하다는 강력한 믿음
무엇보다 동전 던지기는 ‘무작위’로 결과가 나온다는 강력한 믿음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 교과서에서 확률을 설명할 때 동전 던지기는 빠지지 않는다. 시행의 결과가 단 둘뿐인 ‘베르누이 시행’의 전형적인 사례로 소개하며 앞면과 뒷면이 나올 확률은 각각 이라고 설명한다. 각 시행이 서로의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시행’의 예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믿음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도 될까. 수학적으로 어떤 것을 예측할 수 없으면 ‘무작위하다’고 말한다. 적지 않은 학자들은 동전 던지기가 수학적으로 정말 무작위한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했다.
18세기 프랑스 수학자인 조르주루이 드 뒤퐁 백작은 동전을 2048번 던지는 최초의 통계 실험을 했다. 19세기엔 통계학자 칼 피어슨이 동전을 2만 4000번 던져 1만 2012번 뒷면이 나온다는 사실을 20세기엔 영국 수학자 존 케리치가 동전을 1만 번 던져 5067번 앞면이 나온다는 결과를 얻었다.
● 무작위하지 않다는 증거
여기까지는 의심 정도였지만 21세기에 들어서는 동전 던지기가 무작위하지 않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속속들이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퍼시 디아코니스 미국 스탠퍼드대 수리통계학과 교수가 2007년 2명의 공동 연구자와 낸 논문이다.
동전을 던지기 전, 처음 위를 향한 면이 동전을 던진 후 그대로 나올 확률이 약 51%라는 내용이다. 쉽게 말해 ‘앞’과 ‘뒤’라고 적힌 동전이 있을 때 앞이 적힌 면을 위로 향하게 던지면 던진 후에 앞이 적힌 면이 또 나올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디아코니스 교수는 동전이 엄지손가락을 떠날 때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지 초당 몇 번을 회전하는지 등의 변수를 찾아내 D-H-M 모형을 만들었다. 이를 위해 동전에 직접 치실을 붙이고 고속 카메라로 관찰했다.
당시 촬영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동전이 얼마나 뒤집히고 흔들리는지 또 얼마나 높이 올라가는지 잘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심지어 이 모형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동전 던지기 기계도 만들었다.
결과가 나오는 이유를 논문에서는 이렇게 분석했다. 동전을 던질 때 엄지손가락이 동전에 흔들림을 줌으로써 동전은 축이 흔들리는 ‘세차운동’을 하게 되고 처음 위를 향한 면이 더 오랫동안 공중에 머물게 된다. 그에 따라 처음 상태대로 떨어질 확률이 51%라는 것이다.
2009년에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 연구팀이 수 분간의 간단한 훈련만으로도 동전 던지기의 결과를 쉽게 조작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13명의 이비인후과 수련의들에게 각기 300번의 동전 던지기를 실시하게 한 뒤 인위적으로 앞면이 나오게 할 수 있는지를 알아봤다.
동전을 던질 때의 높이와 속도, 회전 횟수, 손에 잡는 방식 등을 원하는 결과가 나오도록 훈련시켰다. 그 결과 실험 참가자들은 모두 뒷면보다 앞면이 더 자주 나오도록 하는 데 성공했으며 참가자 중 1명은 무려 68% 확률로 앞면이 나타나게 할 수 있었다.
두 연구 결과 모두 동전을 던질 때 초기 조건만 알면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로 동전 던지기가 무작위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 48명이 35만 번 동전 던져 D-H-M 모형 실험
디아코니스 교수의 연구결과가 발표된 이후 지금껏 이 예측이 옳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여러 통계적인 실험이 있었다. 하지만 규모 면에서 부족했다. 디아코니스 교수는 D-H-M 모형을 실험으로 입증하려면 약 25만 번 이상 동전 던지기를 수행해야 한다고 추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대가 이끄는 유럽 대학 공동연구팀이 총 35만 757번의 동전 던지기를 시행했다. 실험 참가자 48명이 46가지 종류의 동전을 던진 이번 연구는 역대 동전 던지기 실험 중 동전을 가장 많이 던졌다.
이번 논문의 제 1저자인 암스테르담대 프란티세크 바르토스 박사과정생은 “대학에서 ‘베이지안 통계’를 가르칠 때 동전 던지기를 항상 예시로 사용할 정도로 결과가 무작위하다고 알려진 흔한 개념인데 실제 데이터를 모으면 직관과 다른 재밌는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실험을 계획했다”고 '수학동아'에 설명했다.
바르토스 박사과정생은 친한 동료와 학부생 몇 명과 실험을 시작했는데, 실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온라인으로 참가자를 모집했다. 동전 종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걸 고려하지 않기 위해 46개 종류의 동전을 사용했다.
참가자를 모집할 때 그는 여러 개의 조건을 내세웠다. 중요한 두 가지를 꼽으면 동전이 손바닥 위에 떨어지도록 할 것과 동전 던지는 모든 과정을 녹화할 것이었다. 동전이 손바닥 위에 떨어지지 않고 책상 위 등 다양한 곳에 착지하면 튕기거나 회전을 많이 하게 돼 결과가 왜곡되기 때문이다.
분석 결과 동전을 던질 때 위로 향한 면과 같은 면으로 떨어진 게 35만 757번 중 17만 8078번으로 50.8% 정도였다. 디아코니스의 예측 수치가 거의 정확했음이 입증된 셈이다. 0.8%라는 확률 차이는 사소해 보여도 결과 하나로 승부가 갈릴 수 있는 게임, 스포츠 등에서는 치명적일 수 있다.
사람별로 결과를 비교했을 때는 48.1~60.1%로 확률이 달라졌지만 이때도 같은 면이 그대로 나올 확률의 분포도가 더 높았다. 바르토스 박사과정생은 “우리에게 친숙한 동전 던지기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한 변수에 의해 결정되는 과정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면서 “동전 던지기를 할 때 서로 위로 향한 면이 무엇인지 모르면 공정하고 합리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동전 던지기를 앞으로 이용하지 말아야 할까. 그에 따르면 대부분 동전 던지기의 결과를 결정하는 변수를 모르는 데다 안다 해도 모두 계산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에선 무작위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즉, 앞으로도 계속 사용해도 무리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번 논문을 통해 동전 던지기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의사 결정 방법이 정말 무작위한지 나아가 무작위하다는 것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
서인석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학생들이 자주 사용하는 스마트폰 룰렛 돌리기, 노래 셔플 재생 등은 컴퓨터가 무작위적인 결과를 도출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뒤엔 원리가 있어서 완벽히 무작위하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무작위성이란 무엇이고 무작위성을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연구하는 것이 수학에서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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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동아 12월호, 공정하다는 착각! 동전 던지기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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